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시골 와이너리에서 매일 아침 포도샘플 당도를 재며 지내던 2004년의 겨울, 회사사람들에게 종종 잡채를 해줬다. 양파, 버섯, 파프리카, 소고기만을 넣어 후다닥 만든 잡채는 인기가 꽤 좋았다. 채식만 고집하시는 할머니의 잡채엔 색색깔의 파프리카를, 다이어트중인 제이드의 잡채엔 송이버섯과 닭가슴살을 넣었다. 잡채는 한끼식사로도 부족함이 없었고 멜롯(merlot) 같은 부드러운 레드 와인과도 맛이 참 잘 어울렸다. 그래서 파티가 있을 땐 어김없이 잡채를 만들었고, 잡채의 매력에 빠진 한 누들 집 사장은 구운 닭다리살을 넣은 잡채 레서피를 받아가서 ‘JAB-CHAE’메뉴를 추가하기도 했을 정도.
그러고 보니 ‘아시안 누들’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집에 우동, 쌀국수, 프라이드 누들은 있어도 우리 잡채는 못 본 것 같다. 외국에서야 잡채를 잘 몰라서 그런다 치더라도 우리나라에 있는 누들 전문점의 메뉴에는 왜 잡채가 들어갈 수 없는 걸까. 하긴 우리 잘못도 크다. 언제부턴가 잡채는 있으면 땡큐, 없어도 그만인 열 가지 기본 반찬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으니까.
지금은 잡채를 특별한 음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잡채는 궁에 올리던 궁중음식 이었다. 또 이를 만든 이가 임금의 신임을 받는 일도 있었다. 이충(李沖)은 광해군에게 무척이나 사랑 받고 지금으로 치면 장관쯤 되는 호조판서를 지낸 인물이다. 그런데 그게 다 잡채를 잘 만들었기 때문이란 말이 <광해군일기>에 나온다. 그 맛이 얼마나 특별한 것이었길래 음식 한 접시로 장관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걸까.
그때의 잡채는 요즘 먹는 것과는 모양새가 좀 달랐다. 가장 크게 다른 것은 당면이 없었다는 점. 당면은 녹두, 감자, 고구마 등의 녹말을 원료로 만드는 마른국수로 잡채의 기본재료다. 당면공장이 우리나라에 처음 세워진 것은 1919년. 그 이전에는 중국에서 일부 들여왔을 뿐, 우리나라에 당면이 보급화 되지는 않았다. 때문에 잡채는 지금과 달리 온갖 채소들을 익혀 버무린 모듬 샐러드 같은 모습이었다. 그대로도 좋았으니 호조판서까지 올랐겠지만 이후 당면이 추가되면서 맛과 영양이 더해진 셈이다.
나는 잡채를 ‘코리안 누들’이라고 소개한다. 간혹 이해가 쉽도록 ‘코리안 파스타’라고도 말한다. 밥상에서 코스문화가 익숙한 외국인에게 반찬의 개념을 먼저 이해시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젓가락을 어려워하는 외국인들에겐 그냥 스푼과 포크로 면을 말아 파스타 먹듯 먹어보라고도 한다. 그러면 그들은 잡채를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해물을 넣으면 ‘시푸드잡채’, 버섯을 넣으면 넣으면 ‘머쉬룸잡채’, 닭고기를 넣으면 ‘치킨잡채’. 그때부턴 이해와 응용이 빨라진다.
개인적인 바람일수도 있겠지만 난 늘 잡채와 파스타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잡채도 파스타처럼 세계의 식탁에 오를 거라 상상해 본다. 간장과 참기름은 이미 미국과 유럽의 주방 한 켠을 차지했다. 나는 그 주방에서 잡채가 만들어지는 꿈을 꾼다. 얼마 전 유명한 국내 한식당에서는 랍스터잡채를 브라질 상파울루에 선보였다. 어찌나 기쁘고 자랑스럽던지.
잡채에 꼭 당근과 표고버섯을 넣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토마토소스 스파게티에 고추장도 넣고 김치도 넣듯이 잡채에 블랙올리브를 썰어 넣어도, 브로콜리를 볶아 넣어도 괜찮다. 젓가락 대신 포크로 당면을 돌돌 말아 먹더라도 좋다. 일단은 맛있게 먹고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맛있게 먹고 있는 그것이 코리안누들, ‘잡채’라는 것을 말이다.
김은아 칼럼니스트 eunahstyl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