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자락에 위치한 한식집'두둑한 상'의 이원일 셰프를 만났다. 그는'한 손맛'했다는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어릴 적부터 청국장과 콩비지를 띄우고, 밥을 지으며 어깨너머로 한식을 배워왔다. 11월, 김장철을 맞아 할머니에게 전수한 김장 비법에다 젊은 감각을 더해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김장 레시피를 알려주었다. 청계산에서 김치 담그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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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지어놓은 밥과 물을 더해 믹서에 갈면 간단하게 쌀풀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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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김치에는 찐감자를 이용한 풀을 만들어 빨리 물러지는 것을 방지한다.
"외할아버지가 경기도 화성에서 큰 사업체를 운영하셔서 집은 항상 손님들로 북적였어요. 그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외할머니는 밥상을 냈고, 워낙 솜씨가 좋았던 터라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계속 그 맛이 생각나 다시 찾아오곤 했죠."
어린 시절 그렇게 손맛 좋은 외할머니와 함께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이원일 셰프는 보통의 젊은 셰프와 달리 전통 음식 조리법에 익숙하고,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적용한다.
풀 하나를 쑤어도 김치 재료에 따라 달리 쑤고, 설탕을 쓰는 대신 매실청이나 졸인 식혜를 사용한다. 그리고 여기에 젊은 셰프 특유의 감각을 더해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요즘 친구들 중에는 진짜 김치 맛을 아는 이가 많지 않아요. 특히 오랫동안 식당밥을 먹어온 친구들은 인공 감미료를 넣은 달달한 식당 김치가 진짜 김치 맛인 줄 알고 있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안타까워요.
물론, 우리네 김치가 쉽게 담가 먹을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에요. 절이고 발효해야 하고, 또 넣어야 하는 각종 재료도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고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사 먹는 것에만 의존하지 말고 소량이라도 직접 만들어보는 호기를 부려봤으면 좋겠어요."
이원일의 김치 레시피 포인트
힘들이지 않고 풀 쑤기
"외할머니에게 배운 대로라면 김장할 때 쑤어내는 풀의 종류는 실로 다양해요. 보리밥, 멥쌀, 찹쌀, 감자 등 그 재료와 방법이 무궁무진하죠. 이렇게나 다양한 종류의 풀을 쑬 때는 김치의 주재료를 고려해야 해요."
쌀풀은 감자풀에 비해 발효균의 활동을 활발하게 해 김치가 빨리 익게 만든다. "또 풀을 쑤는 것도 웬만큼 기술이 필요해요. 오랜 시간 약불에 저어주어야만 되직한 풀이 완성되는데, 그 방법이 은근히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죠. 그럴 때 미리 지어놓은 밥과 물만 넣고 믹서에 갈면 밥풀을 간단히 만들어낼 수 있어요."
적겨자, 홍갓으로 색과 맛을 더한 동치미
일반적인 동치미는 소금에 통무를 절여 오랜 기간 발효시켜 먹는 것이다. 하지만 이원일 셰프는 그보다는 좀 더 쉽고 가볍게 즐기기 위해 물김치처럼 맑게 담가 좀 더 깔끔한 맛이 나 동치미를 제안한다.
늦가을에는 2.5일, 겨울에는 5~7일만 숙성하면 바로 꺼내 시원하게 먹을 수 있다. 여기에 홍갓이나 적겨자를 넣어 국물을 우려내면 국물 맛에 청량감이 더해진다.
단맛에 깊은 맛까지, 토판염과 김치의 상관관계
이원일 셰프는 전남 해남의 세광 염전에서 난 김막동 할아버지의 토판염을 사용한다. 물론, 천일염 가격의 10배 정도 되는 고가의 소금이라서 재료를 절이고 간을 낼 때, 한꺼번에 많이 쓰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소금을 쓰느냐에 따라 배추의 운명이 전혀 달라진다. 단적인 예로, 중국산 소금을 사용하면 김치는 금세 흐물흐물 물러진다. 토판염은 끝 맛에서 은근한 단맛을 띠고 일반 소금보다 풍부한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다. 이는 김치 맛을 다채롭게 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은 맛이 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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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과 물을 갈아 만든 쌀풀.
밥풀로 만든 배추김치
찹쌀을 은근하게 끓여 오랜 시간 풀을 쑤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밥통에 있는 밥과 물을 일정 비율 덜어 믹서에 갈아 풀을 만들 수 있다. 또 김치에 신선함을 더하기 위해서는 소금에 절이는 방법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생배추를 물에 살짝 담가 꺼낸 다음 소금을 잎 사이사이에 뿌려주세요. 그리고 다시 물을 뿌리면서 곳곳에 뿌려둔 소금이 잘 녹게 해주는 거예요. 대개 생배추를 처음 물에 담그는 단계를 생략하는 사람이 많은데, 소금이 잘 녹지 않고, 균일하게 절여지지도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