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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우리 떡

글쓴이: ★…믿는 ㉠ㅓ㉧f  |  날짜: 2011-11-08 조회: 1155
http://cook.startools.co.kr/view.php?category=TUAYJQ%3D%3D&num=EBlMcxs%3D&page=137   복사
개학을 하고 가장 가까운 연휴는 추석밖에 없었다. 그때까지는 '죽었습니다' 하고 집과 학교를 오가야 했다. 그것뿐이겠는가. 학교 갔다 오면 놀지도 못한 채 수시로 농사일을 도와야 했고 물가에 매놓은 소를 끌고 어두워질 때까지 꼴을 먹여야 했다. 농사 짓지 않는 집 친구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옥수수수염이 시들고 콩이 단단하게 여물고 감자알이 굵어가도 감동은커녕 다 내 관심사 밖의 일이었다. 지겨운 밭고랑을 도망쳐 친구들이랑 만화책이나 텔레비전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게다가 제발 도시락에 모래알 같은 강냉이밥 대신 보리가 섞인 쌀밥을 싸가고 싶었다. 반찬도 신 김치나 고추장 대신 소시지나 멸치볶음으로 변했으면 좋겠다고 소원했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평소 아무리 공을 들여 내 편으로 만들어놓아도 가겟집 아들의 소시지나 어묵, 과자 공세에 여자아이들은 너무도 쉽게 입장을 바꿨다.

 

원통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학교에 가기 전 닭장에서 달걀 몇 개 훔쳐 과자로 바꿀 능력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것으로는 여자아이들의 마음을 단 하루 정도 잡아놓을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단 말인가. 선생이나 가겟집 아들로 태어나지 않고. 남몰래 한탄했지만 그런다고 무엇이 달라질 거라고는 애당초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한없이 쓸쓸했을 뿐이다. 점심 시간, 모래처럼 까칠까칠한 강냉이밥 앞에서. 하굣길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 옆의 흔들리는 코스모스 앞에서. 코스모스에 날아든 벌을 잡아 꿀을 빨아먹다 침에 쏘이자 결국 그 분풀이를 여자아이들에게 하는 졸렬함까지 선보이고 말았다. 가겟집 아들이 준 과자가 그렇게 맛있었냐며 집으로 못 가게 길을 막고 행패를 부렸다. 지금 생각해도 창피할 뿐이다.






그리운 우리 떡






그리운 우리 떡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추석이 돌아왔다.
한가위 보름달은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내게 추석이란 오직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것밖에는 다른 의미가 없었다.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던 형과 누나가 들고 올 종합선물세트와 새 옷, 그리고 집에서 만드는 떡 생각뿐이었다. 방앗간에 다녀온 엄마는 멥쌀 반죽에 콩을 넣어 빚은 송편을 찌며 집 나간 자식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뜨끈뜨끈한 부뚜막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송편이 익어가는 솥에서 새어나오는 김과 냄새를 맡으며 깜박깜박 졸곤 했다. 방에 들어가 기다리라고 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솥뚜껑에 손을 살짝살짝 대어보며 군침을 삼켰다. 그러다 보면 형과 누나가 식구들 이름을 부르며 불빛 속으로 환한 얼굴을 디밀었다. 모처럼 산골짜기 외딴집이 환해지는 저녁이었다.


어린 내게 추석의 백미는 당연히 성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산소는 집에서 20여 리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추석 성묘 때면 인근에 사는 친척들이 모두 함께 성묘를 갔다. 중요한 점은 친척들마다 성묘 지낼 음식을 각각 준비해 간다는 거였다. 즉 먹을거리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모두 걸어서 성묘를 갔기에 아이들에겐 만만한 길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코흘리개 사촌들 중 어느 누구도 그 행렬에서 빠지는 사람이 없었다. 20리 산길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기에 도착하기만 하면, 가서 산소에 절 몇 번 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턴 평소 먹기 힘들었던 각종 떡과 고기들을 배터지게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니 누가 포기하겠는가! 헉헉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머루나 다래를 따먹으며 걸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흘러내려도 우리는 징징 울면서도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벌집을 건드려 몇 방 쏘이는 것도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산소에 도착하면 모두 만세를 불렀다. 빨리 잡다한 요식행위가 끝나길 기다리며 우리는 산소 앞에 펼쳐놓은, 큰집 작은집 고모네에서 가져온 떡을 집요하게 노려보았다. 옆에서 다 들릴 정도로 군침을 삼키며. 이제 와서 먹어라, 라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었으니.


