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높은 하늘 아래 바람은 선선하고 가을빛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만 갑니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 상차림도 시절에 맞게 새로워지고, 먹는 방법을 달리해 몸과 자연의 조화를 이룹니다. 열을 가라앉히고 이뇨작용을 도와주어 붓기를 빼주고 미백 보습효과가 뛰어난 오이는 여름을 대표하는 열매채소로 꼽힙니다. 먹는 시기는 더운 계절이지만 제철일 때 소금물에 절여 장아찌를 담궈 두면 사계절 밑반찬으로 그만이고, 입맛 없을 때 꼬들꼬들한 오이지무침 한 접시면 밥 한 그릇이 뚝딱 비워집니다.
여러 종류의 오이 중에 깊은 맛과 진한 향으로 치면 단연 재래종입니다. 재래종 오이는 개량종에 비해 길이는 약간 짧고 다부진 느낌이 날 정도로 통통하면서 껍질은 가시가 돋아 있어 맨 손으로 만지면 따갑습니다. 껍질부터 톡톡하게 씹히는 맛이 있고 싱그러운 오이 향이 진하게 나서 생채소로 먹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장아찌나 피클을 담기에도 제격입니다.
생육기간이 짧은 오이를 일찌감치 한 번에 몰아서 심으면 장마철이면 끝물에 이르지만, 서너 차례 나누어 심으면 느긋하게 거둘 수 있고 심는 시기만 잘 맞추면 서리 내릴 때까지도 아삭한 오이를 먹을 수 있습니다. 재래종 오이처럼 종자가 실하고 자생력이 강하면 열매는 따주는 만큼 더 열립니다. 늙힐 오이는 남겨두고 나머지는 씨가 생기기 전에 거두어 생채ㆍ볶음ㆍ김치ㆍ소박이ㆍ초무침ㆍ샐러드로 먹고, 노각이라 부르는 늙은 오이는 속을 긁어내 씨앗을 받고 껍질 벗겨 김치를 담그거나 볶아서 풋오이에서 느낄 수 없는 그윽한 맛으로 즐깁니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소금물 절임으로 오이지를 담급니다. 쓴맛 나는 오이도 소금에 절여 숙성이 되면 순해지므로 장아찌는 마음 놓고 담가도 됩니다. 껍질이 약간 질겨지거나 씨앗이 송송 맺혔더라도 심하지만 않으면 담글 수 있는데 씨가 생기기 전이면 더 좋습니다.
오이지 담글 때 팔팔 끓인 소금물을 부어주려면 담그는 용기는 항아리가 적당하고, 마땅치 않으면 들통을 이용해도 됩니다. 또, 조금씩 담글 때는 냄비에 담갔다 부피가 줄어든 다음에 밀폐 용기로 옮겨 담아도 됩니다. 짠 음식은 반겨할 것이 못 되지만 숙성된 음식은 몸에 무리가 덜 가고, 오이 자체의 맛이 진하면 약간 짭짤해도 감칠맛이 있습니다. 또 물에 우려내어 먹기 때문에 소금물은 장아찌가 변질되지 않도록 짭짤하게 합니다. 수분이 많은 저장음식은 표면을 허옇게 덮는 곰팡이가 생기기 쉬운데 오이지도 곧잘 생깁니다. 오이에서 수분이 나와 본래 부었던 양보다 물이 많아지면 염도가 연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마지(간장, 된장 등의 겉면에 생기는 곰팡이 같은 물질)가 생깁니다. 한 번 생기기 시작하면 걷어내도 또 생깁니다. 담가서 3일 지나면 농도가 연해진 소금물을 따라내 약간 졸아들도록 끓인 후 식혀서 부어주면 골마지 끼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습니다. 식힌 소금물에 소주와 식초를 약간씩 섞어주면 실온에서도 오래도록 보존이 됩니다.
뜨거운 소금물에 데친 껍질은 하루만 지나도 곰삭은 듯 누런 빛깔을 띠고 통통했던 오이는 쭈글쭈글하게 변하며 탄력이 생깁니다. 보고만 있어도 입맛이 동하는 오이지는 담근 지 3주 정도 지나면 먹을 수 있습니다. 꼬들꼬들하게 씹히는 맛을 잘 살리려면 물에 담가 짠기를 적당히 우려내어 물기를 확실하게 빼주어야 합니다. 잘 담근 오이지라 할지라도 물기가 흥건한 채 무치면 제 맛이 나질 않습니다. 우려내는 시간은 절임 물 염도에 따라 다르므로 얄팍하게 썰어 20분 정도 담가서 맛을 보고 가늠합니다. 손으로 쥐어짜면 손목이 시큰거리도록 힘을 주어도 물기는 냉큼 빠져나가지 않는데 면 보자기에 싸서 도마에 올려놓고 꾹꾹 눌러가며 비틀어 짜면 금세 보송보송해집니다.
