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운영하는 와이너리는 ‘토브렉’이다. 토브렉은 스코틀랜드 지명이다. 그가 태어나 자라 와이너리까지 세운 호주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토브렉이 파리나 뉴욕처럼 거대 도시이거나 이름난 명소인 것도 아니다. 그냥 스코틀랜드의 숲 지대에 불과하다.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난 토브렉 와이너리의 오너 데이비드 포웰 씨(49)가 그의 와이너리 이름을 토브렉으로 정한 이유는 딱 하나다. 평생 잊지 못할 사랑하는 여인과의 추억이 깃든 곳이 바로 토브렉이기 때문이다.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 만찬에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선택해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와인 ‘토브렉 런릭’도 이런 러브 스토리에서 나온 이름이다.
○ 아내 이름 딴 와이너리
그가 아일랜드 출신의 크리스틴을 만난 건 21세였던 1983년이다. 호주 와이너리에서 일하다 다양한 나라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1981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떠난 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영국 런던에 머물고 있을 때이다.
런던에서 친구로 지내던 그녀는 자연스레 연인이 됐다. 그리고 둘은 스코틀랜드로 떠났다. 스코틀랜드 토브렉에서 포웰 씨는 와인 일을 접고 벌목공으로 일했다. 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지역이었다. 1989년 그는 그녀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 뒤 그는 호주 바로사 밸리로 돌아와 직접 와이너리를 세웠다. 물론 그녀도 함께였다. 1994년 그는 와이너리 이름을 추억이 가득 깃든 토브렉으로 정하고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포웰 씨는 “어려서부터 고모와 삼촌이 포도밭을 갖고 있어 와인이 친숙했다”며 “애들레이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와인에 흥미를 더 느껴 결국 와이너리를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호주 남부의 바로사 밸리는 따뜻하고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 지역으로 오래된 포도밭이 많은 곳이다.
○ 프랑스식으로 일군 토브렉 와이너리
물론 처음부터 이름을 알리며 잘나가지는 못했다. 맨땅에서 맨주먹으로 시작했다. 약 2만2000m² 규모의 포도밭을 구입해 와인을 만들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와인을 만들겠다는 각오는 작지 않았다.
다른 조건도 좋았다. 그가 와이너리를 세운 바로사 밸리는 19세기 전 세계 포도밭을 할퀴고 간 병충해인 ‘필록세라’의 재앙이 덮치지 않은 곳이다. 그러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들이 살아남아 있었다.
여기에 호주 정부가 질이 떨어지는 품종으로 규정해 농가들에 뽑아낼 것을 적극 권장했던 ‘시라즈’ 품종을 고집스레 길렀던 그의 의지도 지금의 명성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현재 호주의 정상급 와인은 시라즈 품종에서 나온 와인들이다.
그는 와이너리를 세운 뒤 지금까지 시라즈와 ‘그르나슈’, ‘마타로’ 등 3가지 품종에서 나온 포도만을 이용해 와인을 만들고 있다. 포웰 씨는 “수령이 40년에서 최고 150년까지 되는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포도로 와인을 만들고 있다”며 “이 품종들이 프랑스 론 지방에서 나온 만큼 론 지방의 와인 제조를 벤치마킹하고, 오크통도 프랑스산을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기르는 포도나무의 고향이자 토브렉 와인의 뿌리이기도 한 프랑스 론 지방에서 와인 제조 과정 등을 공부하기도 했다.
○ 토브렉의 자존심 ‘토브렉 런릭’
이런 토브렉 와이너리의 자존심이 바로 ‘토브렉 런릭’이다. 이제는 약 81만 m² 규모로 늘어난 그의 포도밭 가운데 가장 오래된 8개의 포도밭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명품 와인이다.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4년 연속 99점을 받으며 최고의 와인으로 인정받은 토브렉 런릭의 ‘런릭’ 역시 스코틀랜드의 지명이다. 그의 와이너리에서 만드는 와인에는 모두 스코틀랜드 지명이 붙는다. 포웰 씨는 “신동와인을 통해 한국에도 토브렉 와인을 선보이고 있는데 한국인들이 마시는 좋은 와인 가운데 하나가 토브렉 와인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와인을 마시는 것은 러브 스토리를 마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