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의 샐러드 "……그 가게 샐러드는 생명의 샐러드였지.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비참하고 갈 곳도 없고 가슴이 썩어 문드러질 것 같았는데, 그 샐러드는 엄마를 부정하지 않았어. 그 안에 아직은 귀엽고 조그만 생명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 (p.132)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죽었다. 엄마와 '나(요시에)'만 남기고. < 안녕 시모키타자와 > 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충격과 혼란에 빠진 요시에와 엄마가 새로운 장소-시모키타자와로 이사하고 새로운 인연을 맺으면서 일상을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이야기다. 요시에와 엄마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속에서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후, 모녀는 기운을 차리기 위해 요시에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빙수와 샐러드'를 파는 '레 리앙'이란 비스트로로 향한다. 무더운 여름날이었고 어디를 가든 비참하고 처량하게 둘만 버려진 기분이었는데, 그곳에서 먹은 카시스 빙수와 보리 샐러드는 포만감과 함께 살아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었다. 그것은 마음은 죽었어도 몸은 살아 있다는 느낌, '갑자기 영양분이 들어와 몸속 세포가 기뻐하는 느낌'이었다. 요시에는 '셋이 서로의 몸을 맞대고, 같은 장소에서 살았던 몸의 기억'이 남아 있는 메구로의 집을 떠나 시모키타자와로 이사하고 레 리앙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어떤 모습으로든 변화하는 아메바 같은 긴장감'과 살아 있는 느낌을 주는 그곳에서 요시에는 일상의 활력을 찾고 의욕적으로 생활한다. 시모키타자와는 그런 곳이었다. 그것은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여서 골목마다 맛있는 냄새가 넘쳐나고 정감 어린 이웃들이 있는 그곳에서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일상을 즐긴다. 두 사람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곳으로 시모키타자와를 선택한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먹을 수도 없었던 그들에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레 리앙의 보리 샐러드 덕분이었을 것이다.
슬픔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때는 샐러드를 만들 채소의 초록색조차 너무 눈부시게 느껴져 먹을 마음이 없어졌지만, '자신이 지닌 것을 성실하게 접시에 담아낸' 레 리앙의 보리 샐러드는 두 사람에게 삶을 긍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맺은 인연을 통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죽음을 외면하는 대신 상처를 인정하고 당당히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레 리앙(Les Liens)의 뜻이 프랑스어로 인연 또는 관계인 것은 아마도 필연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