송편의 소는 집집마다 달랐다. 우리 집은 속에 콩을 넣었고 큰집은 흑설탕을, 고모네는 햇밤을 넣었다. 초가을 햇살을 맞으며, 음식 냄새 맡고 달려드는 벌을 쫓아가며, 둥근 산소 앞에 둘러앉아 먹었던 그 각각의 송편 맛을 어떻게 잊어버리겠는가. 걸어서 다니던 그 성묫길은 시간이 흐르자 몇 대의 경운기를 타고 갔고, 또 시간이 흐르자 농용트럭이나 자가용을 타고 가게 되었다. 더불어 그 코흘리개 아이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둘 성묫길에서 떨어져 나갔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일까. 살아가는 일이 바쁘기 때문일까. 지금은 너무나도 단출한 식구들이 모여 성묘를 하고 고소한 들기름을 바른 송편을 먹는다. 그 옛날 생각을 하며. 목이 메면 막걸리를 마시며. 물론 성묘의 대상이 바뀐 게 가장 큰 원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찾아갔던 성묘가 지금은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는 게 우선순위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마음 한쪽으로 쓸쓸한 바람이 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송편을 먹다 목이 메어 물을 마셨는데도 쉽게 내려가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뭔가… 지난 세월 속에서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배는 부른데 오히려 더 헛헛하기만 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생각해보니 내 어린 시절의 온갖 떡들은 가난한 우리네 마음을 보살펴주었던 보약이나 다름없었다. 솥에 올려놓은 시루에서 익어가던 백설기, 길고 깊은 겨울밤 화로에 구워 먹던 절편, 깨물면 설탕물이 흘러나오던 색색의 송편, 아무렇게나 빚어서 찐 손바닥만 한 감자떡, 봄날의 향긋한 쑥버무리… 이런 것들을 먹으며 우리는 자라났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떡과 이별하게 되었다. 바다 건너온 음식들에 홀려 어린 시절의 떡 같은 건 저만치 밀쳐두었다가 명절에나 몇 조각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게 고작이다. 따끈따끈한 부뚜막 옆에 앉아 떡이 다 되기를 기다리던 추억은 아무렇게나 내던져버린 채. 다행히 요즘 들어 홀대받던 떡이 조금씩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겠지만 내 마음의 떡은 아직도 여전히 그곳에 있다.


이번 가을엔 20리 길을 걸어서 그곳에 가보고 싶다. 거기 가서, 수수한 가을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며 송편 하나를 두 번에 나눠 꼭꼭 씹어 먹을 것이다. 체하지 않도록 꼭꼭 씹어서.

소설가 김도연은…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오대산 자락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십오야월'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등이 있으며, 공효진 주연의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원작소설을 썼다.


그 시절 어머니처럼
정성 가득 떡 만들기
오색꽃송편






그리운 우리 떡

 

■준비재료
멥쌀가루 12컵, 소금 1큰술, 찐 단호박 ½컵, 백년초가루·쑥가루·팥가루 4큰술씩, 뜨거운 물·참기름 적당량씩, 송편소(풋콩소(풋콩 2컵, 소금 약간), 밤소(밤 30개, 꿀 2큰술, 소금 약간), 깨소(깨소금 ½컵, 꿀 2큰술, 소금 약간))


■만들기
1 멥쌀가루는 소금을 섞은 뒤 체에 2번 내려 5등분한다.
2 쌀가루에 각각 체에 내린 찐 단호박과 백년초가루, 쑥가루, 팥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어 차지게 반죽한다.
3 풋콩은 껍질을 까서 삶아 식힌 뒤 소금으로 간하고, 밤은 삶아 껍질을 까고 체에 내린 뒤 소금과 꿀을 섞는다. 깨소는 분량의 재료를 섞어 만든다.
4 다섯 가지 반죽을 밤톨 크기로 떼어 둥글게 빚은 후 속을 파서 다양한 소를 넣고 오므려 조개 모양으로 빚는다.
5 김이 오른 찜통에 젖은 보자기와 솔잎을 깔고 ④를 올린 뒤 30분 정도 익힌 다음 찬물에 담갔다 건져 참기름을 바른다.


