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스테이크 전성시대다. 적색육이 몸에 나쁘다고 해도 사람들은 마치 콜레스테롤의 광시곡에 취한 듯, 고기를 찾는다. 고기는 태생적으로 우리 혀에 반응하는 유인물질인 것 같다. 그래서 어른들이 '남의 살'보다 무서운 게 없다고 하지 않았나 모르겠다. 단맛은 우리 유전자에 각인돼 있는 에너지 섭취의 본능이라고 하겠지만, 고기는 또 왜 그럴까. 아마도, 고기 속의 아미노산이 뿜어내는 감칠맛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특히나 불에 지져지면서 고기는 마이야르 반응에 의해 지남철처럼 빨아들이는 맛을 선사한다. 우리는 여전히,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고기를 찾는다. 이른바 웰빙 시대에도 고깃집은 줄기는커녕, 골목마다 더 늘어나는 것이 그걸 증명한다.
불에 굽는 고기를 스테이크라고 한다면, 우리 조상도 한몫한다. 정조가 난로회(煖爐會)라고 하여, 군신이 모여 화롯불에 고기를 구워 먹던 풍습이 있지 않았는가. 화로에 구운 고기는 군신의 의리를 더 돈독히 하고,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굳혀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난로회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까짓 고기를 화로에 굽는 게 어떤 스타일이 따로 있었을 리 없다.
이웃 일본은 쇠고기를 즐겼던 조선과 달리 아주 오랫동안 육식을 금기로 했다. 우리도 고려 때까지만 해도 불교의 영향으로 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듯이. 일본은 7세기 덴무천황 때 육식 금지가 공포된 후 1800년대 중반 메이지유신 전까지 고기를 공식적으로는 먹지 않았다. 그러다가 1872년 당시 천황이 칙서를 내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허가 정도가 아니라 장려하기 시작한 것. 서양인과 같은 체구를 갖기 위해서는 근대적 영양 섭취로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0년대 에도 막부 시대를 연 후 현재와 비슷한 니기리즈시(손으로 쥐어 만드는 초밥)와 덴푸라가 발명된 이후 가장 혁명적인 식생활 변화였다. 현재 일본은 다양한 쇠고기를 먹고, 서양식 스테이크도 잘 발달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스테이크가 뜬다. 이른바 드라이에이징의 인기가 강남을 휩쓸었다. 단지, '고기를 숙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맛을 냈기 때문이다. 드라이에이징은 유럽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숙성법이다. 보통 고기는 냉장고 안에 둬 숙성한다. 고기 양이 거의 보존되며, 먹기 좋고 부드럽게 숙성된다. 고기 안의 효소와 아미노산이 맛있게 작용해 감칠맛을 낸다. 그런데 미국은 드라이에이징의 마력을 상업화했다.
원래 드라이에이징은 지금처럼 계량화된 기술적인 숙성법이 아니었다. 그저 시원한 계절이면 창고 안에 고기를 걸어뒀을 뿐이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가능했을 일이다. 그런데 고기를 걸어둔 푸주한은 뜻밖의 발견을 한다. 고기 표면이 말라서 그걸 잘라내고 속 부분을 굽자 아주 매력적인 맛을 냈다. 뭐랄까, 훈제된 소시지의 향과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드라이에이징은 곧 미국 동부에서 퍼져 나갔다. 그리고 뉴욕의 선술집을 통해 번성했다. 마도로스들이 뉴욕에 정박하면, 술집을 찾아 회포를 풀었고, 그들에게 준 맛있는 고기가 바로 드라이에이징 비프였다. 미국에서 보통 포터하우스라고 부르는 드라이에이징 티본스테이크를 맛본 교포와 유학 경험자가 한국에 이 숙성법을 전파했다. 지금, 서울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도 이런 고기를 취급할 정도로 인기다.
드라이에이징은 시원한 냉장고에 포장하지 않은 고기를 그대로 걸어두는 것이다. 냉장고 안은 잡균이 없도록 위생적이어야 하며, 공기를 건조하게 유지하면서 저온에서 말린다. 표면의 수분이 지속적으로 마르면서 숙성을 촉진한다. 표면에 탈수 현상이 일어나고 효소와 효모의 작용에 의해 고기가 부드러워진다. 단점은 자칫 잡균이 들어가면 고기가 부패하고 매번 똑같은 맛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고기의 절반 가까이를 깎아서 버린다는 점도 단점이다.
