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세계적인 요리학교 ICIF가 이탈리아 현지에서 열릴 한식 요리 강연을 위해 한국에서 활동하는 30대 한식 오너 셰프를 찾았다. 갈비탕·불고기 등 천편일률적인 메뉴가 아닌, 창의적으로 요리를 개발하며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이태원 이스트빌리지의 권우중 셰프가 그중 하나다.
소년 같은 순수한 웃음이 매력적인 이스트빌리지의 권우중(32) 셰프.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지만 요리에서만큼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경희대학교 조리과학과를 졸업한 그는 웨스틴 조선호텔 조리팀에서 근무하다 도쿄와 미국으로 건너가 한식의 맛을 알렸다. 파라다이스 그룹의 도쿄 최고급 레스토랑 총주방장, 뉴욕 한식 레스토랑의 총주방장으로 근무하고, 외식 기업 썬앳푸드에서 메뉴 개발 등을 담당하다 지난해 이태원에 한식 레스토랑 이스트빌리지를 열었다.
"처음 요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한식에 큰 관심은 없었어요. 도쿄와 뉴욕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한식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기면서 매력을 알겠더라고요. 한식 요리에 본격적으로 빠져든 뒤에는 다양하고 상품성 있는 한식 요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권 셰프에게 한식은 누구보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정작 현실을 돌아보면 제대로 된 한식 레스토랑을 찾기 힘들 만큼 한식이 소홀히 여겨지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불고기·김치찌개·비빔밥 등으로 메뉴가 한정돼 있고, 소위 '요리'라고 불릴 만한 창의적인 메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탤리언 레스토랑에 가면 파스타와 피자만 시켜도 4만~5만원이 훌쩍 넘어요. 하지만 한식은 이 돈 주고 사먹기에는 아깝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아요. 차별화된 한식 메뉴를 개발하고 최고의 재료로 정성을 담아 조리해 비싼 돈 주고 먹어도 아깝지 않다고 여길 음식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 삶의 기본이 되는 한식이 다양성을 갖추고 나날이 발전할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노력할 계획이에요."
최상의 재료가 요리 맛 살린다
권 셰프는 음식이 맛있으려면 기본을 잘 지키면 된다고 강조한다. 좋은 재료를 사용해 조리하면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아도 본연의 맛이 우러나 맛있다. 이를 위해 그는 매일 새벽 5~6시에 노량진수산시장에 가 해산물과 생선을 구입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지방에 가서 식재료를 직접 골라 구입한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다 보니 나름의 식재료 네트워크가 생겼을 정도다. 경기도 가평 명지산 계곡에서 직접 채취한 민물가재, 강원도 속초 연금정에서 할머니들이 잡은 해수성게 등 정성 들여 찾은 식재료에 그의 손길이 더해지면 영양 가득하고 모양까지 근사한 요리로 변신한다.
또 시골 농가에서 판매를 위해 대량으로 재배한 식품이 아닌 농민들이 직접 먹으려고 재배한 식품을 구입한다. 자신이 먹을 요량으로 재배한 만큼 판매용 식품에 비해 정성이 가득 들어가고 영양도 풍부하기 때문. 특히 요리에 들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그는 매주 한 번씩 10여 곳의 시골 농가에서 재배한 들깨를 산 뒤 시골 방앗간에서 직접 들기름을 짜서 사용한다. 양념으로 사용하는 매실청은 경남 하동에서 3년간 숙성시킨 것이고, 소금은 전남 신안과 영광에서 4년 동안 간수 뺀 천일염을 쓴다. 간장과 된장은 매년 직접 담그는데, 5~6가지 다른 맛이 나도록 해 요리에 따라 달리 사용한다.
"한식 요리에는 고추장과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가 매콤하고 칼칼한 맛이 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요리할 때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요. 두 양념은 향과 맛이 강해 재료 본연의 맛을 묻어버리거든요. 미각을 잃게 하는 자극적이고 강한 양념보다,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는 담백한 양념으로 요리해보세요. 입맛이 살아나는 것은 물론이고 그동아 놓쳤던 식재료의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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