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사내들이 고된 하루 마치고 해물 안주 삼아 술잔을 부딪치면, 이튿날 아침 아낙들은 으레 동네에서 제일 잘 나는 재료로 끓인 시원한 국물을 내놨다. 뜨끈한 국물이 간절한 계절. 남도 해장국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대표 선수만 소개한다.
비빔밥, 한정식과 함께 전주 3미(三味)로 꼽힌다. 재료 잘 쓰고 음식 맛있기로 소문난 전주에서 비교적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콩나물국밥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이 동네의 콩이 좋고, 둘째는 물이 좋아서다. 전주 지역 토질과 수질이 다른 지역과는 달리 콩나물이 자라기에 적당해서 다른 지역보다 줄기가 곧고 잔뿌리도 튼튼하다. 임실 근처에서 나는 서목태, 흔히 쥐눈이 콩을 잔뿌리 없이 외뿌리로 키우는 것이 요령이며, 다 자라기 전에 뽑아 사용하므로 질기지 않고 연하다.
전주는 다른 지역과 달리 뿌리를 다듬지 않은 콩나물로 국밥을 만든다. 여기서 숨은 상식 하나. 콩나물에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과를 가진 ‘아스파라긴’ 성분이 많은데 이게 집중된 부위가 바로 뿌리다. 전주 토박이들은 그걸 알고 있었던 걸까. 아무튼 조선의 3대 천재라던 육당 최남선 선생은『조선상식문답』에 콩나물국밥을 10대 지방 명식으로 골라놨다. 뚝배기에 담아 숯불이나 연탄불에 올려 끓이면서 깨소금과 마늘, 고춧가루, 파, 새우젓, 쇠고기 자장, 신김치 등을 적당히 넣어 간을 맞추었다. 그런 다음 부뚜막 위에 말린 붉은 고추를 손으로 부숴 넣어 갈무리를 한다. 애주가들은 모주 한잔에 날달걀과 곁들여 먹는다.
원조는 구도심 동문시장, ‘밥 따로’는 남부 중앙시장
현재 전주 콩나물국밥은 크게 ‘삼백식’과 ‘남부시장식’으로 나뉜다. 삼백식은 뚝배기에 밥과 콩나물을 한꺼번에 담고 갖은 양념을 넣어 펄펄 끓이다가 마지막에 날달걀을 그 위에 올려 내는 형식으로 전주에서 유명한 ‘삼백집’에서 유래했다. 구도심 경원동 동문거리에 맛집이 몰려 있다. 전주 사람들은 콩나물국밥을 한 숟가락 뜬 뒤 김을 얹어 먹는다. 뜨거운 국밥에 입천장이 데는 것을 막아주면서 짭조름한 맛이 식욕을 돋운다.
남부시장식은 밥이 따로 나온다. 멸치와 다시마, 무 등으로 국물을 낸 뒤 삶은 콩나물을 넣고 데워내는 방식으로 수란(중탕으로 끊여낸 달걀 반숙)과 함께 먹는 것이 특징이다. 전주 시내에 사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서울에서 손님이 내려오면 꼭 남부중앙시장 뒷골목으로 데려가 콩나물국밥을 사준다. 기자도 시인과 그 국밥을 먹어봤다. 작년 1월이었고, 칼바람 맞으며 섬진강가를 서너 시간 걸은 탓에 몸살기가 있었는데 땀 뻘뻘 흘리며 국물 다 비우니 오한기가 싹 가셨다.
editor’s choice
한일관063-226-1569 남부중앙시장 골목에서 일제 시절부터 콩나물국밥을 팔던 집이다. 북어와 멸치로 하루 종일 고아낸 육수를 써서 국물이 진하다. 1994년에 본점이 서울 역삼동으로 이사 왔고, 요즘은 사장 조카가 운영하지만 맛은 그대로다.
삼백집063-284-2227 전주시 고사동 전주관광호텔 뒤 먹거리 골목의 대표 맛집으로 콩나물국밥의 대명사다. 전국 욕쟁이 할머니 중에서 진짜 원조로 꼽히는 전설적인 할머니가 운영하던 집으로 더 유명하다. 밥이랑 같이 끓이는 전주스타일 콩나물해장국의 원조다.
왱이집063-287-6980 무조건 뜨겁게 끓여내던 콩나물국밥에서 벗어나 육수 온도를 적당히 유지해 먹기 편하게 내놓은 집으로 유명하다. ‘무한 콩나물 리필’에 ‘빨리 먹을 수 있는 국물’을 내세워 젊은 술꾼들에게 인기 있는 집. 24시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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