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약과, 나라에서 금지한 ‘사치 음식’ |
글쓴이: 다크엔젤 | 날짜: 2009-01-16 |
조회: 3572 |
|
|
|
http://cook.startools.co.kr/view.php?category=QkYTLUwwVTtNIxs%3D&num=EhhKdRA%3D&page=81
|
약과를 먹으면 곤장을 때렸다
설날 차례를 지낼 때 빼놓을 수 없는 제물이 약과(藥果)다. 밀가루에 참기름을 넣어 반죽한 다음, 다시 꿀과 술을 섞어 판에 찍어 기름에 튀긴다. 유밀과라고도 하는데 약과를 포함해 쌀가루를 꿀로 반죽한 강정 종류를 말한다.
현대에는 제사를 지낸 후 아이들이 가장 먼저 먹는 과자가 약과이고 간식으로도 심심치 않게 사 먹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적어도 조선시대 때 일반인이 약과를 먹으려면 곤장 맞을 각오를 할 필요가 있었다. 조선시대 법전으로 대전통편이 있다. 조선 초기의 법전인 경국대전과 속대전을 하나로 통일하고, 빠진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어 정조의 명령으로 편찬한 법전이다.
최남선의 조선상식을 보면 대전통편에 “민가에서 결혼식을 치를 때나 장례식 때 유밀과를 사용하면 곤장 80대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다”고 했다.
먹고 싶으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약과’지만 조선시대 때는 지나친 사치품이어서 함부로 약과를 사용하면 곤장을 때린다고 법으로 정해 놓았으니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흥미롭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 때도 약과 사용을 금지한 적이 있으니 약과를 정말 귀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사실 당시의 시각으로 보면 약과는 정말 사치품일 수밖에 없다. 쌀을 소중하게 여겼던 시절, 쌀가루가 들어가고 너무 귀중해서 ‘진가루’로 불렀던 밀가루를 드물게 구할 수 있었던 벌꿀로 버무려 놓은 과자이니 초호화 사치 품목 대접을 받을 만 했다.
과일을 본 따 만든 과자
임금도 함부로 맛볼 수 없었던 사치품인 ‘약과’는 만든 역사가 꽤 깊다. 이익의 성호사설 등 옛 문헌을 보면 약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초사(楚辭)에 들어 있는 초혼부(招魂賦)라는 시에도 약과에 대한 구절이 나온다. ‘초혼부’는 굴원(屈原) 혹은 송옥(宋玉)이 임금이었던 초회왕(楚懷王)의 억울한 영혼을 부르기 위해 지었다는 시로 중국 한나라 때 편찬한 ‘초사’에 수록돼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 역사로 삼국시대 무렵이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초혼부에 나오는 대목을 인용해 “밀가루로 만든 떡을 기름에 튀겨 말린 것으로 엿과 꿀을 겉에 발랐으니 지금이 약과와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약과를 또 조과(造果)라고도 하는데 진짜 과일이 아니고 가짜로 만든 과일을 일반인들은 ‘조과’라고 한다. 짐작하건대 처음에는 밀가루로 과일의 모양을 본 따 만들었지만 둥글면 높이 쌓아 올릴 수 없으므로 모나게 끊어 만들었지만 과일이라는 호칭은 그대로 남아 있고, 지금도 제사를 지낼 때 약과를 과일 사이에 놓은 것을 보면 과일 모양을 본 따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차례상 약과 놓고 벌인 조선시대 논쟁
우리나라에서 ‘약과’가 크게 퍼진 것은 고려시대라고 한다. 이유는 불교의 영향 때문인데 약과가 불공을 드릴 때 쓰는 음식으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다. 그러니 살생으로 금지하는 불교에서 고기와 생선을 부처님께 올릴 수는 없었고, 제사를 지낼 때도 고기 생선을 기피했다. 대신에 부처님이나 조상님께 바치는 소중한 제물로 등장한 것이 약과였다.
고려에서는 불공을 드릴 때나 중요한 잔치에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 제수 및 잔치용품이었으니 고려사를 보면 의종 때 팔관회와 연등행사에서 약과를 포함한 유과가 차려져 있지 않았음을 무슨 큰일이 난 양 기록해 놓고 있다.
고려의 약과는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고려 제26대 임금인 충선왕이 세자 시절, 원나라에 있을 때, 그들의 잔칫상에 고려의 유밀과를 놓았다고 한다. 고려에서 만드는 약과의 맛이 원나라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고려 시대에도 ‘사치품’인 약과는 함부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 교류가 자주 이뤄지면서 향연에 약과가 올랐고 또 고려에 보내는 선물 품목으로 수요가 많아 유밀과를 쓰지 말라는 왕의 명령도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이 제사 때 약과를 “놓아라 말아라”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원래 제사 때 약과를 놓은 것은 불교를 숭상했던 고려 때 고기와 생선을 쓰지 않으니까 약과를 놓은 것인데 조선에서는 고기와 생선을 놓으니까 약과 쓰는 것은 폐지해야 한다며 논쟁을 벌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