스테이크라면 앞서 말한 티본스테이크를 빼놓을 수 없다. 등심과 안심 부위가 동시에 붙어 있고, 가운데는 T자형의 뼈가 있다고 해 그렇게 명명됐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이 이 스테이크로 유명하다. 보통 1㎏이 넘는 양인데, 혼자서 먹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나눠 먹는다. 이 지역을 여행할 계획이 있으면 반드시 먹어봐야 할 스테이크다. 피렌체와 토스카나의 상당수 식당에서 취급하므로 쉽게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스테이크를 굽는 정도(보통 온도라고 하는데, 고기 속의 온도를 뜻함)는 무엇이 좋을까. 기호에 맞는다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미디엄 레어를 시키지 않는다고 촌스러운 것은 아니다. 고기가 잘 숙성되면 웰던으로 구워도 퍽퍽하지 않고 맛있게 마련이다. 소설 '모비딕'의 에이햅 선장은 고래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 고래고기 스테이크는 절대 많이 굽지 말아줘요. 한 손에 스테이크를 들고 불타는 석탄에 스테이크를 슬쩍 선보이기만 해도 됩니다." 바로 블루라는 굽기다. 겉만 슬쩍 지지고 속은 그냥 상온의 온도다. 그 다음으로 레어가 있다. 보통 안심이라면 200도의 오븐에서 2~3분 정도 굽는다. 그리고 미디엄 레어-미디엄, 미디엄 웰던-웰던의 순으로 고기를 익힌다. 보통 미디엄에서 미디엄 레어가 먹기 알맞은 굽기가 아닌가 싶다.
요즘은 집에서 스테이크를 굽는 애호가들도 있다. 오븐이 있으면 쉽게 구울 수 있다. 소 안심과 등심은 익히는 시간이 다른데, 안심을 등심보다 두 배 더 구워야 한다. 기름이 거의 없어 잘 안 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렇게 구워보자. 안심과 등심의 두께가 각각 2㎝로 잘라져 있다고 치자. 오븐은 미리 200도로 예열한다. 팬에 고기의 양면을 구운 후 오븐에 넣는데, 미디엄 정도로 익히고 싶다면 안심은 8~10분, 등심은 5~6분 정도면 먹기 좋게 구워진다. 오븐에서 고기를 꺼낸 후 가운데를 살짝 칼로 잘라보면 구운 정도를 체크할 수 있다. 오븐을 켜기 싫을 때는 고기를 1.5㎝ 미만으로 잘라 달라고 해서 구우면 팬에서도 어느 정도 미디엄 정도로 구울 수 있다. 처음에는 센불로, 그 다음에는 중간 약불로 낮춰서 속까지 천천히 익힌다.
스테이크에 대한 속설 중 하나는 고기 표면을 고루 지지지 않으면 육즙이 빠진다고 하는 것인데, 이는 비과학적인 낭설이다. 표면을 팬이나 그릴에 지지는 것은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켜 맛을 좋게 하는 효과가 있을 뿐, 육즙은 빠지지 않는다. 어쨌든 스테이크를 구우려면 팬을 뜨겁게 달구고 기름을 살짝 뿌린 후 연기가 나기 전에 고기를 넣어 구워야 한다. 팬이 충분히 가열되지 않으면 고기가 맛있게 지져지지 않는다. 보통 스테이크에는 소스를 곁들이게 된다. 그런데 이 소스는 상당히 고지방이고 열량이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설렁탕 국물을 졸이면 바로 소스의 농도가 되는데, 이는 뼈에 붙어 있는 젤라틴과 지방 성분이다. 즉, 소스 서너 스푼은 설렁탕 한 그릇 정도에 맞먹는 고(高)중성지방 식품이라는 것이다. 대신 신선한 올리브유를 뿌리거나, 백화점에서 파는 트러플 오일이나 발사믹 글레이즈(졸인 것)를 사서 뿌려 먹는 것도 좋겠다. 스테이크 위에 파르메잔 치즈를 저며 얹어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