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를 이해할수록 조리법은 간단해지고 맛은 깊어진다
최경숙 선생은 워낙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꼼꼼한 성격 덕분에 정확한 레시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정요리 선생이 되었다. ‘가정요리의 대가’로 불리는 그녀는 음식 맛은 조미료의 기교대신 식재료 본연의 깊은 맛이 느껴진다. “오랜 시간 요리를 하다 보니 ‘손맛’이라는 것이 아주 과학적인 구조를 지녔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식재료의 성분을 먼저 파악하게 됐지요.” 그랬더니 맛이 어디서 나오는지가 보였고, 어떻게 조리해야 각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면서 전체적으로도 조화로운 맛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식재료에 대한 이해와 제철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부터는 전국 각지의 시골장을 돌았다. 그 과정에서 몰랐던 식재료들을 알게 되었고, 제철 식재료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30대 초반에 요리를 시작해서 40대가 되었을 때는 ‘이제 요리를 조금 알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50대가 되어서 ‘이제야 진짜 요리를 알겠다’는 확신이 또 한 번 들었지만, 사실 ‘진정한 음식 맛’의 개념을 깨달은 건 60대가 된 지금이에요. 30대일 때 제 레시피를 두고 사람들은 ‘맛은 있지만 재료가 많은 데다 만들기가 복잡하고 어려워 따라 하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5~6년 전부터는 레시피가 간단해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최소한의 것만 사용하기 때문에 재료 준비도 간단해졌죠. 사실 제철에 나는 식재료는 그 계절에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고, 간을 따로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맛있어요. 요리의 기본은 제철 식재료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예를 들어 애호박된장찌개에 애호박을 넣는 이유는 애호박의 맛과 향을 느끼기 위해서다. 애호박이 가장 맛있는 철에 그것을 이용한 된장찌개를 끓이면 가장 훌륭한 맛이 나오는 것. 조리법 역시 애호박의 맛이 충분히 우러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잡하게 조리할 필요가 전혀 없다. 제철 애호박은 이렇게 된장찌개로 만들어 먹어도 맛있지만 조리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숭덩숭덩 썰어서 소금을 약간 뿌린 다음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어도 단맛이 나고 맛있다. 한식에 많이 이용되는 마늘도 갓 캤을 때 구워 먹으면 정말 맛이 좋다. 하지만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수분이 많이 날아가 맵고 아리다. 그래서 봄나물에는 마늘을 많이 넣지 않는 것이다. 아리고 독한 마늘이 나물 특유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듯 식재료 고유의 맛이 어우러져야 하나의 요리가 완성된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음식을 만들 때 각각의 맛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요리하는 사람이 할 일이다. 식재료에 대한 이해가 깊고 넓을수록 조리법은 간단해지고 음식의 맛은 더욱 담백하고 깊어지기 때문이다.
요리의 깊은 맛, 재료의 선택과 발효가 답이다
그녀는 요즘 전통주 담그기에 푹 빠졌다. 집 안에 밀폐된 통들이 여러 개 줄지어 있는데 그것들이 다 술이다. 특히 다양한 꽃을 말려 만든 백화차로 담근 백화주는 소복이 쌓인 꽃잎이 시각적으로도 참 아름답다. 술 한 잔만 마셔도 어지러운 그녀지만 술 담그기에 대한 욕심만큼은 남다르다. 백화주 말고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계피, 통후추, 잣, 생강, 대추를 넣어 빚은 오종주가 달지 않고 그윽한 향이 일품이라면, 복분자주는 설탕을 넣지 않아도 맛이 달고 향이 진하다. 쌀, 누룩, 찹쌀을 넣어 빚은 석탄주는 단맛이 강하고 향기롭다. 이렇게 담근 술은 정월에 찾아오는 귀한 손님에게 가정의 번성과 화목을 기원하면서 한 잔씩 대접한다. “요리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결국 김치와 장 그리고 술에 심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발효’가 주는 깊은 맛 때문이랍니다. 원래의 재료가 발효되면서 영양소는 훨씬 풍부해지고 맛은 더욱 깊어지죠.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다양한 짠맛을 낼 수 있는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까지 소금 발효를 통해 얻은 장들은 하나의 식재료에 각기 다른 짠맛을 선사합니다. 외국에서는 전복에 소금이나 엔초비 정도로 간을 맞추지만, 우리는 초고추장, 간장 등 다양한 장을 이용해 쉽고도 다양하게 맛을 낼 수 있죠. 우리나라 음식만큼 다양하고 독창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나라도 없어요.” 그녀가 만든 유명한 양념 중 하나가 조리용 집간장이다. 요리하기 전에 하루쯤 날을 잡아 만들어두면 요리시간도 절약되고 요리연구가 못지않은 음식 맛을 낼 수 있다. 조리용 집간장을 넣으면 빠른 시간 내에 음식의 간, 색, 윤기 등이 조화를 이루고, 요리할 때마다 설탕, 소금, 후춧가루, 조미술 등 갖은 양념을 분량 맞춰 넣지 않고도 맛을 낼 수 있다. 맛을 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짠맛과 단맛의 비율을 맞춘 것이므로, 요리할 때 분량 조절에 실패하더라도 너무 짜거나 달아지는 일을 줄일 수 있다. 또 간장 특유의 냄새가 없어 식재료 고유의 맛과 향도 그대로 살릴 수 있다. 조리용 집간장은 맛간장, 메밀간장, 우동간장, 맑은 장국, 우동간장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맛간장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간장 중 하나다. 생선, 어묵, 두부 등을 조리거나 불고기, 갈비 등을 재울 때 사용한다. 간장과 설탕의 비율이 적절하므로 조림을 하면 윤기가 흐르고, 고기를 재울 때는 마늘과 파만 추가로 넣으면 된다.
맛간장
기본재료 간장 5컵, 설탕 500g, 정종·조미술·물 ½컵씩, 레몬·사과 ½개씩 만드는 법 1 냄비에 간장, 설탕, 물을 넣고 주걱으로 2~3회 저어준 후 끓인다. 2 볼에 정종과 조미술을 섞어 넣고 사과와 레몬을 얇게 썰어 넣는다. 3 ⓛ이 끓으면 정종과 조미술을 붓고 계속 끓이다가, 한 번 더 끓어오르면 사과와 레몬을 넣고 불을 끈 다음, 뚜껑을 덮어 하룻밤 두었다가 사과와 레몬을 건져내고 병에 담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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