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베트남을 진정으로 정복하고 싶다면 미군 군용품을 투하하면 됩니다. 설탕과 캔디, 콜라 등을 말이죠. 이것들은 폭탄보다 더 빨리 사람들을 파멸시킬 것입니다"
설탕의 폐해를 잘 파헤친 윌리엄 더프티의 저서 <슈가블루스>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류가 사탕수수 등을 통해 정제된 설탕을 먹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여 년 전이다. 설탕은 식품에 단맛을 부여하는 동시에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포도당 수치를 높인다. 체내에 에너지를 빨리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폭발적으로 소비량이 늘어갔다. 그러나 설탕 소비량이 늘수록 뜻하지 않았던 건강문제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각기병에서 당뇨까지 설탕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알아본다.
베트남의 베리베리 증후군 실제로 베트남 전쟁 이후 베트남 주민들 사이에서는 전에 보지 못했던 괴질이 유행했다. 원인 모를 고열과 함께 극심한 피로가 엄습하면서 다리가 붓고 아픈 증세가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주로 미군이 주둔했던 막사 주변에 살던 주민들이었다.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 원인은 <베리베리>라 불리는 질환이었다.
베리베리란 쇠약하다 라는 뜻의 세네갈 언어로 의학적으로는 비타민B 결핍증을 말한다. 우리에게는 흔히 각기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다리의 기운이 빠진다는 뜻에서 명명된 것이다. 건강했던 주민들에게 느닷없이 각기병이 생긴 이유는 미군이 남긴 군수물자에 다량으로 포함된 설탕 때문이었다.
티아민이라고 불리는 비타민 B1은 도정하지 않은 곡류의 껍질과 돼지고기에 많이 함유되어있다. 과거 도정하지 않은 쌀을 즐겨 먹었던 베트남 주민들에게 각기병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혀가 설탕의 단맛에 길들여지면서 각기병이 발생한 것이다. 설탕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티아민의 흡수와 대사가 억제되기 때문이다.
설탕에 탐닉하는 이유
현대인이 설탕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입맛이나 기호 때문일까 태아는 탯줄을 통해 엄마가 섭취하는 음식의 영양분을 받는다. 산모에게 단맛의 식품을 줄 때는 태아의 삼장 박동이 안정적인 패턴을 보인 반면, 쓴 맛을 주었을 때는 심장 박동이 매우 불규칙하게 나타났다.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단맛을 선호한다. 일시적인 우울증에 빠질 때 기분전환을 위해 찾게 되는 것이 바로 단맛이다. 설탕을 먹으면 뇌 속에서 엔돌핀이 분비되고, 일시적으로 기운이 나거나 기분이 좋아진다. 조물주는 왜 인간이 이처럼 설탕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도록 만들었을까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에너지원인 포도당을 혈액 속에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기아상태가 많았고, 따라서 인체는 가능하면 많은 양의 포도당을 비축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인간의 혀와 뇌가 설탕에 탐닉하도록 진화론적으로 세팅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설탕처럼 단맛에 강력하게 반응해서 이를 많이 섭취해야 포도당을 혈액 속에 담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시시대와 달리 현대인에게는 설탕에 탐닉하는 이러한 본능이 성인병이라는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설탕은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평소 설탕과 단것을 즐겨먹는 어느 20대 직장여성의 건강상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감기에 잘 걸리는가 하면 피부나 입안 등에 상처도 잘 생기고, 한번 생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매번 감기 뒤끝에는 폐렴에 걸려 죽을 고생을 해야 했다.
검사 결과 그녀의 혈액에서는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백혈구의 일종인 단핵구의 숫자가 크게 줄어있었다. 단핵구란 세균 등의 이물질을 가장 먼저 포착해 아메바처럼 잡아먹는 면역의 최전방을 담당하는 백혈구이다. 설탕을 많이 먹을수록 단핵구의 면역기능이 떨어진다.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혈액 속의 백혈구 모양을 관찰한 결과, 설탕을 먹기 전에는 혈액에서 백혈구가 포도상구균을 잘 잡아먹어 모양이 적혈구보다 커져 있었다. 반면, 설탕을 먹은 후에는 백혈구가 포도상구균을 잡아먹지 않아 오히려 적혈구보다 크기가 작았다. 평소 설탕을 즐겨먹지 않는 사람이라도 설탕을 많이 먹으면 30분만 지나도 백혈구의 기능이 떨어져 면역력이 약화된다.
