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포는 조기 익는 마을이다. 특히 봄엔 배가 불룩하게 알이 밴 조기가 올라온다. 조기를 염장해 바닷바람에 말리면 굴비. 그중 알밴 조기는 굴비 중에 최고로 친다. 밥도둑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알밴 조기를 찾아 법성포로 간다.
조기의 고향, 법성포. 봄이 되면 한반도 서쪽 일대에서 잡힌 '알밴 조기'가 한데 모이는 곳이다. 서해 바다 어느 곳에서 잡혀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팔도의 조기는 모두 법성포로 들어와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법성포 굴비가 되는 것이다. 법성포 굴비는 간수가 완전히 빠진 천일염으로 조기를 켜켜이 재는 방식으로 염장한다. 또한 법성포 내륙 깊숙이 불어오는 해풍을 맞아야만 굴비가 된다. 그래서 법성포는 '조기의 성지'나 다름없다.
허나 법성포 포구는 한산할 때가 많다. 법성포 앞 갯벌은 바다라기보다는 개펄에 가깝다. 봉분처럼 솟아오른 굴곡진 갯벌이 포구 앞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찰랑찰랑 만조를 이루는 때가 아니면 이 봉긋한 갯벌은 마치 육지인 것처럼 늘 이마를 내놓고 있다. 밀물이 들어올 때의 풍경도 동해와는 사뭇 다르다. 푸른 파도가 포구의 방파제에 들이치는 게 아니라 봉분과 봉분 사이 갯고랑으로 잿빛 바닷물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온다. '찰싹찰싹'이 아니라 '소곤소곤'이다.
갯가를 따라 스멀스멀 밀려드는 밀물은 생소하다. 바다를 처음 보는 이라면 바다가 아니라 강이라고 착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동해와는 다른 맛이 있다. 특히 해넘이가 진행되는 동안 법성포 갯벌은 갯고랑 사이로 밀려오는 황금빛 물결과 함께 금빛으로 물든다. 한 세대 전만 해도 포구의 풍경은 이렇지 않았다.
영광 앞바다에 방파제를 쌓고 간척지가 늘면서 포구 앞까지 바닷물이 들지 않게 됐다. 밀물이 내륙 깊숙이 들지 않고, 육지에서는 황토가 밀려와 적체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개펄이 쌓이고 수심이 얕으니, 포구 앞으로는 큰 배들이 들어오지 않는다. 제주와 추자도·칠산 바다·연평도 등 서해를 휘젓고 다니는 큰 조깃배들이 법성포에서 정박하지 않는 이유다. 조기를 가득 실은 배들은 법성포보다는 목포 수협 위판장으로 간다.
바닷바람으로 말린 굴비
법성포는 사시사철 조기 말리는 풍경이 펼쳐진다. 현재 150여 곳의 조기 굴비 가공업체가 있으며, 이는 전국 생산량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요즘 나오는 굴비는 '말린 조기'에 가깝다. '자린고비'로 유명한 굴비는 바닷바람에 바짝 말린 것이다. 특히 봄이 되면 법성포는 알밴 조기로 흥이 난다. 조기 말고 다른 생선은 알아주지 않는 법성포 사람들은 그냥 '알배기'라 부른다. 조기는 한?중?일 바다에서 서식한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조기를 아예 먹지 않는다. 중국 사람들도 우리가 '참조기'라 부르는 조기보다 수조기를 더 좋아한다.
수조기는 흔히 부세로 불리는 조기와 같은 민어과 어종이다. 부세는 조기보다 크고, 외양이 전체적으로 금빛을 띤다. 중국은 부세를 대량으로 양식한다고 한다. 서해안 조기는 따뜻한 남쪽 바다에서 월동한 뒤, 봄이 되면 산란을 위해 북으로 방향을 튼다. 3월 말에서 4월 초순이면 법성포 앞 칠산 바다에 이르는데, 이것이 '칠산 조기'다. 운 좋게 칠산 바다를 지나면 연평도 너머 압록강 앞바다까지 도달한다는데, 아마도 요즘은 가망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조기 어선들이 제주도 인근 바다로 내려가 조업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래 추자도 바다가 가장 큰 조기 어장이 됐다.
알밴 조기는 귀하다
올봄, 3월 중순까지 법성포 알밴 조기는 귀하다. 영광굴비특품사업단 허충석 전무는 "3월 말이 돼야 본격적으로 조깃배가 들어올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가을 조기 대풍이 왔을 때 어느 정도 예상했다. "작년 11월과 12월, 조기가 수십 년 만에 가장 많이 잡혔다.
