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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사는 마을, 창평 삼지내 슬로시티

글쓴이: 하얀건담  |  날짜: 2012-01-05 조회: 1910
http://cook.startools.co.kr/view.php?category=TUAYJQ%3D%3D&num=EBlGcxM%3D&page=131   복사
자, 앞서 세 명의 인터뷰를 통해 살아보는 여행의 매력에 눈떴다면, 이번엔 당신이 떠날 차례다. 한옥의 처마 아래 먼 산을 바라보고, 좁은 돌담 골목을 따라 걸어보면 당신의 마음에도 시나브로 평온이 찾아들 것이다. 여기, 담양 창평 삼지내 슬로시티를 소개한다.


느리게 사는 마을에 들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을 지난다. 영화에서 한 번은 본 적 있는 낯익은 길의 장면이다. 느릿하고 느긋하다. 서두를 까닭이 없으므로 천천히 그 풍경을 탐한다. 마을에 이르면 시원스러운 평야다. 동쪽으로 뻗은 평지는 월봉산에 가닿고 남쪽으로 향한 대지는 국수봉과 이어진다. 월봉산에서는 월봉천, 운암천, 유천의 세 갈래 물길이 발원하는데 마을 앞에서 하나로 모인다 해 '삼지내'다.


느리게 사는 마을, 창평 삼지내 슬로시티

 

벌써 1500년 전이다. 창평은 백제 굴지현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16세기 후반부터 고 씨가 집성촌을 이뤄 현재에 이르렀다. 마을 사람들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공동체처럼 살아간다. 속닥거리는 정감이다. 또한 옛집에서 살며 옛 방식대로 전통 먹을거리를 만든다. 기다림은 그들의 생활 속에 익숙한 표정이다. 지난 2007년에는 장흥, 완도, 신안과 함께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 마을에 지정됐다. 슬로시티는 1999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에서 시작했다.

말 그대로 '느리게 살자'는 슬로건이다. 전통의 수공업과 조리법, 문화유산과 친환경적 농법 등의 요건을 갖춘 마을을 지정한다. 문명화되고 도시화된 삶과 그 속도에 대한 반기다. 동쪽 입구에는 그 상징처럼 '남극루'가 서 있다. 노인들의 편안한 여생을 기원하며 옛 창평 관아의 문를 옮겨 지었다. 원래는 양로정이었으나 안동 선비들이 '산세 좋고 들 좋고 공기 좋은 극락'이라 해 이후로는 극락전이라 부른다. 2층의 누각은 한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후손들의 삶을 지긋한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툇마루에서 먼산바라기

극락전에서 논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선다. 삼지내마을은 집성촌답게 고 씨 가문의 고택이 많다. 고조선 가옥과 고재환 가옥, 그리고 한말 민족운동의 근원지였던 고정주 고택이 두드러진다. 11가구 20여 동의 한옥으로, 대체로 1900년대 초에 지어졌다. 그 사이로 시간의 때가 묻어나는 생활촌이다. 한옥으로만 꼭 채우지도 않았고 지나치게 꾸미지도 않았다. 자연과 전통을 존중하며 그 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진 삶이다. 묵어 갈 수 있는 한옥 민박도 여러 채다. 한옥은 그 자체로 느긋한 삶의 완성이다. 머무는 여행의 첫걸음이다. 옛집에 짐을 풀고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그중 '한옥에서'는 삼지내마을에서도 비교적 규모가 크고 깔끔하다. 제봉 고경명의 후손인 고광신의 고택이다. 지금은 화순에서 이사 온 김영봉·전유례 씨 부부가 15년째 산다. 집은 온돌로 된 안채와 별채, 그리고 구들로 이뤄진 사랑채로 나뉜다. 그 틈새에 집을 닮은 예스러운 정원이 있다. 가장 오래된 건물은 안채다. 그러므로 고풍스럽다. 툇마루에 앉으면 고즈넉한 풍광이다. 안채와 별채 사이에는 감나무 한 그루도 서 있다. 계절의 색감이 말갛다. 그 아래는 장작 태우는 연기가 무심한 듯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바깥주인은 뜰채를 들어 홍시를 따고 머리를 곱게 땋은 안주인은 사골국을 끓인다. 따로 다도체험장도 있다. 차 한잔을 나누며 따스한 시간을 쓸어 담는다.