Cooking Tip

반죽을 차지게 오래 주물러야 떡을 찐 후 터지지 않는다. 풋콩, 밤, 깨 등을 함께 넣어 송편 소를 만들어도 맛있다.

 


모둠콩설기






그리운 우리 떡

 

■준비재료
멥쌀가루 5컵, 소금·물·설탕 적당량씩, 모둠콩 2컵


■만들기
1 멥쌀가루는 소금과 섞은 뒤 물을 부어 손으로 잘 비벼 고운체에 내린다.
2 모둠콩은 물로 씻은 뒤 설탕과 소금을 섞는다.
3 ①의 멥쌀가루에 설탕을 넣고 모둠콩을 살살 섞는다.
4 ③을 찜기에 담아 김이 오른 찜통 위에 올린 뒤 25분 정도 찐다.

5 5분 정도 뜸을 들인 후 도마나 큰 접시에 쏟아내고 한 김 식혀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Cooking Tip

햇콩이 나는 가을에 만들어 먹기 좋다. 마른 콩을 사용할 때는 콩을 물에 불린 다음 냄비에 설탕과 물을 약간 넣고 조린 뒤 사용한다.

 


대추곶감설기






그리운 우리 떡

 

■준비재료
대추 10개, 곶감 2개, 멥쌀가루 5컵, 소금 약간, 물 5큰술, 설탕 3큰술


■만들기
1 대추는 돌려깎아 6등분하고 곶감은 꼭지를 떼어 씨를 빼고 굵직하게 채썬다.
2 멥쌀가루는 소금을 섞은 뒤 물을 넣고 손으로 잘 비벼 고운체에 2번 내린다.
3 ②에 설탕과 채썬 대추와 곶감을 넣고 섞은 뒤 찜기에 안친다.
4 김이 오른 솥 위에 찜기를 넣고 20분 정도 찐다.

5 5분 정도 뜸을 들인 후 도마에 쏟아낸 뒤 한 김 식혀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Cooking Tip

멥쌀가루에 물을 섞는 것이 중요하다. 멥쌀가루를 살짝 쥐었다가 손바닥 위에 놓고 살짝 위로 띄웠을 때 형태가 남아 있으면 수분의 양이 적당한 것. 부서지면 물을 좀 더 넣는다. 방앗간에서 막 빻아온 쌀은 따로 물을 많이 섞지 않아도 된다. 생과일을 넣을 경우 익으면서 물이 많이 나오므로 살짝 말려서 사용한다.


고구마소꽃떡





그리운 우리 떡

 

■준비재료
멥쌀가루 3컵, 소금·새싹 잎 약간씩, 물 ½컵, 참기름 적당량, 고구마소(고구마 2개, 계핏가루 ½작은술, 다진 대추·깨소금 3큰술씩, 소금 약간), 대추 5개


■만들기
1 멥쌀가루는 소금과 물을 넣고 반죽해 김이 오른 찜통에서 25분 정도 찐다.
2 ①을 절구나 반죽기에 넣고 꽈리가 일도록 치대서 참기름 바른 도마에 올린 뒤 밀대로 얇게 민다.
3 고구마는 삶아서 체에 내린다. 삶은 고구마와 계핏가루, 다진 대추, 깨소금, 소금을 섞어 대추알 크기로 동그랗게 만든다.
4 ②를 지름 7cm 정도의 원형 틀로 찍은 뒤 ③의 고구마소를 넣고 네 귀를 모아 꽃 모양으로 접는다.
5 꽃 모양으로 자른 대추와 새싹 잎으로 장식한다.


Cooking Tip

반죽을 꽈리가 일도록 치댄다는 것은 반죽에 폭폭 소리가 나는 작은 풍선 모양이 여러 개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을 거쳐야 절편이 쫄깃쫄깃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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