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마법, 와인의 속삭임 와인에게는 백만 가지의 목소리가 있다. 와인은 묶인 혀를 풀어놓아 결코 말하고 싶지 않았던 비밀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비밀을 털어놓게 만든다. 와인은 외치고 고함치고 속삭이게 만든다. 위대한 것들을 말하고 근사한 계획과 슬픈 사랑과 처절한 배신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깔깔대며 비명을 지른다. 혼자 나직이 키득댄다. 혼자만의 감상에 젖어 훌쩍거린다. (p.9)
'나'는 1962년산 플뢰리, '까불까불 수다스럽고 명랑하며, 약간 경솔하지만 톡 쏘는 맛의 와인'이다. 《블랙베리 와인》은 소박하고 품위 있는 한 와인이 들려주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꿈,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 제이 매킨토시는 십사 년 전, 공쿠르상을 수상했던 < 잭애플 조와 함께한 세 번의 여름 > 이란 베스트셀러 작품 이후 이렇다 할 작품 없이 적당한 안락을 제공해주는 글을 써오며 지냈다. 그는 '삶이 말라버리는 법은 절대로 없다는 듯, 내면의 병 속에 담긴 것들이 영원히 유지되며, 끝없는 축하 속에 성공이 이어지기라도 할 듯 인생에 덤벼들었지만' 1999년 현재의 그에게는 직업도, 연인 관계도 적당한 타협 속에서 충분할 뿐이었다. 어느 날 제이에게 영감의 근원인 잭애플 조 아저씨와 함께 보낸 1975년 어린 시절의 향수가 되살아나고 그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마법 같은 여행을 한다.
되돌아보면 과거의 시간은 아련하게 마음에 남아 걷잡을 수 없는 그리움을 자아낸다. 돌이키고 싶은 것은 시간뿐 아니라 장소와 사람, 그때의 감정. 그 모든 것이 사무치게 그립다. 하지만 과거가 그리운 것이라면 '지금 그리고 여기'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지금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미래에는 그것을 다시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지금 내게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오래 묵은 와인은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매우 즐겁다. 명랑하거나 사려 깊은 무엇이 있어서 가끔 한밤중 혼자 서성일 때 내 마음을 다독여준다면? 늘 주변에 있는 어떤 사물이 그런 존재가 되어줄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 당신에게도 찾아올지 모르니,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 깊게 귀 기울여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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