'소나무민박'은 고인후의 14대 장손 고영준 씨가 운영한다. 고인후는 의병장 고경명의 아들로 창평 고씨의 시조 격이다. 역시나 맵시 고운 한옥이다. 역사교실과 종부의 다실을 운영한다. 마을의 역사를 들여다보기에 제격이다. '마음을 내려놓는 1박 2일'은 한옥과 더불어 그 품에 안긴 연리지가 귀하다. 서로 다른 뿌리의 나무가 하나의 몸을 이룬다. 시간이 빚어낸 숨결이다.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차린 소박한 밥상과 직접 덖은 차도 낸다. '달구지민박'은 창평 쌀엿을 판다. 전국에 소문난 맛이다. 이에 붙지 않고 담백하다. 때를 맞춰 가면 쌀엿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디에 묵든 한가로운 목가의 풍광이다. 만물의 몸짓은 달팽이처럼 더디기만 하다. 그래서 좋다. 한옥이 주는 정취다. 기둥에는 홍시나 옥수수가 햇볕을 머금고, 댓돌 위에는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하다. 도시를 벗어난 안도감, 그리고 아담한 정원을 품은 거닒, 살며시 불어드는 바람이다. 가만히 고개를 돌리면 담 너머 먼 데 산이 따른다. 그 느낌이 시간을 놓고 가만히 쉬는 여행의 잠자리로 한옥을 찾게 만든다.


느리게 사는 마을, 창평 삼지내 슬로시티

 

 

1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예스러운 툇마루 정원.

2 고택을 개조해서 만든 '한옥에서'의 실내 인테리어는 한옥과 양옥 스타일이 믹스되어 있다.


싸목싸목한 길 위의 밥상

쉼에만 느림이 있을까. 삼지내마을에는 맛도 느리다. 슬로시티는 슬로푸드에서 왔다. 인스턴트식품과 상업적 기업 농업에 맞선다. 자극적인 맛이 아니라 자연 본연의 맛과 향의 재발견이다. 약초밥상과 텃밭밥상, 산골밥상은 삼지내를 대표하는 슬로푸드 밥상이다. 제철 재료를 기본으로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두레박 약초밥상'은 최금옥 씨가 56가지 약초를 이용해 밥상을 차린다. 그녀는 약초로 건강을 회복한 후 깊은 관심이 생겼다. 지금은 산속에서 채취한 다래, 엄나무 잎, 오미자 잎 등에 효소와 식초 등을 가미해 장아찌를 담근다. 그 종류가 100여 가지에 달하는데 약초밥상에는 그때그때 30~40가지를 올린다. 헛개나무 가루와 뽕잎 가루 등으로 지은 밥도 각별하다. 천연 염색 체험도 이뤄진다. 마을의 중심을 조금 벗어나면 외동마을의 산골밥상과 용운마을의 텃밭밥상도 맛깔나다.

'산골밥상'은 고산지대에서 채취한 나물과 약초로 차리는데, 특히 팥밭에서 길러내는 팥밭무(시) 김치 맛이 일품이다. '텃밭밥상'은 텃밭에서 키운 채소로 차려낸 밥상이 입맛을 돋운다. 그저 차려진 밥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물을 뜯고 삶고 무치는 모든 과정을 주민들과 함께한다. 그러므로 짧게나마 마을 사람처럼 산다. 방문자센터에 있는 슬로푸드 마을부엌도 빠질 수 없다. 외갓집 밥상이 떠오른다.

돌솥영양밥에 제육볶음과 묵은지고등어찜을 비롯해 10여 가지 나물 반찬이 한 상 푸짐하다. 아침에는 누룽지를 낸다. 가격도 저렴하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한량처럼 마을을 서성이길 권한다. 남극루에서 외동마을과 용운마을을 지나 상월정까지는 싸목싸목길이라 이름 붙었다. 싸목싸목은 '천천히'의 전라도 사투리다. 싸목싸목길 위를 싸목싸목한 마음으로 걷는다.


두레박 약초밥상
월, 수, 금, 토,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3시/1만원

산골밥상
토요일 오전 11시~오후 2시/1만원

텃밭밥상
수. 목요일 오전 11시~오후 2시/1만원

슬로푸드
마을부엌 아침(누룽지) 3천원, 점심 7천원(월요일은 휴무)


느리게 사는 마을, 창평 삼지내 슬로시티

 

1 '한옥에서'의 다도 체험.