설탕은 혈당의 롤러코스터
쌀밥이나 잡곡밥을 먹으면 혈당이 서서히 올라가다가 떨어지는 반면, 설탕은 급격히 올라갔다가 급격히 떨어진다. 밥은 녹말 등 다당류이므로 소화되고 분해되어 포도당이라는 단당류가 될 때까지 시간이 꽤 소요되는 반면, 설탕 같은 단순당은 금새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혈당을 급속하게 올린다. 이처럼 혈당이 급격히 올라가면 췌장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될 경우 지친 췌장이 탈진하여 당뇨병 같은 성인병이 생기게 된다.
설탕은 당지수가 매우 높은 식품이다. 당지수란 특정 식품을 섭취할 경우 소화되어 혈액 중에 포도당 농도가 증가되는 속도를 객관적으로 표시한 지수이다. 당 지수가 중요한 이유는 포도당의 총량(칼로리) 못지않게 당도의 증가 속도가 비만과 당료, 유방암 등 각종 성인병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당지수가 높은 식품은 섭취 후 포도당 농도가 빨리 상승한다. 당지수가 높으면 췌장을 자극해 인슐린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분비하게 된다. 과잉 분비된 인슐린은 췌장을 지치게 해 당뇨를 유발함은 물론, 인체가 쓰고 남은 열랑을 지방으로 만들어 버려 뚱뚱해지기 쉽다. 건강을 위해서는 당연히 당지수가 낮은 식품을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장 속에서 천천히 소화되고 흡수되어 포도당 농도가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좋다.
설탕은 혈당을 급격히 올리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혈당을 갑자기 떨어뜨리는 저혈당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밥 등 녹말과 달리 체내에서 신속하게 소비되기 때문이다. 설탕을 먹으면 처음에는 혈당이 급속하게 올라가지만, 조금 지나면 이내 위험수준으로 떨어진다. 문제는 고혈당증이 당뇨와 비만 등 성인병을 일으키는 것처럼 저혈당증도 건강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저혈당증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장기가 바로 인간의 뇌이다. 뇌세포는 오직 포도당만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한다. 다른 탄수화물은 이용하지 못한다. 저혈당증에 빠지면 뇌기능이 떨어져 학습장애와 업무능률이 저하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긴다. 운전이나 위험한 작업을 할 때 부주의로 인한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설탕을 많이 먹어 저혈당증을 자주 경험한 근로자일수록 산업재해 발생률이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설탕으로 인한 저혈당증이 폭력성과 충동적인 성격을 유발한다는 보고도 있다. 혈당이 떨어지면 이를 회복하기 위해 부신에서 아드레날린이라는 비?로 만든다. 설탕을 평소 많이 먹는 어린이는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행동이 부산해지는 이른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증후군이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설탕은 비만 등 성인병의 숨어있는 범인
정제된 설탕은 장에서 빠른 속도로 흡수되어 간에 도착한 뒤 중성지방으로 변한다. 중성지방은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해로운 물질로, 심한 경우 뇌졸증과 심장병을 일으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기름진 음식뿐만 아니라 설탕 위주의 당분만 먹어도 중성지방이 과잉 생산되고 이로 인해 동맥경화와 지방간, 비만 등 성인병이 발생한다. 한국인의 경우 육류위주의 서구인보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지만, 설탕이나 밥 등 당분 섭취가 많아 중성지방 수치가 높기 때문에 심장병 등 성인병이 잘 생긴다.
설탕은 뼈도 갉아먹는다. 탄산음료를 많이 섭취할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골절 가능성이 3배나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동물 실험결과 설탕을 섭취할 경우 소변으로 빠져나오는 칼슘의 양이 훨씬 많았다. 그만큼 칼슘이 빠져나가 뼈가 푸석푸석해졌다는 의미다. 설탕을 먹으면 혈액이 산성화되고, 이를 중화하기 위해 알칼리성을 띤 칼슘이 뼈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게다가 설탕은 칼슘과 인이 결합하는 것을 방해해 뼈 속에 칼슘이 축적되는 것을 차단하기도 한다.
암세포는 설탕물을 먹고 자란다
독일 풀다의 의사 알렉산더 헤르초크 박사에 따르면, 정상세포는 주로 지방을 에너지 원료로 사용하지만, 암세포는 포도당을 이용한다고 한다. 포도당을 비롯한 설탕을 암세포가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다.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3~8배나 많은 포도당을 대사시킨다. 미국 존스 홉킨스 의대에서는 실제 동물의 포도당 섭취를 제한할 경우 암세포로 바뀌기 쉬운 불량노화세포가 스스로 죽어가는 세포자살현상이 왕성하게 일어났다는 연구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즉, 설탕을 섭취하지 않을 경우 궁극적으로 암이 예방된다는 것이다.
