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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침 흘리다 살찌는 건 책임 못 짐!

글쓴이: 카제  |  날짜: 2012-08-02 조회: 6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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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침 흘리다 살찌는 건 책임 못 짐!

군침 흘리다 살찌는 건 책임 못 짐!
[한겨레] [매거진 esc] 여행가방에 챙겨넣을 만한 일본 요리만화 6선

만화가 조경규는 <오무라이스 잼잼>의 작가 후기에서 요리의 대단함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풀어놓았다. ‘수십억년 동안 서로 만날 일 없던 바다에 사는 멸치와 강에 사는 우렁이 그리고 땅속의 감자와 땅 위의 호박이 뚝배기에서 만나 보글보글 우렁된장찌개가 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대단함이 아닐까!’ 도시락도 그중의 하나다. 다만 지금 당장 먹을 게 아니라 ‘언젠가 먹을 음식’이라는 점이 수많은 요리들과 다르다. <다카스기 가의 도시락>(야나하라 노조미 지음, AK코믹스 펴냄)에선 도시락을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본격 휴가철,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 수많은 음식만화 가운데 도시락 에피소드를 모아봤다. 그 줄거리를 음미하면서 ‘나만의 도시락’을 준비해도 좋지 않을까!
<다카스기 가의 도시락>
동생 떠맡은 백수 사촌오빠
도시락 싸며 정을 싹틔워

<다카스기 가의 도시락>의 주인공은 지리학 박사학위를 따긴 했지만 아직 직업을 얻지 못해 벼랑 끝에 몰린 서른한살의 남자, 다카스기 하루미. 설상가상 갑자기 미소녀 중학생 쿠루리의 보호자 역할을 떠맡게 된다. 십여년 전 집을 떠나 소식이 끊겼던 고모가 사고로 죽으면서 딸의 보호자로 주인공을 지정했던 것이다. 서른한살 구직자와 엄마 잃은 열두살 소녀. 보호자로서 하루미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도시락을 싸주는 일이다. 사촌 여동생을 위해 게살을 발라 달걀말이를 만들고, 고모가 만들어주었던 햄버그스테이크의 맛을 재현하려 밤새 다진 돼지고기의 밑간을 연구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도시락 싸는 실력이 늘어갈수록 서로 알아가고 배려하는 일이 조금씩 쉬워진다.
<현미선생의 도시락>(기타하라 마사키 글, 우토 오사무 그림, 대원씨아이 펴냄)은 도시락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면에서 한술 더 뜬다. 쿠니키다 농과대학에 식문화사 강사로 부임한 유키 겐마이는 수업시간에 일본 전통 채소절임을 만들고, 캠퍼스에 채소밭을 가꾸는 괴짜다. 2권에는 초등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소풍이 소개된다. 각자 자기가 직접 만든 도시락을 싸들고 벚꽃 아래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 먹는 모임이다. 모임의 역사는 2차대전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마츠시타 선생은 소풍날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가난한 학생과 도시락을 나눠 먹은 일을 계기로 매년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는 풍성한 꽃놀이 도시락 모임을 만든다. 마츠시타 선생은 세상을 떠났지만 모임은 계속된다.
궁극의 도시락이라 하면 뭐니뭐니해도 ‘에키벤’이다. 일본 기차역에서 판매하는 에키벤은 지역 구석구석까지 뻗어 있는 일본 철도역의 개수만큼이나 많다. ‘철도 도시락 여행기’란 부제가 붙은 <에키벤>(하야세 준 지음, AK코믹스 펴냄)은 아예 매회 에키벤을 소개하는 만화다. 도쿄에서 도시락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공은 아내의 배려로 결혼 10주년을 기념하여 ‘나 홀로 에키벤 여행’을 떠난다. 철도로 규슈에서 시코쿠, 홋카이도까지, 일본 구석구석을 다니며 각종 에키벤을 맛본다. 오징어순대부터 게살도시락 등, 500엔부터 2000엔이 넘는 호화판 도시락까지, 매회 입이 떡 벌어진다. 일본 철도 여행을 계획하는 이라면 <에키벤>으로 반드시 예습하고 맛보는 게 좋겠다.
음식과 도시락의 의미는 제쳐두고, 숫제 먹고 마시려 여행을 하는 이도 있다. <술 한잔 인생 한입>(라즈웰 호소키 지음, AK코믹스 펴냄)의 주인공은 못 말리는 애주가. 1권 ‘내 길동무는…’의 에피소드는 이렇다. 일 년에 한 번, 주인공은 기차 여행을 떠난다. 멀어져가는 도시를 바라보며 우선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바로 사케로 넘어간다. 오징어는 라이터로 그을리면 더 맛있다. 냄새가 좀 나지만 그 정도 민폐를 염려해서야 술꾼이 아니다. 다음 미리 사둔 에키벤을 연다. 밥에 간장을 뿌리면 역시 훌륭한 안주가 된다. 종점까지 딱 열 컵의 사케를 마신다. 빈병은 모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눈을 붙인다. 못 내리면 어쩌느냐고? 안 내린다. 그대로 술기운을 빌려 도쿄까지 자면서 오는 것이 열차 여행의 대단원. ‘한여름 달을/ 벗 삼아 기차타고/ 떠나는 여행.’ 멋진 하이쿠로 마지막 정취를 돋운다.
<에키벤>
일본 철도역 특산 도시락
여행가기 전 예습 되네