2 창평이 좋아 화순에서 이사 온 김영봉·전유례 부부가 15년째 살며 가꾸는 한옥 민박.

3 옛 방식으로 쌓아 올린 창평 삼지내마을의 돌담은 국가지정등록 문화재다.

사연을 빚어 정을 만드는 사람들

머무는 여행이 무료한 여행일 까닭도 없다. 삼지내마을에서는 다채로운 생활문화 체험교실도 열린다. 디지털 시대에 손끝으로 빚어내는 아날로그의 형상이다. 그것은 빚어내는 사람의 삶이 전하는 생활의 교훈으로 도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빈도림생활공방은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 편집장을 지낸 고재욱 가옥에 자리한다. 독일에서 태어나 한국을 공부한 빈도림 씨와 한국에서 태어나 독일을 공부한 이영희 씨 부부의 생활공방이다. 주말마다 꿀초와 천연 화장품을 만드는 체험이 가능하다. 꿀초는 토종 꿀벌의 천연 밀랍으로 만든다.

초에서 달큰한 꿀 향이 배어난다. 연말 선물로 좋아 12월에 더 인기다. 알콩달콩하게 살아가는 두 사람의 삶은 꿀초보다 달콤하고 향긋해 귀촌을 꿈꾸게 한다. 수제 막걸리도 빚어볼 수 있다. 그저 단순한 술 빚기 체험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이 빚은 술은 편지와 함께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고 다른 이가 빚은 술을 마시고 편지를 읽는다. 술잔을 나누듯 사연을 나눈다. 들녘에 난 풀을 뜯어 담는 산야초 효소나 야생화 효소 체험도 있다. 자연의 입맛으로 돌아가는 미감의 귀로다.

굳이 체험이 아니어도 좋다. 삼지내마을은 동네 골목을 따라 거니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여유를 맛본다. 마을의 골목을 잇는 것은 돌담이다. 논의 돌과 흙을 가져다 쌓은 옛 돌담은 투박하나 다정하다. 이제는 단단한 시간의 무게도 더한다. 그것을 어찌 콘크리트 담과 비교할까. 등록문화재 제265호로 고스란한 선인의 생활이다. 토석담이 주를 이루고 간간이 토담과 점돌의 담이다.

약 3.6km의 길로 마을 구석구석을 유려하게 스민다. 최근에는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흙길을 열었다. 길가로는 본래의 물길을 되살린 수로도 만들었다. 그 너머로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한옥의 풍경과 시골의 삶이다. 길 위에서 처음 만난 주민들에게 가벼이 인사를 건네는 것도 낯선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여백을 가지므로 풍경 속을 거니는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그 심상들이 모여 삼지내마을의 하루를 이룬다.


빈도림 생활공방

주말 오전 10시~오후 5시/대나무초, 담금초, 컵받침, 립글로스, 보디밤 만들기 각 1만원

수제막걸리 교실
월, 목요일/1인당 2만원

야생화 효소 교실
희망 날짜에 예약 가능/1인당 1만원(효소 담아갈 1ℓ 공병 개별 준비)

산야초 효소 교실
금요일 오전 11시부터/1인당 1만원(효소 담아갈 1ℓ 공병 개별 준비)


느리게 사는 마을, 창평 삼지내 슬로시티

 

 

1, 2 약초 캐기 체험도 하고 56가지 약초밥상도 맛볼 수 있는 두레박약초밥상.

3 창평의 유명 먹거리인 쌀엿. 입에 들러붙지 않고 담백하다.

4 양초 만들기, 천연 화장품 만들기 등의 체험이 가능한 빈도림 생활공방.


느리게 사는 마을, 창평 삼지내 슬로시티

 

 

INFORMATION
창평 슬로시티 방문자센터
승용차 이용 시


호남고속도로 동광주TG 지나 창평IC 또는 서해안고속도로 담양JTC 지나 창평IC.

대중교통 이용 시
광주역에서 303번 버스 이용 창평파출소 하차(1시간 이내)

문의
전남 담양군 창평면 창평리 113-1번지 061·383-3807, www.slowc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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