설탕 탐닉은 일종의 중독증세
설탕을 섭취하던 쥐들에게 포도당의 공급을 차단했더니 머리를 흔들고 앞발을 떨며 이를 부딪치는 등 마약 중독시 나타나는 전형적인 금단증세가 나타났다. 쥐들은 자신의 눈을 할퀴는 등 불안증상을 보이며 매우 난폭하게 행동했다. 이는 몰핀과 니코틴 금단현상과 유사한 증상으로, 쥐들이 설탕에 중독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설탕을 다량섭취하면 뇌에서 마약과 비슷한 성분이 만들어진다. 설탕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우리 몸에 마취 및 진통제 성분이 생성된다. 설탕에 탐닉하는 것은 일종의 마약중독과 비슷한 현상이다. 1923년 미국에서 금주령이 내려졌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가 설탕 소비량의 급증이었다. 사람들이 술 대신 설탕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설탕은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설탕을 가장 좋아하는 국가는 싱가포르이다. 한해 평균 1인당 72kg의 설탕을 소비한다. 우리나라는 21kg 정도이지만, 문제는 설탕 소비량이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패스트푸드 등 가공식품의 확산에 있다.
복숭아 통조림은 전체 중량의 20%가 설탕이다. 말이 복숭아지 설탕덩어리를 먹는 것과 다름없다. 토마토 케첩은 25%가 설탕이다.
200g 짜리 케첩에는 50g이나 되는 설탕이 들어 있다.
단맛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아 설탕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감자튀김에도 설탕이 들어 있다. 튀기기 전에 감자 자체를 설탕시럽에 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담배에도 설탕이 들어있다. 담배의 성분 표기를 살펴보면 전체 중량의 6%가 설탕이다. 모르는 사이에 설탕은 이미 우리 생활 구석구석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는 것이다.
혀에서 바로 단맛이 느껴지는 과자와 사탕, 케이크 등의 식품은 당지수가 70이상으로 매우 높다. 밥이나 빵, 국수 등 녹말 위주의 복합 탄수화물은 당지수가 50~60으로 중간 정도이다. 오래 씹어야 겨우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위장 속에서 소화되는데 시간이 걸리므로 포도당 농도가 비교적 서서히 올라간다.
당지수가 낮은 대표적인 식품은 콩이며 기름을 뺀 유제품도 해당된다.
콩은 당지수가 25 정도로 매우 낮다. 요구르트는 14에 불과하며 탈지우유도 32이다.
주 의할 식품은 감자이다. 감자는 단맛이 잘 느껴지지 않아 건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지수 면에서는 경계해야할 식품이다.
으깬 감자는 70, 튀긴 감자는 75, 구운 감자는 85나 된다. 고구마가 54임을 감안할 때 감자의 당지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당지수가 높더라도 채소나 과일 등 열량이 적은 식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컨대, 당근의 당지수는 71 이며, 수박도 72나 되므로 55인 스파게티보다 높다. 하지만, 당근이나 수박에 포함된 당분자체의 열량이 적으므로 포도당 농도의 급격한 상승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스파게티에 비해 미미하다.
2004년 미국에서는 초중고교에서 탄산음료의 판매를 금지시켰다. 탄산음료를 통한 과도한 설탕 섭취가 미국 청소년들을 비만 등 성인병으로 이끌고 있다는 미국 정부의 판단에서 나온 조치이다. 미국인들의 설탕 섭취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탄산음료 등 소프트 음료이다.
한국인은 이미 밥 등의 탄수화물을 통해서 몸에 필요한 당분의 75%를 얻고 있다. 따라서 단지 단맛을 즐기기 위해 섭취하는 하루 설탕 적정량은 티스푼으로 2스푼 이내로 제한되어야 한다. 커피를 마실 때 설탕을 2스푼 넣게 되면 당신은 이미 그날 하루 허용되는 설탕을 섭취한 것이다.
미네랄을 훔치는 설탕
회도(灰盜)라는 말이 있다. 나무의 재를 뜻하는 한자 회. 예로부터 이 글자는 알칼리 혹은 미네랄을 뜻하는 글자였다. 여기에 훔친다는 의미의 도자를 붙여보면, '미네랄을 훔친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놀랍게도 이 회도라는 말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설탕의 또 다른 이름으로 쓰였다는 사실이다. 설탕은 미네랄을 훔쳐서 몸의 기능과 균형을 깨뜨린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설탕의 또 다른 이름인 회도는 설탕의 어두운 모습을 나타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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