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얼큰한 생태찌개가 구미를 당긴다. 가공 상태에 따라 생태, 동태, 북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명태는 가장 한국적인 생선이다. 생태찌개, 북어구이, 명란젓 등 한국인의 밥상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 됐다.
명태가 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많이 잡혔기 때문이다. 얼마나 흔했는지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은 ‘임하필기(林下筆記)’라는 문집에 “함경도 원산을 지나다 명태 쌓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한강에 땔나무를 쌓아 놓은 것처럼 많아서 그 숫자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적었다.
역시 고종 때 ‘일동기유(日東記游)’를 쓴 김기수도 “살아 헤엄치는 명태가 물에서 활발하게 노는 것조차 구경거리가 되지 못할 정도이고 너무 많이 잡히고 값이 싼 까닭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골짜기에 사는 노인과 여자, 아이들까지도 명태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너무 흔해서 가난한 사람도 매일 반찬으로 먹었을 정도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크지 않은 물고기의 온갖 부위를 알뜰하게도 먹었다. 껍질에서부터 아가미, 내장, 심지어 눈알까지 빼내어 요리를 만들었다. 살코기인 몸통은 물론이고 내장으로는 창난젓, 알로는 명란젓, 아가미로는 아가미젓을 담는다. 껍질은 벗겨서 어글탕을 끓이거나 쌈을 싸먹고 눈알로는 명태 눈 초무침을 만든다. 내장을 꺼내어 창난젓을 담그고 난 후 빈자리에는 고기와 채소, 두부 등을 양념해 다진 소를 넣고 명태순대를 만든다. 어른 팔뚝만 한 크기의 명태를 이용해 만드는 음식이 모두 36가지를 넘는다고 한다.
사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어렸을 적 향수와 어머니의 손맛을 진하게 느끼는 것은 생태찌개, 동태찌개인 것 같다.
명태가 너무 흔했기 때문인지 맛있게 먹으면서도 사람들은 명태를 천하게 취급했고 남을 흉볼 때는 명태에다 비유해 욕을 했으니 명태 입장에서 이런 뒷담화가 없다.
속담에 ‘명태 만진 후 손 씻은 물로 사흘 동안 찌개를 끓인다’는 말이 있는데 인색한 사람을 탓할 때 쓰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흔해 빠진 명태이니 자린고비보다 더하다. ‘북어 한 마리 부조한 놈이 제사상 엎는다’는 말은 하찮은 것을 주고서 지나치게 생색낸다는 말이 되겠고, ‘명태 한 마리 놓고 딴전 본다’는 속담은 겉으로는 별 볼일 없는 명태장사를 하는 척하면서 다른 장사를 한다는 뜻이다. ‘북어 껍질 오그라들 듯한다’는 말은 재산이 점점 적어진다는 말로 명태에 대한 인식이 썩 바람직하지 못하다. 말이 많거나 거짓말을 할 때 쓰는 ‘노가리 깐다’는 속어도 명태가 한꺼번에 많은 새끼를 낳는 것에 빗대어 생긴 말이다. 노가리는 명태의 치어다. 그렇지 않아도 흔한 생선인데 거기에 새끼까지 엄청나게 많이 낳으니 반가울 것도 없다.
이렇게 흔했던 생선인데 지구 온난화 때문에 한류성 어종인 명태를 더는 우리 바다에서 예전처럼 찾아볼 수 없으니 안타깝다. 그런데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흥미로운 내용이 보인다. 민정중(閔鼎重)이라는 사람이 “지금은 명태가 땔나무처럼 많지만 300년 후에는 이 생선이 지금보다 귀해질 것이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민정중은 숙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인물로 1692년에 사망했다. 그로부터 300년 후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이니 예언이 절묘하게 맞았다.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