잘 숙성된 오이지 무침양념은 반반 섞은 들기름과 참기름, 통깨, 매콤하면서 자연 단맛이 좋은 홍고추를 넣으면 보기에도 깔끔합니다. 마늘은 생략하고 대파 향을 한껏 살리면 뒷맛이 좀 더 개운합니다.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이라야 주먹밥 맵시가 나고 현미에 검은콩이나 구수한 옥수수, 부드럽고 폭신한 동부를 넣으면 맛과 영양은 더해지는데, 단맛 나는 양념이 끼어들지 않아도 밥과 오이지가 달아 입에 착착 달라붙습니다. 생채소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오이지를 넉넉하게 넣어도 간을 맞추기 쉽습니다. 오이지와 잘 어울리는 황궁채는 생채로 먹으면 은근한 향과 식감이 좋아 초여름부터 서리 내릴 때까지 샐러드ㆍ쌈ㆍ겉절이 등 여러 방법으로 애용하는 잎채소입니다. 다른 채소와 어울려 맛내기도 좋을 뿐만 아니라 비타민과 칼슘이 풍부하고 장을 부드럽게 하고 해열ㆍ해독작용 등의 효능도 있습니다.
길쭉하게 썬 오이지는 김밥 재료로 쓰거나 무침보다 덜 우려내어 물을 붓고 냉국을 만들면 좋습니다. 쫄깃한 손국수말이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 고구마에 곁들여도 그만입니다.
>> 오이지 담그기재료 준비
재래종 오이 20개, 물 25컵, 굵은소금 7컵, 식초•소주 2/3컵씩, 묵직한 누름돌
만드는 방법
01 오이는 손으로 껍질을 문질러 씻어 소쿠리에 담아 물기가 빠지면 마른행주로 닦아내어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고, 무게가 있는 돌을 얹어놓는다. 누름돌은 뜨거운 소금물 붓기 전에 알맞게 고정해 놓는다.
*자연 재배한 재래종 오이는 몸에 해가 될 이물질이 없기 때문에 소금으로 씻어내지 않아도 된다.
02 소금물을 팔팔 끓여 붓고 오이가 뜨지 않도록 누름돌을 확인하고 뚜껑을 닫아 놓는다. 3일 후 소금물을 따라내 약간 졸아들도록 끓여서 식은 다음에 붓기 두 번 반복해주고 마지막으로 부어줄 때 소주와 식초를 섞는다.
>> 오이지무침과 오이지주먹밥재료 준비무침 : 오이지 2개, 홍고추 1개, 대파, 들기름참기름, 통깨
주먹밥 : 오이지 1개, 현미동부밥 1공기, 황궁채 7~10장, 들기름, 참기름, 통깨
만드는 방법
01 오이지는 얄팍하게 썰어 물에 담가 짠기를 우려내어 물기를 최대한 빼준다.
02 무침은 꼬들꼬들해진 오이지에 송송 썬 대파, 반으로 갈라 씨앗을 털어내어 채 썬 고추, 반반 섞은 들기름과 참기름, 통깨를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03 주먹밥은 짠기를 우려내어 물기를 뺀 오이지와 황궁채는 잘게 썰어 준비한다.
04 고슬고슬하게 지은 동부밥에 3과 들기름과 참기름, 통깨를 넣어 비빈 후 한 입 크기로 동글동글하게 주먹밥을 만든다.
글을 쓴 자운(紫雲)은 강원도 횡성으로 귀농하여 무농약ㆍ무비료 농법으로 텃밭을 일구며 산다. 그녀 자신이 현대병으로 악화된 건강을 돌보고자 자연에 중심을 둔 태평농법 고방연구원을 찾아가 자급자족의 삶을 시작했던 것. 건강이 회복되면서 직접 가꾼 채소로 자연식 요리를 하는 그녀의 레시피는 블로그 상에서 인기만점이다. http://blog.naver.com/jaun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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