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셰프 윤정진 묵요리
할아버지는 황해도 분이셨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맵거나 짜지 않고 담백하고 깔끔한 황해도 음식이 익숙했지요. 특히 묵을 많이 먹었어요. 추석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주운 도토리를 곱게 빻아 물과 함께 커다란 솥에 넣고 끓이셨어요. 나무주걱으로 계속 저어 몽글몽글하게 덩어리가 지기 시작하면 더 빠른 속도로 저었죠. 눈 깜짝할 사이에 뭉근해지는 도토리묵은 매년 봐도 신기했고 할아버지가 대단한 요리사 같았어요. 빨리 먹고 싶다고 보채는 제게 급한 마음에 빨리 식히면 쉽게 부서져버린다며 뚜껑을 덮고 20~30분간 천천히 뜸을 잘 들이셨죠. 고춧가루와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놓을 수 없는 제사상에 큼직한 묵 한 덩이가 먼저 올라갑니다. 드디어 추석날 아침상에 오른 묵요리. 살살 버무린 묵무침과 뜨끈한 멸치국물에 말아낸 묵밥은 저의 추석에서는 빠질 수 없는 음식이었죠. 기를 쓰고 젓가락질을 해도 안 잡히고 겨우 잡으면 입 바로 앞에서 미꾸라지처럼 도망가고…. 한 점을 먹기까지 꽤 실랑이를 해야 하던 탱탱한 묵. 쫀쫀하게 차지면서도 입에서 녹아버리는 그 맛에 젓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먹어도 먹어도 더 먹고 싶은 묵무침과 숟가락, 젓가락 없이 양손으로 감싸 사발째 후루룩 마시면 입안 가득 채워지던 묵밥, 그 소박한 음식이 그립습니다.
▷도토리묵밥 ::재료:: 도토리묵 2모, 신 배추김치 200g, 오이 1개, 구운 김 1장, 멸치장국(물 7컵, 다시마 10×10cm 1장, 국물용 멸치 10마리), 국간장 1큰술, 깨소금·소금·후춧가루 약간씩, 김치양념(설탕·참기름 ½큰술씩)
::만들기:: 1 다시마와 멸치를 분량의 물과 함께 15분 정도 팔팔 끓여 체에 거른다. 2 ⓛ에 국간장으로 색을 내고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을 맞춘다.
3 도토리묵은 0.5cm 두께, 5~6cm 길이로 썰어 소금, 참기름으로 밑간한다. 4 김치는 소를 털어내고 굵직하게 채썰어 분량의 양념에 버무린다. 5 김은 잘게 부수고 오이는 곱게 채썬다. 6 묵과 김치, 오이채를 담아 따뜻한 멸치장국을 붓고 김가루와 깨소금을 올린다. ▷도토리묵무침 ::재료:: 도토리묵 1모, 오이·청고추 1개씩, 홍고추 ½개, 당근 개, 상추 10장, 쑥갓 3줄기, 통깨 약간, 무침양념(간장 2큰술, 국간장·설탕·참기름 1큰술씩, 깨소금 ½큰술, 다진 파 1작은술, 다진 마늘 ½작은술)
::만들기:: 1 도토리묵은 사방 3cm 크기로 썬다. 2 오이와 당근은 반 갈라 어슷 썰고 청·홍고추는 씨를 털어내고 어슷 썬다. 상추와 쑥갓은 먹기 좋은 크기로 뜯는다.
3 분량의 재료로 무침양념을 만든다. 4 큰 볼에 손질한 채소를 모두 담고 무침양념을 반 정도 덜어 살살 버무린다. 5 접시에 도토리묵을 켜켜이 담고 남은 무침양념을 끼얹은 후 ④의 채소를 올리고 통깨를 뿌려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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