그때 뱃사람들은 '내년 알배기가 드물 것'이라고 말들 했다" 일종의 해거리 현상이다. 그동안의 조기 남획이 어획량 감소의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근래 들어 조기잡이 배들이 사용하는 그물의 코가 촘촘해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5.5cm짜리 그물코가 일반적이었지만, 근래에는 5cm로 줄었다. 남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알밴 조기 가격도 크게 올랐다. 법성포 범진유통 서영호씨는 "조기는 가을 조기와 봄에 잡히는 알배기가 있다. 보통 알배기가 50% 정도 비싸다. 올해는 그보다 더 비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수협 위판장 경매 낙찰 가격도 지난해에 비해 부쩍 올랐다. 160·135·100마리 상자에 각각 14만~15만원, 28만~30만원, 70만~75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 비해 2배 가까이 오른 가격이다.
기운을 북돋는 조기
산란기의 조기는 말할 것도 없이 알이 꽉 차 있다. 알밴 조기는 탕을 끊이기에 좋다. 또한 굴비로 가공해도 배가 불룩한 알배기는 그지없이 먹음직스럽다. 그래서 짭조름한 굴비를 '밥도둑'이라 했다. 굴비 가공에 있어 법성포는 장인의 고장이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가공 과정이 훨씬 간소화됐다. 염장을 하고 난 뒤, 건조기 넣어 한나절이면 마른 조기가 된다. 위판장에서 나온 조기가 판매용으로 되기까지 불과 이틀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는 사실 굴비라기보다는 '마른 조기'에 가깝다. 불에 구워 먹기에 좋을 정도로 말린 것으로 볕에 빳빳하게 말린 굴비와는 다르다. 이렇게 말린 굴비는 불에 구우면 검게 타기 일쑤다. 그래서 굴비는 찜통에 쪄 조리하는 게 정석이다. 조기 조리법은 다양하다.『 동의보감』은 '약성이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강하거나 약하지도 않고 평이하며, 약간 단맛이 있고 전혀 독이 없다'고 나와 있다. 또 서해안의 민간 요법으로는 '어린이나 노약자, 병약자의 영양 보충에 좋다고 해서 조기(助氣, 기운을 북돋는다)라 불렀다'는 말이 있다.
알밴 조기는 매운탕이 좋다. 조기의 알은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다. 적당힌 말린 조기는 조림이나 찜이 좋다. 또 알배기 굴비는 굴비 중에서도 최고로 친다. 찜통에 쪄 쭉쭉 찢어 먹는다. 전라도 한정식 음식점에서 종종 나오는 '찬물에 밥을 말아 얹어먹는 굴비'는 여기서 나온 것이다. 예전 전라도 사람들은 모내기를 할 때, 찬물을 만 밥에 굴비를 얹어 먹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시기, 입맛이 떨어질 때도 '찬밥에 굴비'는 최고의 밥반찬이었다.
고추장 굴비도 있다. 굴비의 뼈를 모두 발라낸 뒤 고추장에 버무린 고추장 굴비도 별미다. 고추장 굴비는 법성포를 비롯한 전라도에서 전통적으로 굴비를 조리하는 방법 중 하나다. 법성포수협 위판장은 오전 5시부터 경매가 시작된다. 경매 어종이 많지 않아 경매 시간도 한두 시간이면 끝이 난다. 위판장 구경을 하려면 일찍 서둘러야 한다. 한편, 영광군청은 6월경 법성포단오제와 함께 굴비축제를 연다.
택배 주문
올봄 조기 어획량은 많지 않다. 조기는 수온에 따라 북상하는 시기가 달라진다. 아직까지는 바닷물이 차 알밴 조기의 북상이 본격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3월 이후 4월 초가 되면 조기철이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굴비는 한 두름(20마리) 단위로 판매된다. 크기가 큰 놈은 10마리 단위다. 조기는 크기에 따라 가격 차가 크다. 영광굴비특품사업단 허충석 전무는 "보통 한 두름 5만원대가 가장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5만원 선은 길이 21~22cm 정도의 조기를 말린 것이다. 알밴 조기는 이보다 비싸다. 같은 크기 한 두름에 8만~9만원 정도 한다.
영광굴비특품사업단(061-356-5657), 범진유통(061-356-3007)
가는 길
서울에서 갈 때는 서해안고속도로 영광IC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함평·영광 방면으로 나가면 영광읍 방향이다. 영광읍 들어가기 전 22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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