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에서 캔 나물과 채소로 차린 밥상은 소박하지만 건강함이 느껴진다. 강원도 정선의 황현옥 주부는 동네에서 난 채소와 나물로 봄 밥상 차리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강원도의 힘이 느껴지는 정선의 자연 밥상.
오늘 아침 밥상에 올린 반찬의 재료가 어디에서 어떻게 키워졌고, 어떤 손길을 거쳐 식탁 위에 올랐는지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마트에서 식재료를 구입할 때 유기농인지 친환경인지 따지며 똑똑한 척하지만 그뿐이다. 강원도 정선에서 손맛 좋기로 소문난 황현옥(45) 씨는 '우리 동네 땅에서 나고 자란 재료가 가장 맛있다'며 직접 산과 들에서 캐거나 근처 장에서 구입해 상을 차린다.
"나물 반찬을 주로 만들어 먹어요. 곤드레나물은 지난해 봄 동네 뒷산에서 딴 것이고, 개두릅은 옆집 아주머니가 준 거예요. 누리대와 산마늘은 지난해 여름에 정선 5일장에서 사서 장아찌로 담가 지금까지 먹고 있어요. 원추리나물과 달래는 장날에 샀는데, 향이 참 좋아요."
그는 상에 올린 나물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누구의 손을 통해 길러졌는지 훤히 꿰고 있다. 비싼 식재료를 이용한 진귀한 음식은 아니지만 제철에 나는 영양 만점 재료로 차린 밥상은 진정한 명품 건강 밥상이 된다.
황현옥 씨를 정선에서 만났을 때는 3월 중순, 아직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상차림만큼은 봄날이었다. 겨울이 긴 강원도는 봄과 여름, 가을에 나물을 다량 구해서 저장해둔다. 개두릅이나 곤드레나물은 데쳐서 냉동시켜 보관하고, 산마늘·누리대·더덕·무청 등은 장아찌를 담가 두고 이듬해 나물이 나오기 전까지 먹는다.
"어제 정선 5일장에 갔더니 원추리나물, 달래, 냉이, 봄동 등이 나왔더라고요. 물론 마트에 가면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나물들을 한겨울에도 구입할 수 있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죠. 원추리나물은 간장양념에 무치고, 달래는 양념간장으로 만들어 밥에 비벼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아 사왔어요. 요즘 나는 봄동은 겉절이로 버무리면 제맛이죠."
몇 년 전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가 회복한 뒤 황씨는 먹거리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됐다. 원래 가족 모두 고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 뒤로는 거의 채식 위주로 상을 차리고 재료도 동네에서 나고 자란 것만 사용한다. 주방에는 화학조미료 대신 오미자청, 매실청, 멸치가루, 버섯가루 등 직접 만든 천연조미료가 가득하다.
최근 정선 전통 가옥 마을인 아라리문화촌의 문화 기획 회장과 정선의 풍경을 그리는 그림 동아리 '사람과 그림'의 회장을 맡으면서 예전처럼 요리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는 못하지만 동네에서 자란 재료와 천연조미료를 사용해 요리하는 원칙만은 꼭 지킨다. 특별할 것 없어 더욱 특별한 그의 요리에는 그래서 건강한 맛이 난다.
봄향 가득~ 원추리나물 무침
"원추리나물은 남편이 좋아하는 봄나물이에요. 연둣빛을 띠기 때문에 반찬으로 만들어 상에 올리면 식욕이 확 살지요. 어린 싹뿐 아니라 꽃도 먹는데, 어린 싹은 나물 무침으로, 꽃봉은 조림으로 만들어 먹으면 맛있어요. 원추리나물은 소금을 약간 넣은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찬물에 여러 번 헹구고 물기를 꼭 짜서 준비하세요. 막장(된장), 간장, 다진 마늘, 참기름, 깨소금, 식초를 섞어 만든 양념장에 원추리를 조물조물 무치면 향긋한 원추리나물무침이 완성돼요. 양념을 넉넉히 해 밥에 넣고 비벼 먹어도 꿀맛이지요."
