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칼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였다." (처음)
엄마를 생각할 때면 따뜻하고 포근한 기분이 들면서도 왜 항상 심장 한편이 저릿하고 뭉클하게 아픈 것일까. 김애란은 단편 < 칼자국 > 에서 자식에게 왜 '어미'가 아픈지,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칼은 물건을 베거나 썰거나 깎는 데 쓰는 도구이고, 때로 우리 몸을 다치게 하는 위험한 물건이기도 하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이 차갑고 번뜩이는 칼의 금속성 이미지는 어머니에 이르렀을 때 몸에 부드럽게 흡수되는 음식처럼 따뜻하고 유연하게 바뀐다.
< 칼자국 > 에서 '나'의 어머니는 '맛나당'이라는 국숫집을 하며 20여 년간 손칼국수를 팔았다. 어머니는 칼 하나를 25년 넘게 써왔다. 그 칼로 썰고, 가르고, 다져서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미에게는 먹이고 지켜야 할 새끼가 있는 법이니, '나'는 자식이 아닌 '새끼'가 되어 어미가 칼끝에서 만들어내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먹고 자랐다. '오랜 세월, 어머니는 뭘 재우고, 절이고, 저장하고, 크게 웃고, 또 가끔은 팔뚝의 때를 밀다 혼자 울기도 했지만', 칼을 쥔 어머니는 우는 여자가 아닌, 새끼를 먹이는 어미가 되어 칼자국마다에 강인한 모성과 생명력을 담아 주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엄마의 음식만 먹은 것이 아니라 그 음식에 난 칼자국까지 함께 삼켰고, 무수한 칼자국이 몸 구석구석 뼛속까지 새겨졌기에 '어미가 아픈 것'이다.
그 칼자국 하나하나는 나이테처럼 차곡차곡 새겨진 어머니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다. 어머니가 손안에 '반지의 반짝임'이 아닌 펄떡거리는 생선의 비늘 같은 '식칼의 번뜩임'을 쥐고 살아오는 동안 아이는 성장하고, 어른이 된 자식은 자신의 아이를 잉태한다. 그리고 자신의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썰고 가르고 다져 아이에게 먹일 것이다. 어머니는 무수한 칼자국을 내어 우리를 먹임으로써 우리 몸속에 우주를 완성했다. 주인공이 어머니가 남기고 간 칼로 푸른 사과를 깎으며 우주를 본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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