<고독한 미식가>(구스미 마사유키 원작, 다니구치 지로 지음, 이숲코믹스 펴냄)의 주인공은 이에 비하면 우아하다. ‘외국에서 잡화를 수입하는 무역업자이지만 매장을 운영하지는 않는다. 결혼도 마찬가지지만, 섣불리 점포를 얻었다가는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진다. 그러면 삶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본능적으로 자기 몸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는 이 남자, 늘 일 때문에 끼니를 놓친다. 허기진 배를 안고 주변의 식당을 찾는다. 무얼 먹고 싶은 기분인지, 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특별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맛집을 찾는 데 어떤 ‘촉’이 작동한다. 적당히 마음에 드는 식당에 들어가 이것저것 주문한다. 혼자 먹지만 뭘 먹어도 많이 먹는다. 결과는 언제나 대체로 만족. 딱 한번 메뉴 선택에 실패하는데, 그게 도시락 에피소드다. 출장길에 기차에서 먹을 점심으로 슈마이(딤섬의 일종)를 샀는데 무심코 포장용기에 딸린 비닐테이프를 당기자 슈슈슉~ 하며 데워지는 첨단 도시락이었던 것. 덕분에 기차 안에 냄새가 퍼지고, 사람들은 강렬한 만두 냄새에 동요한다. 점잖은 주인공은 맛을 음미하기는커녕, 정신줄을 놓을 지경에 이른다.
미식가의 요건은 두 가지다. 톨레랑스(관용)와 상상력. 낯설고 맛없다고 내치지 않아야 한다. 새로운 재료의 조합이 불러일으키는 뇌의 자극을 즐기고, 부족한 맛은 상상력으로 뒷받침한다. 이런 태도가 뒤따르지 않으면, 자기 입맛대로 골라 먹는 편식쟁이에 불과하다. <툇마루 만찬>(가와치 하루카 지음, 삼양출판사 펴냄)의 주이공 키이치는 할머니가 물려준 툇마루가 딸린 단층집에 사는 자유분방한 청년. 그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친구를 위해 안방에서 만개한 벚꽃 사진이 있는 달력 앞에 돗자리를 펴고 찬합에 담은 도시락을 먹는다. ‘없는 걸 갈구하는 것도 가끔 나쁘지 않지?’라고 말하면서 만질 수 없는 벚꽃의 아쉬움을 달랜다.

인간은 ‘먹고’ 산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먹는 일은 생존을 넘어 노동과 취향과 문화와 온갖 ‘우연’이 겹친 운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빠질 수 없는 건 이야기다. 맛도 냄새도 느낄 수 없는 음식만화에 대책 없이 빠져드는 이유다.
글 김송은 출판편집자 겸 <송송책방>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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