아삭아삭~ 봄동겉절이
"봄동은 봄이 늦게 찾아오는 강원도의 밥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요. 노지에서 겨울을 나며 자라 비타민과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씹을수록 단맛이 나고 향이 진해 입맛을 돋우기에도 그만이죠. 잎이 크지 않고 속이 노란색을 띠는 것이 고소하며 달짝지근한 맛이 강해요.
저는 주로 겉절이나 쌈으로 먹는데, 겉절이를 할 때는 소금에 절이지 말고 먹기 전에 고춧가루, 다진 마늘, 매실청 등을 넣은 양념에 버무려요. 수분이 많아 시간이 지나면 숨이 죽어 식감이 떨어지거든요. 생으로 고추장이나 막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답니다."
달래간장에 쓱쓱~ 곤드레나물밥
"가족이 모두 곤드레나물밥을 좋아해 매년 봄이면 곤드레나물을 넉넉히 따다가 데친 뒤 냉동실에 보관해두고 일 년 내내 먹어요. 이 곤드레나물도 작년 것인데, 일 년이 지났지만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 푸른빛이 생생해요. 양념에 무쳐 먹어도 맛있지만, 들기름과 다진 마늘, 소금으로 버무린 뒤 밥을 지을 때 넣어 곤드레나물밥을 만들면 별미랍니다.
곤드레나물의 독특한 향이 밥알 하나하나에 배어 달래간장에 비벼 먹으면 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죠. 달래간장은 송송 썬 달래와 간장, 고춧가루, 매실청, 참기름을 섞어 만들고요. 봄에는 곤드레 잎을 따서 튀김이나 쌈을 싸서 먹어도 맛있어요."
강원도 맛! 산마늘·누리대·더덕·무청 장아찌
"산마늘과 누리대 장아찌는 강원도 향토 음식이에요. 먹거리가 부족한 이른 봄에 산에 올라가 산마늘을 먹으며 생명을 이어갔다고 해 명이나물이라고도 부르죠. 누리대는 누룩치라고도 하며 강원도에서만 맛볼 수 있죠. 셀러리와 비슷한 맛이 나는데, 독성이 있어 간장이나 고추장으로 장아찌를 주로 담가 먹어요. 특유의 아린 맛과 향이 나 한두 번 먹기 시작하면 계속 젓가락이 간답니다. 산마늘과 누리대는 각각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 물, 간장, 식초, 설탕을 2 : 3 : 1 : 1 비율로 섞은 후 팔팔 끓여 식힌 물을 부어요. 일주일 후에 간장 달인 물을 따라내 다시 끓여 차게 식혀 붓기를 3회 반복하면 돼요.
더덕은 작은 것을 골라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간장, 식초, 설탕을 섞어 만든 간장물에 넣어 장아찌를 담가요. 껍질째 먹을 수 있어 영양이 높고 식감도 좋답니다. 겨울 김장을 담그고 남는 무청으로 만든 무청 장아찌도 우리 집 식탁의 단골 메뉴죠. 시들하게 말린 무청을 항아리에 담고 달인 간장물을 부어 무청이 잠기도록 눌러 재웠다가 먹으면 질기지 않고 아삭거려요."
쌉싸래한 맛이 일품~ 개두릅초회
"엄나무라고도 불리는 개두릅은 강원도 별미 중 하나예요. 사실 강원도 토박이 중에는 곤드레나물보다 개두릅을 좋아하는 이들이 더 많아요. 쌉싸래한 맛이 나면서 진한 향이 입맛 돋우는 데 그만이거든요. 소금 넣은 끓는 물에 개두릅을 삶아 쓴맛을 우린 뒤 고추장이나 막장에 찍어 먹거나 들기름, 고추장, 다진 마늘, 깨소금 등을 넣은 양념에 무쳐 먹으면 맛있어요. 곤드레나물밥처럼 들기름, 다진 마늘, 소금에 버무린 뒤 밥을 지어도 별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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