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지희는… 청강문화산업대학 푸드스타일리스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각종 매체를 통해 생선, 채소, 와인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칼럼을 쓰거나 강연을 하고 있다. <주간조선>에 연재한 글 중 생선, 해산물만 모아 《생선 해산물 건강사전》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7번 국도를 타고 경북 영덕으로 가는 길의 절경은 가을 미식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구불구불 국도를 지나면 절벽과 어우러진 단풍 그리고 점점 짙어지는 바다 내음에 마음이 설렌다. 여행객들 사이에서 바다가 가장 아름답고 넓어 보이는 곳으로 소문난 곳이 바로 영덕이다. 강구항에서 시작해 고래불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약 40㎞의 지방도로는 해안에 바로 접해 있어 드넓은 바다와 어촌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강구항부터 축산항까지의 강축해안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힐 정도로 운치 있다. 그중에서도 ‘영덕대게’로 유명한 강구항은 동해안에서 손꼽히는 미항이다. 10월 말부터 일명 ‘홍게’라 불리는 붉은 대게를 시작으로 물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싱싱한 생선들이 엄청나게 쏟아진다.
드넓은 바다와 작은 어시장, 크고 작은 선박, 얼음을 실어나르는 일꾼들, 대게를 찌는 찜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김 등 포근한 어촌의 정취는 마을을 찾은 이들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한다. 강구항 옆 어시장에서는 소규모로 생선을 구입할 수 있다. 아지매들이 즉석에서 거칠게 쳐주는 회맛도 일품. 바다를 배경으로 어시장 안 파라솔 밑에서 즐기는 싱싱한 회 한 점과 시원한 소주는 여행객들의 피곤한 심신을 단번에 회복시켜준다.
방어·가자미·숭어·도루묵… 물오른 생선이 한가득
1. 항구와 조금 떨어진 바닷가에서는 학꽁치 낚시를 하기 좋다. 낚시꾼들이 던진 먹이를 먹기 위해 모여든 학꽁치 떼의 모습이 장관이다. 2. 생가자미는 회로 먹어도 맛있고 구이, 찜, 조림 등으로 조리해 먹어도 맛있다. 3. 꾸덕하게 말린 가자미는 쫀득쫀득 씹히는 맛이 일품. 영덕에서는 11월부터 제철이다.
“생선에는 동물성 단백질에 많은 타우린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성인병 예방과 성장기 어린이 발육에 좋아요. 영양 성분은 풍부하나 기름이 적고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식으로도 그만이죠.”
이른 새벽, 어선들이 부두로 들어와 붉은 대게를 비롯해 방어, 가자미, 우럭, 숭어, 도루묵 등 생선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인근 상인들이 모여 경매를 시작하고 오전 9시면 경매가 대부분 끝난다. 경매장의 활기는 이때부터 어시장으로 옮겨간다. 관광객을 상대로 생선을 팔고 회를 떠주는 어시장의 규모는 그 길이가 100m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게부터 건어물까지 없는 것이 없다. 생선을 구경하다가 물을 뿜는 오징어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현란한 칼솜씨로 회를 뜨는 상인의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기도 한다. 가을 생선이 제철인 요즘은 방어, 가자미, 우럭, 숭어, 오징어, 한치 등을 골고루 사도 3만 원이면 충분하다. 흥정해서 더 싸게 구입할 수도 있다. 구입한 생선은 즉석에서 회로 떠먹기도 하고 얼음을 채워 집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산지에서 산 생선을 손질하지 않은 상태로 집에 가져가면 싱싱한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사자마자 숨통을 끊고 내장과 피를 빼서 가져가는 것이 좋아요. 구입한 당일 요리하지 않을 경우에는 비늘과 쉽게 상하는 아가미, 내장 등을 제거한 뒤 바닷물과 비슷한 염도의 물에 헹구고 소금을 뿌려 밀폐용기에 넣어 냉장보관하는 것이 좋아요. 다음 날 먹을 경우에는 냉장실에, 2~3주 정도 보관하려면 냉동실에 넣어두는 것이 좋고요.”
- 평화로운 강구항 전경. 오전까지는 어선들이 분주하게 들고 나지만, 오후가 되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한가롭다.
강구항에서는 10월 말부터 도루묵과 가자미가 많이 잡힌다. 산란기인 11월과 12월 사이의 암컷이 가장 맛있는데, 비늘이 없고 비린내가 적은 데다 크기도 작아 아가미 쪽에서 내장을 빼고 씻은 다음 찌거나 튀겨서 뼈째 먹으면 구수하다. 칼슘이 풍부해 어린이나 노인에게 좋은 물가자미는 영덕지방에서는 ‘미주구리’라 불리는 횟감용과 구이용, 마른 가자미로 구분된다. 특히 미주구리 회는 칼슘이 풍부해 수술한 환자에게 특히 이로운 음식으로 꼽힌다. 마른 가자미는 부패율이 낮은 11월부터 3월까지 생산하는데, 이때 말린 생선은 비린내가 덜 나고 오래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마른 가자미 한 판(한 상자)은 크기가 작은 것은 1만 5천에서 2만 원, 중간 크기는 2만 원에서 4만 원에 판매되며, 큰 것은 주문생산에 의해서만 판매된다. 말린 가자미는 마늘, 고추장, 파, 간장, 물엿, 깨 등으로 양념한 후 약불에서 조려 먹으면 별미다. 뼈를 제거한 후 튀김으로 먹어도 맛있다.
