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었을 때 샛노란 빛깔을 띠는 유자는 ‘천연 감기약’으로 불린다. 비타민C 등 감기에 좋은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기 바이러스가 몸속으로 침입하기 쉬운 요즘부터 유자가 제철을 맞는 것도 신비롭다. 전남 고흥은 전국 유자 재배면적의 35%(430㏊)를 차지하는 최대 주산지다. 고흥에서는 10일부터 본격적인 유자 수확에 들어간다.
유자수확을 앞둔 지난 7일 전남 고흥군 두원면 예회리에 있는 2만2000㎡ 규모의 에덴식품영농조합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유기농·무농약 유자만 생산하고 있다. 주렁주렁 탐스럽게 익은 유자를 보자 입안에 절로 침이 고였다. 특유의 신맛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유자는 당도가 15~16브릭스에 달할 정도로 달지만, 신맛 때문에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유자 특유의 신맛을 좌우하는 것은 비타민C와 유기산이다. 유자의 비타민C 함유량은 바나나의 10배, 참다래의 3배, 단감의 2배가 들어 있다. 유자가 감기 예방, 피로 해소, 식욕 부진 등에 효과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흥 유자는 생산량의 90%가량이 지역내 20여개 가공공장으로 납품된다. 나머지 10%만 시중에 유통돼 쉽게 구입하기 힘들다. 가공공장에 납품된 유자의 90%는 유자청(유자차)으로 제품화되고, 일부는 착즙, 잼 등의 형태로 만들어진다. 가공식품 중 60%가량은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등지로 수출된다. 고흥 유자의 절반 이상을 외국인들이 즐기고 있는 셈이다.
유자차를 담그는 데는 나름의 비결이 있다. 송재철(59) 에덴식품 대표는 “유자와 설탕의 비율을 50대 50으로 맞추되, 하루쯤 지나 설탕이 적절히 녹은 다음에 밀봉을 해야 한다”며 “설탕이 녹지 않으면 진액이 잘 우러나오지 않고, 설탕이 완전히 녹아 숙성될 때까지 놔두면 밀봉을 해도 유자 색깔이 변하거나 국물이 넘치게 된다”고 말했다. 유자차를 만드는 데는 지나치거나 부족함이 없는‘중용’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지난 7일 전남 고흥군 두원면 예회리 에덴식품영농조합 농원에서 직원 김경욱씨가 유자를 수확하고 있다.
2006년 지리적표시제 14호로 등록된 고흥 유자는 향미와 효능 면에서 세계 최고 대우를 받는다. 유자가 생산되는 중국과 일본에서 고흥산 유자 가공식품을 앞다퉈 수입해 가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고흥 유자의 품질이 좋은 것은 오염되지 않은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과 최적의 기후·토양에서 재배되기 때문이다.
유자는 연평균 기온이 14~15도인 지역에서 가장 잘 자란다. 또 최저기온이 영하 9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지역이 좋다. 유자는 영하 9도에서 잎의 동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을 갖춘 국내 지역은 전남·경남 일부와 제주이지만, 그중에서도 고흥지역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흥은 특히 반도(半島) 형태의 지형과 리아스식 해안을 갖추고 있어 온도 변화가 적고 겨울철에 내륙지방보다 따뜻하다.
고흥에서는 한때 유자나무가 ‘대학 나무’로 불리기도 했다. 유자값이 좋았던 1992~1996년 사이 집안에 유자나무 몇그루만 있으면 자녀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고흥지역 유자 재배면적은 1400㏊에 달했다. 그러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기점으로 유자 재배면적이 크게 줄었다. 특히 올해는 작황이 좋지 않다.
조합 직원 김경욱(37)씨는 “지난 봄 냉해 피해를 입어 수확량이 평년에 비해 크게 떨어질 것 같다”며 “이 때문에 유자값이 작년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군은 2004년부터 고흥 유자를 세계적인 한류 식품으로 육성하기 위해 유자가공 및 수출산업을 적극 지원해 오고 있다. 또 유자의 효능 분석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군은 한국식품연구원 등에 고흥 유자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연구용역을 의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