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요일 고3 딸이 대학입시 실기시험을 치루었다. 워낙 자신이 알아서 하는 타입이라 우리 부부는 거의 간섭을 안 하지만 딸 스스로 매우 열중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시험 당일 새벽에 집을 나와 시험을 보는 대학교로 가는 도중 커피숍에서 구매한 샌드위치를 차안에서 조금 먹고 오후 2시까지 내내 실기시험에 집중했다.
시험 종료 후 기숙사가 있는 학교까지 가기 전 잘 아는 한식집에서 간장게장을 사줬다. 식탐이 별로 없는 딸내미지만 그날은 간장게장을 아주 잘 먹었다. 간장게장의 염도가 낮아서 먹기에 더 편했다. 그날 게장이 딸의 뇌리에 딱 꽂혔던 것 같다.
그 후 아내가 딸에게 준 신용카드로 딸 학교 근처 식당에서 간장게장을 먹은 내역이 SMS로 날아왔다. 요즘 아이답지 않게 속이 깊고 검소한 딸아이가 비싼 간장게장을 사먹은 것은 정말로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딸바보인 필자가 좀 더 맛있는 간장게장집을 수소문하는 것은 불문가지.
지난 주 전국한우협회에서 주관한 한우음식점 벤치마킹 투어 때 잘 아는 불고기집 업주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영업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간장게장 반응이 아주 좋다고 한다. 장사가 잘 되는 식당은 아니지만 식재료와 음식에 관해서는 항상 신경을 쓰는 양반이라 그 말에 신뢰가 갔다. 그래서 그제 그 불고기집으로 간장게장을 탐구하러 갔다.
게장에 관한 몇 가지 일화
그 전에 간장게장에 관한 개인 일화 몇 가지 소개
일화1. 여러 해 전 전북 군산의 유명한 간장게장집을 네비게이션도 없이 일부러 찾아간 적이 있다. 원래 그 식당은 고깃집으로 출발했는데 반찬이었던 간장게장이 반응이 좋아서 게장집으로 업종을 전환한 업소다. 오래 전 일이라 간장게장 맛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간장게장 정식에 반찬이 무려 20가지 가까이 나온 것이 기억난다. 아마 그집 간장게장이 기억에 안 남는 것은 딸려 나오는 수많은 반찬에 치여서 그랬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염도가 있는 간장게장은 반찬의 가짓수가 많은 것이 게장의 맛에 집중하는 것을 저해할 것이다. 그 후 간장게장집 업주를 우연히 만났는데 반찬의 가짓수를 좀 줄이라고 손님 입장에서 의견을 던졌다. 그 식당을 다시 방문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요즘은 어떤지 궁금하다.
일화 2. 몇 년 전 눈이 오고 추운 겨울날 사무실 인근을 걸어가는 도중 품위가 있는 인상의 모녀가 당시의 필자 회사 인근의 유명한 간장게장집 위치를 물어보았다. 가끔 속내를 여과 없이 그대로 이야기하는 필자는 그 유명 간장게장집을 가지 말라고 했다. 이유인즉 과도하게 비싸고 맛도 별로라고 했다.가격도 가격이지만 전에 그 유명 간장게장집에서 게장을 먹다가 밥이 너무 형편이 없어 실망을 한 뚜렷한 경험이 있었다. 필자의 견해로 다른 메뉴는 몰라도 간장게장은 우선 밥이 맛있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그리고 유명 맛집답게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미약해서 필자의 인식에 그 유명 간장게장집은 늘 별로라는 선입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집은 일본에도 잘 알려져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걸로 아는데 밥의 퀄리티가 한국보다 앞서는 일본 사람의 속내로 어떻게 평가할지 우려가 된다. 그래도 그집은 지금도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걸로 안다. 필자가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간장게장집 위치를 물어본 그 모녀는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하면서 그 게장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역시 유명세(브랜드)의 위력이 대단하다.
일화 3. 몇 년 전 일본 외식잡지 편집장이 내한해서 한국의 대박식당 특집기사를 할 때 필자가 동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곳이 유명한 갈비집으로 수원에서 가장 영업이 잘 되는 수원식 소갈비집이다. 일본 잡지 편집장은 그곳에서 양념게장을 3번 이상을 리필을 해서 잘도 먹었다. 그 유명 갈비집의 소갈비의 맛은 평이하다. 그러나 그 업소가 장사가 잘 되는 것은 갈비구이에 곁들여 나오는 찬류의 화려함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세미 한정식집 수준으로 반찬을 제공하는데 여성이 특히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여성 고객들은 점심 이후 식당을 많이 방문한다. 당연히 회전율이 좋다. 그 반찬 중에서 양념게장이 절대 요소다. 그 대박갈비집의 성공 요인 중 양념게장이 3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필자도 아주 가끔 그 갈비집에서 외식을 하는데 전적으로 양념게장 때문이다. 그다지 면이 두껍지 않은 필자는 한 번만 양념게장을 리필해서 먹는다.
