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시작되는 6월, 정수리가 점점 더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이런 날이면 아침부터 더욱 분주해지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장터다.'도시인들은 재래시장이 많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짐작하지만 의외로 그 수는 참 많다. 세월이 흘러 사라질 듯 보이지만 그래도 우리 이웃처럼 가까이 그 존재를 드러내는 곳이 장날, 장터의 모습이다. 그 활기 넘치는 삶의 현장을 다녀왔다.
1일, 6일은 한산오일장 가는 날
"세상에 깜찍하기도 해라. 이걸 손수 만드신 거예요?" "그럼, 내가 만들었지, 누가 만들었겠슈(웃음)." 작고 앙증맞은 물조리부터 함석지붕까지, 그의 손을 거치면 의미 없는 함석들이 제각각 이름을 가진 물건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한산초등학교 앞에 자리한 함석집 사장님은 찾아오는 손님에게 구수한 입맛과 함께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함석으로 만든 여러 가지 물건을 구경시켜준다. 영차영차 물 긷는 양동이, 아주 오래된 우물에나 있을 법한 두레박, 예쁜 화단에 '조르르' 물을 주는 물조리 등 이런저런 생활용품에서부터 건축자재까지 없는 것 없이 모두 있어 보인다. 그뿐인가, 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어물전이 있는데 그곳에 떡하니 자리한 호수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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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군가의 자전거에 한가득 실린 꽃들. 지금쯤 마당에 꽃밭이 완성되었겠지.
2 "그냥 동네 목간통이다 생각하고 오셔유"라며 손님을 맞는 주인아주머니가 있는 호수목욕탕.
3 오늘 얼마를 벌었나? 손자 녀석 용돈을 줄까? 아니면 영감 탁주 한 잔 받아드릴까?
| | 이곳은 따로 주인이 없는 듯하다. 아니 주인이 있어도 그림자처럼 그 존재감이 없다. 손님이 알아서 비누도 갖다 쓰고, 목욕비도 스스로 계산한다. 목욕탕 사장님은 이곳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곳이 아니라며, "장보러 오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때도 밀고 머리도 감고, 그렇게 편하게 오가며 들릴 수 있는 옛날 목간통 같은 곳으로 기억해줬으면 좋겠슈"라며 소박한 꿈을 전한다.
그 외에도 한산오일장에서 볼 수 있는 풍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산에서 유일하게 남아 아직도 '탕탕탕' 하며 쇠를 두드리는 아성대장간, 한동안 어려움을 겪다가 최근 막걸리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는 한산양조장, 효험 좋기로 유명한 경북한약방, 요즘 보기 드문 활자를 이용해서 30년 이상 인쇄만 하고 있는 대신인쇄소, 3대가 대를 이어 운영하는 삼거리국밥집까지 모두 한산오일장을 지켜온 터줏대감들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만 들어도 1박 2일로는 부족할 듯하다.
한산오일장은 세모시로 유명한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서 1일과 6일마다 서는 장이다. 흔히 한산오일장을 일컬어 한산모시오일장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장날 새벽, 이슬이 채 마르기도 전에 모시시장이 반짝 하고 열리기 때문이다. "아이구, 내가 이 넘을 몇 달 동안 공을 들여 맹글었는디, 좀 더 쳐줘유", "아니 시세라는 것이 있는디,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가유" 하며 백열등 아래에서 싸움 아닌 흥정이 오간다.
최근에는 새벽 모시시장 건물에 시장 상인들이 직접 만든 공예품들을 전시하는 '한다(韓多) 공방'이 문을 열었다. 공방에는 작고 깜직한 미니어처 도끼, 천연 모시로 만든 휴대폰 케이스, 솟대, 천연 모시 스카프 등이 전시·판매된다. 가격 또한 비싸지 않으니 기념품으로 하나씩 구입해도 좋을 듯하다.
한산시장에서 특별히 챙겨볼 음식은 한산섞박지이다. 섞박지는 1700년대부터 100여 년간 궁중은 물론 서민에 이르기까지 즐겨 먹어온 김치로, 한산을 대표하는 김치다. 일반 김치와 달리 심심하게 절인 배추와 큼직하게 썰어 넣은 무, 미나리, 쪽파, 마늘, 고춧가루 등을 넣고 시원하게 발효시킨 것이 특징이다. 섞박지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삼거리식당(041-951-0206)과 오라리식당(041-951-0629), 향토회관(041-951-7668)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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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양반, 나는 등판이 좋으니까 얼굴은 찍지 말고 등판만 찍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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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웃음 한 바구니, 사랑 한 봉지 주세요 못골종합시장
"방송 몇 분전이지?" "5분 남았는데요." "이러다 오늘, DJ가 방송 '빵구' 내는 거 아냐?"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려한 외모의 꽃미남이 등장한다. 작은 얼굴, 오뚝한 코, 짙은 눈썹, 뽀샤시한 피부까지 예사롭지 않은 외모를 자랑하는 그에게서 연예인 '포스'가 느껴졌다. 그런데 웬걸, 그가 입고 있는 것은 하얀 반죽이 묻은 앞치마다.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DJ는 수원 못골시장에서 '보이는 라디오 온에어'를 진행하는 종로떡집의 이하나씨.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전 11시 30분이면 어김없이 '보이는 라디오'의 시작을 알리는 경쾌한 오프닝 음악과 함께 감미로운 DJ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가게 구석구석 울려 퍼진다. 그래서일까, 음악이 흘러나오는 시장의 분위기는 더욱 밝고 경쾌하다. 손님들도 시장통을 지나가면서 노래를 따라 부른다.
채소, 콩나물, 두부 등 주로 먹을거리를 사러온다는 변경희씨는 권선동에서 30분이나 버스를 타고 올 정도로 못골시장의 단골이다. 이날 역시 안산에 사시는 친정어머니와 함께 시장 구경을 나왔다. 못골휴식터에 들러 시장에서 산 떡을 나눠 먹다가 내친김에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현철의 '아미새'를 신청한다. 이윽고 시장에는 '아름답고 미운 새 아미새 당신, 남자의 애간장만 태우는 여자…' 구수한 트로트 멜로디가 전해진다.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에 1500원, 그 향과 맛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처음부터 못골휴게터를 운영했냐는 질문에 운영자 박선자씨는 이렇게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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