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과 와인 “우린 잘 어울려~”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한식도 점차 국제화돼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춘 퓨전 한식이 등장하면서, 좀 더 표준화된 맛이나 조리법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정부가 ‘한식 세계화’ 추진을 공식화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음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음식과 궁합이 맞는 와인이 마리아주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한식도 코스식으로 와인과 함께
한식과 와인은 좋은 궁합일까. 꽤 오랫동안 미국에 거주한 적이 있었는데 외국손님들을 한국식당에 초대해 한식과 와인을 함께 즐기곤 했다. 한식당에서는 음식이 한꺼번에 나오는 한상차림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와인을 선택할 때 망설이게 된다. 육해공(陸海空]) 음식이 다 나와있으니 어떤 와인을 마셔야 할지 난감한 것이다. 다행히 아내의 센스 있는 아이디어 덕분에 해결이 됐다.
서양식처럼 코스요리로 나오게 함으로써 음식에 맞는 와인도 쉽게 선정할 수 있고 음식과 와인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전부침·백김치에는 화이트 와인을, 잡채에는‘피노누아’를, 갈비구이에는 ‘까베르네 쇼비뇽’이나‘메를로’를 마셨다. 그리고 밥과 국으로 식사한 뒤 식혜와 한식다과를 디저트로 즐겼다. 이 얼마나 훌륭한 한식과 와인의 궁합인가. 요즘은 코스별로 음식을 내오는 고급 한식당들을 볼 수 있지만 20년전 시카고에서 이런 시도는 쉽지 않았다.
외국인에게 인기 있는 단품요리로는 갈비·잡채·비빔밥이 대표적이다. 이들 음식에는 어떤 와인을 매치하는 것이 좋을까.

생갈비는 타닌이 적은 칠레의 ‘메를로나 카르메네르’가 좋다. 양념갈비나 불고기에는 복합적인 향미를 풍기는 프랑스 레드와인보다는 타닌이 적당히 있고 감미가 있는 미국이나 칠레의 ‘까베르네 쇼비뇽’이 훨씬 잘 어울린다.

여성 선호 비빔밥엔 화이트와인을
여성들이 좋아하는 비빔밥은 콩나물·호박·당근 등 각종 채소가 각종 양념들과 어울려진 섬유소와 비타민이 풍부한 대표 웰빙푸드다. 여기에는 ‘리슬링’이나 ‘쇼비뇽 불랑’이 적당하다. 야채의 상큼한 내음과 화이트 와인의 열대과일향이 기막힌 조화를 이루면서 음식의 풍미를 돋운다. 최근 전주시가 비빔밥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잡채는 외국인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좋아하는 음식이다. 당면에 당근·버섯·다진 쇠고기 등 각종 재료를 섞어 면 요리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에게 아주 제격인 메뉴다. 잡채에는 너무 강하지 않고 적당한 산도가 있는 ‘피노누아’나 이탈리아의 파스타에 잘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피노 그리죠’를 추천한다.

삼겹살과 와인은 최고의 궁합
와인이 가장 잘 어울리는 한국음식은 뭐니뭐니 해도 삼겹살이다. 삼겹살은 돼지 갈비에 붙어있는 살코기와 지방이 세번 겹쳐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살코기와 지방이 잘 조화를 이루어 고소한 맛을 낸다.
특히 천혜의 환경 속에서 지하 암반수를 먹여 기른 최상급의 제주 흑돼지 삼겹살은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제주도의 명품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삼겹살에는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으며 스파이시한 허브향과 뒷맛이 은은한 미국산 ‘까베르네 쇼비뇽’ 95%, 메를로를 5% 사용한 ‘스트래튼 루미스’가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이 와인은 미국의 에이미상·그래미상 수여식 공식 와인으로 선정될 정도로 우아한 맛이 일품이다.

우리도 음식을 고급화할 때가 되었다. 세계음식문화의 중심지인 뉴욕·파리에도 유명 한식당이 많다.
뉴욕에 있는 갈비 전문점 ‘우래옥’은 퓨전메뉴를 개발해 뉴요커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으며, 파리의 오래된 한식집 ‘우정’과 미슐랭 가이드(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레스토랑 평가 잡지)에서 별을 받은 식당 ‘사미인’은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고급식당으로 입소문이나 있다.

와인과 한식이 최고의 조화를 이루는 마리아주인 것처럼, 우리의 훌륭한 음식을 좀더 세련되게 다듬어서 세계인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줄날도 머지 않은 듯하다기획 구덕모 | 프리미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