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지(Genji)
끈적한 여름밤, 차가운 사케 혹은 거품과 기포가 딱 알맞은 생맥주 한 잔만큼 참기 어려운 유혹이 또 있을까. 만약
이자카야 겐지를 지나고 있는 중이라면 처음부터 포기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엔 여름밤 술 한 잔에 어울리는 감칠맛 나는 안주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곱게 간 얼음에 담겨 나오는 사케에는 싱싱한 농어, 민어,
감성돔 등을 저렴한가격에 맛볼 수 있는 사시미모리와세가 제격이다.아귀간을 술에 재워두었다가 밑간만 살짝 하여 쪄낸 후 시원한 폰즈소스에 적셔 먹는 안키모 폰즈 역시 사케에 어울리는 안주거리. 시원한 생맥주라면 민물 새우를 전분에 튀겨 특유의 달콤한 맛과 짭조름한 맛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겐지 새우깡과 궁합이 좋다. 만약 술이 안주를 부르고 그 안주가 다시 술을 부르는 쾌락의 밤을 이제 그만 마치고 싶다면 모찌 튀김을 주문할 차례다. 뜨거운 튀김옷을 씹으면 차갑게 얼린 생크림의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달콤한 디저트를 맛보는 순간, 온 몸이 노곤해지면서 곧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것이다.
위치: 서울 마포구 서교동 410-5번지
영업시간: 오후 5시 30분 ~ 새벽 2시(월~목), 오후 5시 30분 ~ 새벽 3시(금, 토)
문의: 02-333-8353
- 탱탱하게 삶은 소면을 차가운 물에 식힌 후, 얼음 동동 띄운 국시장국에 담갔다가 건져 먹는다는 뜻의 건진 국수. 재료는 소박하지만 엄마가 차려주던 밥상처럼 정성이 담긴 맛이라 결코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플랫 274(flat 274)
플랫274에서 만날 수 있는 음식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제 이름처럼 소박하다. 풍성하게 얹은
브로콜리, 닭고기, 양파를 빼면, 집 앞 슈퍼에 언제나 진열되어 있는 노란 카레가루로 만든 평범하기 그지없는 카레라이스의 이름은 ‘평범한 카레라이스’다. 만화 <심야식당>에 등장했던 메뉴인 ‘고양이 맘마’ 역시 만화 속에 나오는 레시피 그대로, 따끈한 밥을 가츠오부시, 버터, 간장과 함께 비빈 후알싸한와사비 김에 싸 먹는 간소한 차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특별할 것 없는 상차림이 왠지 모르게 감동스러웠다면, 그건 재료, 요리법, 꾸밈새모두가 필요 이상으로 넘쳐나는 요즘 음식에 지쳐있다는 얘기다. 그럴 땐 흰 쌀밥에 노릇하게 구운 스팸과 달걀 프라이나 시원한 콩국수처럼 그날 준비된 재료를 이용해 정성스럽게 차려낸다는 의미로이름 붙인 ‘언니의 밥상’을 꼭 맛보아야 한다. 사방에 뚫린 창문으로 시원하게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꼭꼭 씹어먹다 보면, 평소 즐겨 먹던 음식보다 무언가 하나쯤 빠진 듯한 맛이 주는 평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위치: 서울 종로구 부암동 274-1호 2층
영업시간: 오전 11시 ~ 오후 12시(화요일 휴무)
문의: 02-379-2741
번지엔 마치 친구 집처럼 아늑한 카페가 숨어 있다. 앞뜰, 뒤뜰, 큰 방과 다락방은 모두 아담하기 그지없지만 결코 좁게 느껴지지않는다. 그곳 주방에서 내오는 음식 또한 우리 집 주방에서 방금 만들어낸 것처럼 아기자기하면서도 소담스럽다. 마카로니에 치즈를 듬뿍 얹어 팬에 볶아낸 맥 앤 치즈, 직접 만든 메밀 반죽 위에 반숙으로 익힌 달걀 프라이, 터키햄, 베이컨, 치즈는 물론 루콜라까지 풍성하게 올려 먹는 햄 앤 치즈 갈레트는 거창하지는 않아도 한 끼 식사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네모나게 얼린 커피 큐브에 우유를 부어 먹는 큐브 카페오레, 청포도와 얇게 썬 사과 위에 시리얼을 넣은 후 꿀을 발라 구워낸 자몽과 함께 먹는 요거트 역시 평범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다정한 맛이다. 복잡해지고 소란스러워진 지 오래인 삼청동에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면 여기 27-25 번지로 향해보는 것은 어떨까. 문 여는 시간은 있어도 문 닫는 시간은 따로 없는 이곳이, 평화롭고 고즈넉했던 옛날 삼청동의 정서를 떠올리게 해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