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만석꾼 집 딸로 태어난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남달랐다. '음식은 손맛'이라고 했던가. 어머니 손만 거치면 모든 재료가 먹음직스러운 요리로 탄생했는데, 그 야무진 솜씨를 빼닮은 자식이 바로 나다. 두런두런 가족이 모여 만두 빚는 명절날, 내가 만든 만두는 소도 두툼하게 들어가고, 주름도 보기 좋게 자리 잡아 늘 칭찬을 받았다. 요즘은 재료 준비부터 빚는 과정까지, 품이 많이 들어가는 만두를 집에서 빚는 풍경을 쉽게 보지 못한다. 똑같은 모양으로 찍어낸 냉동만두, 동네 분식점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특징 없는 만두 등이 보편화되면서 맛의 특색이 사라진 듯하다. 매서운 추위에 따뜻한 만둣국 생각이 간절해 추억의 만두 맛을 찾아가 보았다.
쫄깃하고 얇은 피에 다양한 재료로 만든 소를 넣어 익혀 먹는 만두는 중국 딤섬, 이탈리아 라비올리, 인도 사모사 등 세계 곳곳에서 다른 모양과 이름으로 진화됐다. 우리나라는 서울과 평안도, 황해도 지방을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각각 맛과 매력 포인트가 다르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하손만두(02-379-2648)'는 3대째 만두를 빚고 있는 만두 명가다. 푸짐하면서 양념 맛이 적은 북쪽 음식과 간이 세고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남쪽 음식의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서울식 만두로 담백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직접 만든 국간장을 넣어 맛을 살리는 것이 포인트! 우리 밀로 만든 피는 쫄깃하고, 숙주나물·두부·돼지고기·쇠고기를 섞어 만든 소는 인공조미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아 담백하다. 4~5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하루 종일 만두를 빚는 '만두방'에서 바로 만든 신선한 만두를 맛볼 수 있는데, 그날 빚은 만두는 바로 소진하는 것이 철칙이다. 고즈넉한 부암동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가정집을 개조한 편안한 분위기 덕에 담백하고 깔끔한 만두 맛이 배가 된다.
참외만 한 큼직한 만두를 맛볼 수 있는 중구 무교동 '리북손만두(02-776-7350)'는 평양이 고향인 주인장이 전쟁 때 월남해 만둣집을 차렸다. 양이 푸짐해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른 만두는 72시간 푹 곤 사골 국물에 삶아내 깊고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인사동 '궁(02-733-9240)'은 배추, 숙주나물, 부추 등의 채소로 속을 꽉 채운 개성식 만두를 산뜻한 양지, 채소 국물에 삶아 담백한 맛이 자랑이다. 압구정 '만두집(02-544-3710)'은 전통 평안도식 만두가 주특기다. 화려한 고명도 없고 고기 한 점 올리지 않았지만 먹으면 속이 든든하다. 맵고 칼칼한 국물 맛이 더해진 만둣국도 감기 걸렸을 때 먹으면 효과 만점이다.
'북촌손만두(홍대서교점 02-333-1282)'는 요즘 입맛에 맞춘 캐주얼한 프랜차이즈 만둣집이다. 매일 아침 만두소를 준비해 바로 빚어 판매한다. 아기 손바닥 크기의 찐만두, 바로 튀겨 바삭한 튀김만두, 부드럽고 촉촉한 굴림만두 등 다양한 만두를 맛볼 수 있다. 세 가지 맛을 보고 싶다면 골고루 섞은 모둠만두를 추천!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일반 분식집과 비슷하다고 흔한 만두 맛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함경남도 함흥 옹기마을의 이씨만두에서 유래해 3대째 이어온 전통의 맛으로, 특히 튀김만두는 이곳을 따라올 자가 없다.
따뜻한 만둣국 한 그릇이 있어 영하의 날씨와 매서운 바람이 두렵지 않았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좋아하는 만두를 되짚어보니 속이 충만해지는 느낌이다. 만두와 얽힌 추억도 새록새록 생각나면서 자주 못 보는 친척들이 그리워진다. 올 명절에는 가족과 모여 앉아 만두 빚으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겠다는 바람을 가슴 한편에 새겨본다.
홍석천씨는…
1995년 KBS 대학개그제로 데뷔, 각종 시트콤과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있는 방송인이자 이태원 마이타이를 비롯해 마이첼시, 마이차이나 등을 성공시킨 레스토랑 오너다. 미식가로 소문난 그는 전문적인 식견으로 맛은 물론 서비스, 인테리어, 분위기가 좋은 베스트 맛집을 매달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