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 윈난(雲南) 지역에서 생산한 차를 티베트 지역으로 운반하는 데 쓰였던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실크로드보다 200년이나 앞선,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다. 중국에선 당나라 때부터 근대 이전까지 차가 현금처럼 쓰이기도 했다. ‘삼국지연의’도 유비가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사 가던 차를 황건적에게 빼앗기는 대목에서 시작한다. 몇 년 전부터는 중화권은 물론 한국에서도 푸얼(普洱)차가 유행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에서 보는 것처럼 혈액순환을 돕고 몸에서 기름을 빼 준다는 푸얼차는 원래 야크 고기와 버터 등 지방이 많은 식품을 주로 먹는 티베트 사람들이 중요시했다. ‘하루 세 끼 밥은 안 먹어도 되지만, 하루라도 푸얼차를 거르면 안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푸얼차, 한물갔다고요? 100년 된 진품은 금값 120배
중국 남서부 윈난성이 주산지인 푸얼차는 청나라 때인 1659년부터 황제에게 진상했으나 도적떼의 약탈이 잦자 1839년 중단됐다. 당시에도 서민 사이에선 유행하지 않았다. 이런 푸얼차를 현대에 새롭게 살린 사람이 배우 장궈리(張國立)다. 장은 2005년 ‘차마고도’에 출연하면서 전통 방식 그대로 120필의 말과 68명의 사람을 동원해 푸얼차를 원난성 쿤밍(昆明)에서 베이징(北京)까지 운반해 왔다. 5개월에 걸쳐 4만여㎞를 이동했다. 166년 만에 재개된 운송에 중국인들은 흥분했다. 언론들은 장궈리를 ‘푸얼차를 베이징 보통 사람들에게 소개한 인물’이라고 칭송했다.

이렇게 인기를 끌게 된 푸얼차는 2007년 5월께 가격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전년도보다 최고 20배까지 뛰었다. 부동산 ‘큰손’들이 푸얼차에 투기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그해 11월에는 푸얼차에 투자하는 펀드까지 나왔다.

인기를 끌면서 잡음이 잇따랐다. 대륙보다 푸얼차 인기가 더 높았던 홍콩의 언론들은 가짜 푸얼차와 불량품이 넘치고 있다는 폭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파는 차 가운데 40%는 가짜이거나 중금속·살충제 등이 함유된 불량품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오래된 고가품으로 속이기 위해 곰팡이를 뿌리고 속성 발효시킨 푸얼차가 나돈다는 폭로도 잇따랐다. 그러면서 인기가 주춤했다.

거품 꺼져도 최고품은 남아 중국차유통협회 왕칭(王慶) 부회장에 따르면 전체 푸얼차의 60%가 거래되면서 투기가 심했던 광둥(廣東)성의 경우 2004년 300여 개이던 차 가공공장이 2년 뒤엔 4000여 개로 늘었다. 과열 경쟁과 불량품 범람으로 가격은 반년 새 40%나 떨어졌다.

“한창일 때는 베이징 왕징 아파트단지에만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6∼7개의 가게가 들어섰어요. 하지만 지금은 두 개밖에 안 남았어요.” 베이징에서 8년째 푸얼차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조헌심씨의 말이다.

하지만 그는 “비록 푸얼차의 거품은 꺼졌지만, 품질 좋은 푸얼차의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다”며 “푸얼차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입증하는 사례가 지난해 12월 광저우(廣州)에서 열린 제3회 광저우국제사치품전이다. 당시 1900년산 푸얼차 병차(餠茶:접시 모양으로 뭉쳐 말린 찻잎) 7개들이 한 세트가 350만 위안(약 7억원)에 팔렸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 120배나 높은 값이다. 조씨는 “한국 손님들이 차를 딱 하나만 살 경우에는 푸얼차를 사고, 두 종류를 사는 경우에는 푸얼차와 녹차를 반반씩 사는 편”이라고 한국인 사이에선 푸얼차가 여전히 인기라고 강조했다.

감별의 어려움 진짜와 가짜, 고급과 저질을 판단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버젓한 차 전문점인 경우에도 이익을 많이 남기려고 진품과 불량품을 섞어 팝니다. 불량품을 마시면 두드러기가 나거나 심지어 토하기도 합니다.” 조씨의 말이다.

“가짜는 목에서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고 껄껄한 느낌도 나고 냄새가 이상해요. 좋은 찻잎으로 만들지 않고 찌꺼기 찻잎으로 만든 경우 색깔이 전체적으로 고르지 않습니다. 어떤 것은 육안으로 구별하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최종 판별은 자신의 혀로 해야 합니다.”

혀로 판단하라? 푸얼차는 그러고 보니 와인과 비슷한 점이 있다. 당년에 나온 것을 최고로 쳐주는 녹차와 달리 발효차이기 때문에 오래될수록 가치가 있고, 와인처럼 조금 배우고 경험이 누적돼야 어떤 게 좋은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혀로 판단하라는 말은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일 게다. 그러나 푸얼차를 마시고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저질·불량 상품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혀끝’으로 푸얼차의 품질을 가려야 하는데 상당수 한국인은 아직 경험이 부족해 그런 수준에 이르지 못한 편이다.

푸얼차의 세계화 푸얼차는 한국은 물론 서구 사회에도 전파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차 애호가가 운영하는 토론 사이트 티채트닷컴(teachat.com)에는 차 종류에 따라 각각의 토론방이 있는데 푸얼차에 대한 의견이 가장 많다.

푸얼차가 외국에서 인기를 얻자, 중국 정부는 윈난의 특정 지역에서만 나는 푸얼차만을 진품으로 인정하고 있다. 바야흐로 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관리가 시작된 것이다.


프리랜서 써니 리 boston.sunny@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