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맛 좀 안다'는 이들이 괜찮은 일본 요릿집이 새로 오픈했다는 '제보'를 전해온 것이 벌써 두어 달 전의 일이다. 그들의 전언에 의하면 음식 맛이나 담음새가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거니와 그곳에 가면 귀하게 대접받는 듯해 속이 헛헛한 날 느지막한 시간에 들러 술이라도 한잔 걸치면 은근슬쩍 속내도 내비치게 된다고 했다. 점심에는 일본의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데 그날그날 식자재에 따라 반찬이 바뀌고, 저녁에는 계절감이 느껴지는 가이세키 요리를 맛볼 수 있을뿐더러 이달에 갔다가 다음 달에 가면 제철 음식이 또 바뀌어 어느 때 찾아도 새롭다고도 했다. 그래서 수첩에 메모하고 별표까지 치게 한 곳이 바로 하카타 셉템버다.
"저도 한때는 입소문 난 맛집은 빠짐없이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기준'이라는 것이 생기더군요. '음식의 맛과 내용이 어떠하고, 제값을 하느냐'는 기본이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어떤 이인가'가 더 중요하게 다가오더라고요. 만드는 사람의 특별한 생각이 담긴 곳, 제게 맛집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오픈한 지 이제 1백 일을 넘겼건만 벌써 추종하는 이들이 생겨날 정도로 입소문이 난 것은 오너 셰프 서영민 씨가 마음속에 그리던 요릿집을 실현한 때문 아닐까. 그는 까다로운 기준과 남다른 시선으로 맛집 이야기를 온라인상에서 맛깔나게 풀어낸 파워 블로거이기도 하다. 요즘은 블로그를 통해 매달 제철 식재료를 달리해 선보이는 하카타의 메뉴 소식을 전하며 사람들과 소 통한다. 음식도 먹어본 사람이 제맛을 즐길 줄 안다더니, 많이 다녀본 사람이 운영하는 요릿집은 나름의 철학으로 내공을 다져가는가 보다.
"일본 요리 하면 횟집에서 생선회를 기본으로 주문하고, 쓰키다시를 공짜로 먹는 것을 떠올리는 분이 여전히 많으시더군요. 생선회는 사시미라고 해서 일본의 여러 음식 중 하나일 뿐인데 말이지요. 생선회 말고 제가 감동한 일본 요리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이미 일본 요리의 면면을 소개하는 곳이 많으니 제가 손님으로 가고 싶은 곳을 생각했죠. 편안한 가정식과 격식을 차린 가이세키 요리, 사케 바까지 일본의 음식 문화를 두루 경험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더군요." 이곳에서 점심으로 선보이는 가정식은 하루 30세트밖에 만들지 않는다. 간혹 모두 한꺼번에 예약하겠다는 이가 있는데, 매번 정중히 거절한다. 귀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갓 지은 밥과 함께 여러 손님에게 대접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그가 늘 머릿속에 그리던 공간을 실현하기 위한 고집이요, 사람들이 일부러 그곳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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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주는 음식'을 선보이고자 노력하지만 식사를 마친 손님에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받는 밥집 주인인 자신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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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타 셉템버의 내부. '하카타'는 그가 제2의 고향이라 부르는 후쿠오카의 옛 이름이고, '셉템버'를 택한 것은 그의 생일과 유학길에 오른 때, 창업일이 모두 9월에 있기 때문이라고. 3계절감과 색감을 중시하는 만큼 그릇 또한 직접 골라야 마음이 놓인단다.
바와 테이블 상판에 사용한 스기(삼나무)는 직접 벌목장을 찾아 공수한 것. 버젓한 IT 회사의 대표직을 관두고 돌연 후쿠오카로 일본 요리 유학길에 오르더니 결국 음식으로 사람과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꿈을 이뤘다.
후쿠오카 연수의 상징적 결과물이라는 일곱 치(약 21cm) 길이의 기쿠히데(菊秀) 작은 사시미용 칼. '시라쓰구'에서 받은 마지막 월급으로 구입해서 더욱 의미가 있다. 3그는 책을 통한 요리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요리책은 아니지만 < 체 게바라 > 는 특히 아끼는 책으로 자신을 낮추고 가진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본받고 싶단다.
음식으로 행복을 주는 사람
"50세가 되면 내가 하고 싶은 요리를 할 거야." 7~8년 전쯤 회사 근처 이탈리아 요리 학원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그가 가족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1~2년 요리 유학을 다녀올 거란 소리도 주문처럼 되뇌었다. "생선을 워낙 좋아해서 직접 회를 떠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본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지요." 물론 결심이 쉽진 않았다. 일본 요리를 배우고 싶던 차에 후배의 소개로 한국에 막 론칭한 나카무라 아카데미와 연이 닿았다. 하지만 생업이 있으니 평일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는 강의를 들을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며칠 고민하던 그는 덜컥 등록을 했다.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보다 하고 싶은 요리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주변에도 피해를 주면 안 되니 일도 공부도 필사적으로 매달려서 열심히 했어요. 아침에 수업 듣고, 낮에 일하고, 밤에 학교 가서 다시 연습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는데도 그저 즐겁고 좋더군요." 한데 요리를 하면 할수록 궁금한 것이 많아졌고 해답이 풀리지 않았다.
일본으로 가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결단력과 추진력이 없는 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을 그는 또 저질렀다. 15년간 운영하던 멀쩡한 회사를 정리하고, 가족에게는 양해를 구했다. 20년간 열심히 일했으니, 1년 안식년을 갖는다는 마음이었다.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였지요. 학교 선생님들도 무척 힘들거라고 모두 말리셨으니까요. 그런데 이미 마음에 불꽃 하나가 일어버려서 저도 어쩔 수가 없더군요." 그렇게 그가 일본 후쿠오카로 요리 유학길에 오른 것이 2010년 9월의 일이다.
"보수는 없어도 좋지만 밑바닥부터 일할 수 있는 곳이 되 이왕이면 칼을 잡을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현장에서 기본기를 익히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1년동안 일하면 뭔가 해답을 찾을 것 같았지요." 그의 바람대로 일본에서 그는 주방의 막내로 들어갔다. 정신없이 바쁜 이자카야에서 5~6개월 일하는 동안 요리 실력이 점점 늘었고, 가이세키 요릿집 '시라쓰구'에서 4~5개월 일하면서 막연하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밑그림을 그렸으며, 요리사로서 존경하고 닮고 싶은 장인 야마나카 씨의 초밥집 '야마나카 스시'에서 두 달 정도 견습을 하며 후쿠오카 요리 연수를 마무리했다. "시라쓰구는 하카타의 모토가 된 곳이에요. 요리하는 기술자가 될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요리로 치유자가 되자는 마음을 갖게 해주었지요. 이젠 음식으로 사람과 소통하는 요리사가 제 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