일화 4. 전에 전남의 모 도시의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무한리필하는 식당을 일부러 찾아간다. 그 당시 6000원에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무한으로 리필을 한다고 해서 큰 기대를 하고 갔다. 그러나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은 돌게로 만들어서 속은 먹을 것은 별로 없고 지나치게 짜서 한 번도 리필을 할 수 없었다. 그집을 포스팅한 블로그 내용은 꼭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메리트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그 소금표 게장을 먹으러 갈 것 같지는 않다. 싼 게 비지떡이다. 예전에 어떤 창업자가 그 아이템으로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절대 하지 말라고 말린 적이 있다. 무한리필 식당은 요즘 같은 불경기에 메리트가 있지만 맛과 품질이 담보된 무한리필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슴슴한 간장게장이라서 좋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간장게장을 먹으러 홍대 전철역 인근 금화로불고기를 찾아갔다. 간장게장 2마리 1인분에 22,000원이다. 비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소비자가 인지하기에 싼 가격도 아니다. 그러나 요즘 국산꽃게가 비싼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얼마 전 딸이 간장게장을 맛있게 먹었던 한식집 업주가 게장은 거의 서비스 품목이라고 토로했다.
게장 두 마리가 접시에 담겨 나왔다. 생각보다 튼실하다. 살이 꽉 찼다. 업주분이 원재료비가 50% 이상을 상회한다고 한다. 그것도 김포 대명포구의 현주호라는 배와 직접 거래하는 데도 말이다. 사실인 것 같다. 게장의 비린내가 안 난다. 특히 간장게장의 염도가 현저하게 낮다. 게장국물을 계속 숟가락을 떠서 먹어도 짠맛은 거의 미미하다.
십전대보탕, 엄나무, 뽕잎, 인삼 등을 넣고 간장게장을 만들기 때문에 비린내를 완벽하게 잡았다고 한다. 간장게장 숙성의 정도가 좋다. 3~4일 숙성이 적당하다고 한다. 숙성과 신선함의 밸런스가 딱 맞는다.
필자가 생각하는 맛있는 간장게장은 1. 염도가 낮아야 하고 2. 게의 비린내가 없어야 하고 3. 속이 꽉 차야하고 4. 밥이 맛있어야 완벽한 간장게장 맛집의 조건이다.
참, 가격도 저렴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원가를 알기 때문에 업주에게 간장게장 가격을 더 내리라는 이야기는 못하겠다. 대체로 이 불고기집 간장게장은 4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것 같다. 다만 밥이 아직 햅쌀이 아니고 미리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보관한 것이 아쉽지만 업주는 이번 주말부터 햅쌀로 밥을 짓고 밥을 제공하는 것도 더 업그레이드 할 생각이라고 했다.
게장을 먹은 후 주방에서 남은 게살로 만들어주는 게장비빔밥은 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역시 간장게장이 밥도둑인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혼자서 간장게장 1인분을 주문하면 꽤 게장 양이 실하다. 만일 3명이 방문하면 간장게장 2인분에 고추장삼겹살 1인분을 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주문일 것이다.
업주가 고지식한 양반이라 음식에 대한 철학이 분명하다. 그러나 장사에는 소질이 없다. 원재료비가 50%를 훌쩍 넘는 간장게장은 돈을 벌수 있는 식당 아이템이 아니다. 많이 팔아야 하는데, 손님 입장에서는 간장게장은 자주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결론적으로 금화로불고기의 간장게장은 가격대비 만족도가 썩 괜찮다.
필자의 음식점 만족도를 판단하는 기준은 과연 내가 이 업소를 다시 방문할지의 여부다. 분명히 이 식당을 연내에 다시 방문할 것 같다. 그 때는 가족을 동행하고 올 것이다. 하여튼 우리 딸내미에게 사줄 괜찮은 게장집 한 곳을 발굴해서 기분이 유쾌하다. 그나저나 딸 수능시험이 끝나면 스시와 단팥죽, 갈비, 간장게장 등 개인적인 맛집투어 코스를 최소 1박 2일 이상은 진행해야 할 것 같다. 세상은 넓고 나름 사줄 음식은 많다. 우리딸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