"칠레 와이너리 중 오직 쿠지노 마쿨만이 시작부터 지금까지 보르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9일 기자 간담회 참석차 방한한 카르로스 쿠지노 발데스(Carlos Cousino Valdes·58)는 칠레 최고의 와이너리 중 하나인 쿠지노 마쿨(Cousino Macul)의 현 소유주로서 유서 깊은 가문의 수장답게 귀족의 기풍과 여유를 온몸으로 풍겼다.
↑ [조선닷컴]쿠지노 마쿨 카를로스 쿠지노 발데스./길진인터내셔널 제공
↑ [조선닷컴]쿠지노 마쿨 로타 2008.
19세기 중반 등장한 칠레의 여러 명문 와이너리 대부분이 외국 자본을 끌어와 상업성을 띄게 된 것과 달리 쿠지노 마쿨은 1856년 와인 사업을 시작한 후 150년간 가족 경영을 이어오고 있는 유일한 와이너리다. 연간 와인 생산량이 30만 병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양보다는 품질을 중시한다. 지금 쿠지노 마쿨의 수석 와인 메이커는 샤또 무통 로칠드의 와인메이커로 활약했던 파스칼 마티(Pascal Marty)가 맡고 있다. 그는 세계적인 아이콘 와인
알마비바와 오퍼스원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쿠지노 마쿨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1800년대 중반 포도나무를 말라 죽게 만드는 병인 필록세라가 유럽의 포도밭을 초토화 시키기 전에 2대째인 루이스 쿠지노가 와인 묘목들을 가져와 1860년부터 본격적인 와인양조를 시작했다. 이는 전 세계에서도 거의 유례가 없는 사례다. 유럽이 와인 산업을 거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을 지경이었지만 유럽의 가장 전통한 방식과 포도는 칠레로 건너와 쿠지노 마쿨에서 꽃을 핀 것이다.
유럽, 남미 등 전 세계에 와인을 수출하는 카를로스 회장에게도 한국은 가장 중요한 시장 중 하나다. 금융위기 이후 유럽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지만 한국 등 아시아 시장은 두 배 이상 성장했다. 특히 한국은 아시아에서 칠레 와인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가 됐다. 그만큼 제3세계 와인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다양한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카를로스 회장은 이날 간담회를 위해 특별히 칠레에서부터 쿠지노 마쿨 안티구아스 카베네 소비뇽 2001년 빈티지를 가져왔다. 칠레 와인이 길어봤자 2008년 빈티지가 대부분임을 감안하면 무척 진귀한 와인인 셈이다. 그만큼 와인의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안티구아스는 쿠지노 마쿨의 시그니처 와인이어서 칼르로스 회장은 더 큰 애정을 비추기도 했다. 그는 "2008년 빈티지와 비교 시음해 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실제 마셔본 2001년 산 카베네의 맛은 놀라웠다. 마치 큰 창을 가린 얇은 커튼을 비추는 투명한 햇살처럼 한 없이 하늘하늘하고 섬세한 맛과 향이 입안 가득 맴돌았다.
카베네 소비뇽의 우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맛이 채 가시기 전에 기다리던 와인 로타(LOTA)가 등장했다. 쿠지노 마쿨의 창시자 마티아스 쿠지노가 칠레 로타 지역에 정착한 업적을 기리고자 150주년이 되는 2004년 첫 출시한 프리미엄 아이콘 와인이다. 2004년 APEC에서는 각국 귀빈들에게 선물로 증정되기도 했다.
카베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블랜딩한 로타는 두 얼굴을 지녔다. 강렬하고 묵직한 첫인상과 부드러운 목넘김이 강하게 대비된다. 풍성한 과일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쿠지노 마쿨의 명성을 여지없이 확인시켜 주는 와인이다. 소비자 가격은 22만원으로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거나 특별한 자리를 위해 아껴 둘만하다.
카를로스 회장에게는 네 명의 자녀와 네 명의 손자 손녀가 있다. 유서 깊은 가문다운 다복함을 엿볼 수 있다. 간담회에서 그는 은연 중 딸 자랑을 많이 늘어놨다. 설명을 들어보니 브라질에서 사업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 다른 세 명의 자녀도 모두 와이너리와 관련된 일을 한다. 이미 카를로스 회장 사후에는 네 명의 자녀가 와이너리를 공동으로 물려받아 운영하기로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유서 깊은 와이너리의 역사는 6대를 넘어 7대, 8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