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닿는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이제 한 해가 다 가고 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며 가슴 속 저 아래까지 차가운 공기가 스며드는 것 같다. 올 해의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였을까 하고 돌이켜 보니 금요일 하루 연차를 감행하고 다녀온 방콕 주말 여행이었다. 그야말로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길거리 노점상의 팟타이를 사서 먹으며 걸어가던 기억, 생음악을 연주되는 카오산의 레스토랑에서 싱하 맥주를 얼음잔에 마시던 기억, 우리 나라의 남대문 시장 같은 짜뚜짝 시장에서 길게 줄 서서 쏨땀을 사먹던 기억 등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방콕으로 바로 달려갈 순 없지만, 방콕에서 먹던 그 맛은 서울에서도 즐길 수 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하고 방콕의 레스토랑보다 훨씬 높은 가격대의 비싼 레스토랑보다는 정감 가게 살짝 촌스러운 듯한 인테리어에 가격대도 저렴한 레스토랑이 좀 더 방콕 같은 기분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연남동에 위치한 이 곳 툭툭타이누들이 이 기분을 내기에 가장 적합한 태국 음식 레스토랑이 아닐까 싶다. 동석한 블랙베리는 이 곳의 분위기가 서울의 이태원 같은 방콕의 카오산 거리에 있는 조금 비싼 편에 속하는 레스토랑과 비슷하다고 했다.
오픈형 주방에서는 2명의 태국인 쉐프가 분주하게 요리를 하고 있고,, 입구 쪽에는 태국 수퍼에서 사먹던 지포와 여행 갈 때마다 사올까 말까 싶었던 태국의 조미료 피쉬소스와 라임쥬스가 판매용으로 진열된 것이 보인다. 어감이 귀여운 상호명 '툭툭'은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뒤 좌석에 승객이 앉을 수 있도록 한 태국의 택시 같은 대중교통 수단의 이름인데, 약 10여년 전부터 툭툭이란 이름의 팟타이 가게를 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블랙베리는 이 집에 아이디어를 도용 당했다며 어이 없게 억울해한다.
수십가지가 되는 메뉴 중에서 뭐를 고를까 생각하다가 내가 매긴 태국 음식 랭킹 3위까지 맛보기로 했다. 1위는 생파파야를 우리 나라 무채처럼 채 썰어 우리 나라 젓갈 같은 젓국과 쥐똥 고추를 넣고 짭짤 매콤하게 무친 쏨땀,우리나라로 치면 김치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치킨 바비큐가 함께 나오는 메뉴로 선택. 2위는 껍질 채 튀긴 게 위에 코코넛을 넣어 만든 카레를 끼얹고 계란까지 뒤범벅한 풋팟 뽕가리. 특히 3위는 팜슈가와 조미료 등을 넣고 철판에 볶아내는 볶음 국수 팟타이다. 그리고 반찬처럼 곁들일, 모닝글로리를 굴소스에 볶은 팍풍 화이뎅도 주문했다.
포도주를 머금을 때마다 포도의 태생이 보이고 과거의 기억이 영화처럼 펼쳐지는 만화 '신의 물방울' 주인공처럼 입 속에 음식이 들어올 때마다 태국 여행 때의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사장님께 살짝 여쭤보니 조미료 등의 공산품을 제외하고는 파파야나 모닝글로리 같은 이국적인 식재료들도 모두 한국에서 난 것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도 이제 열대 기후대 됐다라고 장난처럼 말했는데 정말 열대 식물도 자랄 수 있는 기후가 되었나보다.
한 상에 펴 놓고 푸짐하게 사진을 찍기 위해 음식이 모두 나올 때까지 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나에게는 애피타이저 역할을 하는 솜땀을 먼저 입에 넣었다. 아삭아삭 상큼하게 씹히는 쏨땀이 입맛을 돋군다. 매콤짭잘한 쏨땀은 보드라운 바베큐 닭살과 최상의 앙상블을 이루는데 닭살 한입 먹고 쏨땀 한번 상큼하게 씹고의 무한반복이 가능하게 만든다. 포크질 하는 손을 멈출 수 없다.
아이들이 특히나 좋아라 할 것 같은 풋팟뽕가리는 껍질 때 튀겨져 속살부터 껍질까지 부드럽게 씹히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코코넛의 향과 맛 덕분에 마음까지 포근하고 달달해진다. 식사로 먹을 때는 이 커리 소스에 볶음밥을 비벼 먹을 것을 권한다.
툭툭누들타이의 테이블에는 태국의 식당 테이블마다 우리 나라의 간장 소금처럼 당연히 올라와 있는 조미료 삼총사가 올려져 있다. 피쉬고추소스(프릭남쁠라), 식초고추(프릭남솜), 고추가루(프릭폰)의 세가지인데 이는 팟타이를 먹을 때 빼놓을 수 있는 필수 조미료이다. 조금씩 맛을 보면서 3가지 조미료의 맛을 음미해보자. 태국인처럼 설탕도 청해서 달짝지근하게 비벼 먹어도 좋겠다.
모닝글로리를 다진마늘과 고추를 넣고 굴소스를 넣어서 볶은 팍붕 화이뎅은 간단한 조리법으로도 만족스러운 맛을 내는 요리이다. 이 집에서 직접 재배한 모닝글로리를 판매하기도 하니 하나 사가서 집에서 별식으로 즐겨도 좋을 것 같다.
추억을 떠올리며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만족스럽게 먹고 나니 마음이 마냥 보들보드 포근해진다. 천국은 역시 나에게 있었다. 태국 여행 온 기분을 느끼고 싶은 사람. 태국 여행의 추억을 되새기고 싶은 분들에게 우리가 한 것 같은 맛 탐험을 권해드리고 싶다.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모토로 모인 싱글남녀 4인방. (스토로베리, 블랙베리, 블루베리, 융베리) 이들이 생각하는 맛집이란 가격 대비 훌륭한 맛을 내는 집과 좋아하는 사람들과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집이란다. 퇴근 후 먹고 돌아다닌 맛집 탐방기를 모아서 <퇴근 후 맛집투어 (랜덤하우스)> 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