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 더 부처'. 찾을 때마다 무슨 뜻인가 궁금했는데'이사벨'은 오너 셰프의 딸 이름이라니 직역하면 이사벨의 고깃집일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 이사벨 더 부처는 뉴욕식 스테이크 전문점으로 드라이에이징(건조 숙성) 한우를 겉만 강한 불에 재빨리 구워낸다. 하지만 덜 익힌 것보다 바싹 익힌 고기를 선호하고 레어보다는 웰던으로 요리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나는 스테이크를 웰던으로 먹어본다. 레어는 고기만 좋으면 그 맛이 보장되지만 웰던은 잘 구워야 하기 때문에 맛있게 만들기가 더 어렵다. 즉 웰던이야말로 셰프의 굽는 노하우가 반영되는 고난도 스테이크라는 것이 나의 지론. 웰던으로 조리한 스테이크는 고기의 탄 맛을 좋아하는 나의 입맛에 딱 맞는다.
스테이크 전문점인 만큼 예의상 고기에 대해 먼저 이야기했지만 실상 나는 스테이크보다 다른 메뉴를 먹으러 이곳을 찾는다. 프렌치 어니언 수프가 그 주인공이다. 여기저기 새로 생겼다는 프렌치나 이탤리언 레스토랑은 놓치지 않고 가는데, 수십 곳을 가도 수프를 제대로 끓여내는 집은 없었다. 스톡부터 준비해 제대로 끓이기가 쉽지 않은 음식이고 공들인 것에 비해 단가가 높은 편도 아니니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생각 때문인지 많은 레스토랑의 메뉴판에서 수프가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라는 책도 있지 않은가. 영혼을 담아낸'솔 푸드'를 꼽으라면 깊은 맛을 내는 국물 음식이 돼야 마땅하다고 본다. 오랜 시간 뭉근하게 끓인 수프는 추운 겨울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따뜻하게 만들고 한 그릇을 싹 비우고 나면 뱃속이 든든해지며 힘든 일과 마주해도'도전해보자'라는 의지를 불태우게 만든다.
나에게 이사벨 더 부처 어니언 수프가 그런 메뉴다.
치킨스톡을 베이스로 양파를 아낌없이 넣어 오랜 시간 정성스레 끓여 제대로 우려냈다. 바게트를 푹 담가 흐물흐물하고 그 위를 치즈로 덮어 찐득거리는데 이 모든 것이 입안에서 어우러져 깊은 풍미를 선사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치고 힘들 때 이곳의 프렌치 어니언 수프를 먹으면 추운 겨울에 따뜻한 손난로를 안고 폭신한 침대에 들어앉은 듯한 기분이 든다. 식전 수프지만 물컹한 식감의 바게트와 치즈까지 먹으면 양이 꽤 많아 속이 든든하다. 스테이크야 두말할 것 없이 맛있지만 이사벨 더 부처에 들를 기회가 생긴다면 어니언 수프는 꼭 먹어보도록. 갖가지 사이드 메뉴도 맛있는데 그중 시금치를 다져 휘핑크림과 육두구를 섞은 크림 스피니치를 권한다. 매쉬드 포테이토 또한 훌륭하다. 가끔 스테이크보다 사이드 메뉴가 더 생각나며 입안에 군침이 돌 때가 있을 만큼 말이다.
1 도산공원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사벨 더 부처의 내부는 작고 아담하다.
2 강력 추천하는 어니언 수프가 포함된 런치 메뉴. 식전 입맛을 돋궈주는
아페리티프를 시작으로 찹샐러드와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가 포함된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다.
3 시금치와 휘핑크림, 육두구를 섞어 만든 크림 스피니치는 입에서 사르르 녹아내린다.
김지영 씨는…
미식가라기보다는 대식가. 아침을 먹고 나오며 점심은 뭘 먹을까 고민한다. 보도자료에 의존한 레스토랑 소개글에 지쳐 식당들을 직접 탐방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전문가는 못 되고 보통 아줌마가 먹어보고 맛있는 식당을 소개할 예정. 광고대행사 TBWA KOREA에 근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