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이 익어가는 시간 "모든 빵의 기본이 된다고 해서 만들기가 까다롭지 않다는 것은 아니야. 기본이라고 해서 간단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을지 몰라. 어쩔 수 없이, 나는 이제 곧 서른 살이 될 거야…." (p.8)
살다 보면 가끔 마음을 내려놓고 서두르지 않으며 고요히 반죽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려야 할 때가 찾아온다. '당신. 이제 당신에게 식빵 이야기를 하고 싶어. 식빵은 모든 빵의 기초라고 할 수 있지.'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식빵 굽는 시간》. 주인공 여진은 제빵 기능사 학원을 다니며 주변 사람들을 위해 종종 빵을 굽는다.
그녀에게 빵을 굽는 행위는 곧 관계에 대한 갈망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갈망하는 관계는 빵 반죽처럼 주무르고 치대고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브리오슈, 크루아상, 화이트케이크, 감자빵, 소보로빵 등은 주인공을 둘러싼 관계를 형상화하지만 누구 한 사람 맛있게 먹어주지 않는다. 그녀가 만들어 건네는 빵들은 만질 수 없고 어긋나는 관계처럼 상대방에게 거부당하고 버려진다. 손으로 만져서 확인할 수 없고 닿지 않는 관계, 대상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주인공이 진작 가늠할 수 있었다면 아버지에게 '소보로빵'을 건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야 그가 좋아하는 사과를 넣은 파이를 구웠으니까.
그녀는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거나 그렇지 않거나 주위의 많은 사람이 떠나간 뒤에 비로소 다시 식빵을 굽기로 한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기본 반죽만으로 화려하지 않지만 봉긋하게 부풀어 담백하고 맛있는 냄새를 피워 올리는 식빵을. 빵의 기초인 식빵을 제대로 만들게 되면 다른 빵들은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식빵 굽는 시간'은 주위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으로 돌아와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식빵 굽는 시간은 마음 또한 온도를 맞추고 고요히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팔이 아프도록 열심히 반죽을 치대고 예쁘게 모양을 잡아 오븐에 넣어 꽃망울이 터지듯 부풀어 오르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렇게 식빵이 구워지는 동안 어느덧 마음도 익어가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