사람 팔뚝만 한 숭어는 계절마다 맛이 다른데 봄·겨울 숭어는 달고, 여름 숭어는 밍밍하며, 가을 숭어는 기름이 올라서 고소하다. 다른 생선에 비해 철분이 많아 조혈작용이 탁월하고 빈혈 예방에 효과적이다. 산지에서 구입한 숭어는 살이 쫀득쫀득해 회로 먹어도 좋고, 어만두나 어선, 어채 등을 만들기도 좋다. 살이 많고 기름기가 많아 찜으로 먹어도 맛있다.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유독 크고 예쁜 생선이 눈에 띈다. 바로 방어다.
“방어는 다른 생선에 비해 히스티딘 등 단백질의 함량이 높고 지방이 풍부하며 비타민D와 나이아신이 특히 많아요. 산란기 전인 겨울이 제철이라 맛이 가장 좋아요. 이때의 방어를 ‘한(寒)방어’라고도 하죠. 방어, 참치 등 붉은살생선의 눈 주위에는 시력장애에 효과적인 비타민A가 풍부합니다. 그래서 대가리째 조리해 머리에 붙은 살까지 꼭 먹는 게 좋아요. 지방이 많아 타기 쉬우니 약불로 굽고 프라이팬에 구울 때는 기름을 적게 넣으세요.”
- 작지만 다양한 생선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강구항 근처 어시장. 여행객들은 생선과 대게를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지금이 제철, 울진의 대표 수산물 대게
- 대게를 구입할 때는 배 부분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그 부분이 노르스름한 ‘황장’을 사야 살이 꽉 차 있기 때문. 사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황장을 육안으로 구별하기란 쉽지 않지만, 최소한 지나치게 저렴한 것만 피해도 먹장을 고를 확률은 낮아진다.
10월부터 3월까지 한창 속이 여물어가는 대게는 미식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특히 영덕은 대게의 원조 고장으로 그 명성이 높다. 이곳에서 잡히는 대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일명 ‘홍게’라고 불리는 붉은 대게와 ‘영덕대게’로 나눌 수 있다. 홍게는 700∼2,000m의 해저에서 서식하며 영덕대게와 모양은 비슷하나 껍질이 딱딱하고 속이 좀 덜 찬 편이다. 잡히는 양이 많아 가격도 영덕대게의 3분의 1 수준이다. 홍게는 몸통이 진홍색으로 붉지만, 영덕대게는 등쪽이 주황색이며 배 쪽은 흰색에 가깝다. 살이 연해 맛도 그만인데, 다리를 분질러 살을 쏙쏙 빨아 먹는 재미에 찾는 사람도 많다. 일반적으로 ‘대게’라고 하면 ‘큰(大) 게’로 알고 있으나 실제 영덕대게는 다리가 대나무처럼 곧다 하여 대게라 부르는 것이다. 특히 영덕대게는 몸통에서 뻗어나간 8개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곧다 하여 ‘죽해(竹蟹)’라고도 불린다. 영덕대게는 바다 밑바닥에 개흙이 전혀 없이 깨끗한 모래로만 이루어진 영덕군 강구면과 축산면 사이 앞바다에서 잡힌 것이 살이 차고 맛이 좋아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껍질은 누런 주황색이고 살은 쫄깃하면서도 단맛이 난다. 홍게에 비해 살이 꽉 차 있어 한 마리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향도 진한 편이다.
속이 실한 영덕대게의 앞다리는 잡은 배 이름을 표시한 상표가 붙어 있다. 이렇게 원산지가 표시된 영덕대게는 마리당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어지간한 것은 7~8만 원대다. 박달나무처럼 속이 단단하게 들어찬 ‘박달게’는 마리당 1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상가에서는 대부분 러시아산 대게를 함께 팔고 있는데, 국내산 대게는 연한 주홍색이 돌고 껍질이 깨끗한 편이다. 심해산은 껍질에 작은 패류 따위가 붙어 있기도 하다. 싸게 판매하는 것들은 대부분 ‘물게’인데, 움직임이 적고 다리를 눌러보면 물렁물렁하다. 내장의 색깔도 중요한데, 황색인 것이 살이 가장 꽉 차 있으며 그 다음이 녹색이다. ‘먹장’이라 불리는 검은색 내장을 가진 게는 물게인 경우가 많고 살도 거의 없다.
쫀득쫀득 씹는 맛이 일품인 피데기 오징어
강구항에서는 요즘 오징어 말리기 작업이 한창이다. 오징어는 흔히 동해에서만 잡힌다고 생각하는데, 오징어 어군이 강원도 동해안에서부터 남하하기 때문에 영덕 해역에서는 육질이 가장 두꺼운 시기에 오징어를 잡을 수 있다. 어획한 오징어는 청정 해역의 신선한 바닷가 찬바람으로 ‘피득하게’ 건조시켜 반건조 오징어, 일명 ‘피데기’를 만든다. 하루 말린 피데기를 4~5일 더 말리면 건오징어가 된다. 피데기는 건오징어에 비해 육질이 연하고 맛도 월등하다. 약한 숯불에서 구워 먹어도 맛있고. 잘게 썰어 고추장 양념으로 조리면 밥반찬으로도 일품이다. 구울 때는 타우린 성분으로 인해 특유의 향이 난다. 철조망이나 지지대를 세워 만든 건조장에 내걸린 수많은 오징어들이 해안도로 곳곳에 즐비하다. 작년에는 오징어가 잡히지 않아 가격이 비쌌지만, 올해는 풍년이어서 영덕을 찾으면 저렴한 가격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오징어를 구입할 수 있다.
말리는 해산물은 오징어가 가장 많지만 날씨가 더 쌀쌀해지면 꽁치(과메기)나 명태 등도 만날 수 있다. 바다에서 갓 잡아 바닷바람에 꾸덕꾸덕하게 말린 생선은 신선한 생선에서는 맛볼 수 없는 씹는 맛이 일품이다. 말리는 과정에서 물기가 빠지면서 살은 탄력 있어지고 맛은 깊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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