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호
소믈리에는 말했습니다. "와인은 음식의 맛을 돋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론 서로 상승작용을 만들어내면 더욱 좋고요." 음식이 좋아서 소믈리에가 되었다는 그의 소박하고 진실한 열정을 만나보시죠.
라쿠치나,
안나비니, 리스토란테 에오 등 국내 유수의 레스토랑을 거치며 경력을 쌓은 안인호 소믈리에는 방배동 서래마을에 자리한 레스토랑 줄라이에서 모던 프렌치 요리를 선보이는 오세득 셰프와 함께 지난 6년간 손발을 맞춰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방배동 서래마을의 터줏대감 중 한 명으로 활약하고 있죠.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소믈리에가 된 계기가 바로 '음식'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레스토랑에서 서비스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요리와 음식에 관심이 많아서였어요.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와인에 대해 공부했고, 그러다 보니 지금의 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와인은 그 자체만으로 굉장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음식과 함께했을 때 일어나는 상승작용이 안인호 소믈리에가 추구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창의적인 셰프 중 한 명인 오세득 셰프와 함께 일하는 것이 언제나 즐겁다고 말합니다. "오세득 셰프는 프렌치 요리를 하지만 국내 식자재를 많이 사용해요. 그러다 보니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프렌치 요리와 전혀 다른 창의적인 요리가 탄생하죠. 요리가 창의적인 만큼 매치하는 와인도 테이스팅을 거쳐 까다롭게 선정합니다. 어느 레스토랑에 가도 다 있는 대중적인 와인에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희 레스토랑의 요리와 잘 어울려야 하고, 그 와인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희소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와인 전문 바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도 조화를 이루는 음식 없이는 와인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거절했다는 그에게서 '와인과 함께하는 식문화'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졌죠.
평소 식사할 때도 다양한 와인을 곁들여 음식과 와인의 매치를 실험한다는 그에게 그만의 '와인 매칭 레시피'를 물어보았습니다. "삼겹살에 리슬링 품종의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보세요. 튀긴 음식에 가벼운 스파클링 와인을 곁들여도 좋고요. 저는 시장 파악도 할 겸 대형 마트에 자주 들러 다양한 와인을 구입하는 편입니다. 평범한 와인 말고 독특한 와인을 이것저것 구입해서 맛을 보죠. 평소 집에서 먹는 다양한 음식과 매치해보기도 하고요."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저렴한 와인은 보관 상태나 품질이 의심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주 유용한 와인 구입 팁을 귀띔해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파격적으로 세일하는 1등급 그랑크뤼 와인을 구입하라는 것이었죠. "50% 이상 할인 판매하는 1등급 와인의 경우 적정 보관 온도보다 높은 환경에 방치되면서 맛이 변한 경우가 많죠. 하지만 워낙 기본 구조가 탄탄하기 때문에 그 정도 산화에 와인 맛이 형편없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한 번
디캔팅한 것 같은 효과가 있어 맛이 더욱 좋아지는 경우도 있어요. 엄격한 테이스팅 자리가 아니라 집에서 평소 먹는 음식과 함께 편하게 마시기 위한 것이라면 이런 와인으로도 충분합니다."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팁을 알려주는 털털하고 소박한 그의 모습에서 와인과 음식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보았습니다. 기술과 격식만 따지는 이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진실함과 신뢰가 전해졌죠. "동생의 직업이 셰프예요. 그래서 언젠가 동생과 함께 저만의 레스토랑을 열고 싶습니다.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편안하고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 음식을 만들고 와인을 고르는 저희도 즐기면서 도전적으로 일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가지고 싶어요." 소박하지만 진실된 마음과 열정을 지닌 그를 보면서 벌써부터 그의 레스토랑에 단골손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J 빈야드 퀴베 20 브뤼 NVUSA 소노마 카운티/ 54% 샤르도네, 44% 피노 누아, 2% 피노 뫼니에미국에서는 흔치 않은 스파클링 와인이지만 품질은 프랑스산 샴페인 못지않습니다.
이 와인 덕에 미국 스파클링 와인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스파클링 와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샴페인 지방의 전통 방식으로 만들며, 출시 전 차가운 온도에서 안정화 과정을 거쳐 주석산염을 제거한 후 병입합니다. 이 상태로 다시 6~12개월의 숙성 기간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죠. 보통 신세계의 스파클링 와인은 산도와 과일 향, 꽃향기 등으로 단순한 데 비해 이 와인은 과일 향에 브리오슈 빵에서 나는 효모 향이나 견과류 향이 느껴지면서 한층 다층적이고 복잡한 매력을 자랑하죠. 너무 톡 쏘지 않고 부드럽게 퍼지는 기포 또한 일품.
숭어구이숭어구이에 산초와 베이컨, 간장을 이용해 만든 크림소스와 봄동을 곁들였습니다. 숭어는 싱싱한 활어를 사용해 완전히 익히기보다 중간 정도로 익혀 부드럽고 고소한 생선의 참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크림소스는 향신료인 산초와 베이컨을 이용해 독특한 향과 감칠맛을 살렸죠. 아삭한 봄동을 곁들인 맛이 일품입니다.
브록 셀라즈 바인 스타
2011년/ USA 소노마 카운티/ 90% 진판델, 10% 시라
사람들은 대개 진판델을 달고 녹진한 맛의 저가 포도 품종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와인은 그런 선입견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마치 피노 누아를 연상케 하는 맑은 루비 빛깔부터 그렇죠. 첫맛은 풍성한 과일 향과 단맛, 산도가 지배적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크 향과 타닌 맛이 서서히 올라오면서 멋진 밸런스와 보디감이 느껴집니다. 처음 세상에 선보였을 때, 진판델로 프랑스 피노 누아에 견줄 만한 섬세하고 구조적인 와인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경악할 정도였죠. 소량 생산을 하기 때문에 시중에서 자주 볼 수 없는 것이 단점이자 장점. 대나무가 죽기 전에 딱 한 번 피운다는 대나무 꽃 그림의 라벨이 인상적입니다.
돼지고기 테린틀에 재료를 넣고 차갑게 굳혀 만드는 프랑스 요리 테린과 우리나라의 돼지 머릿고기를 접목한 독창적인 메뉴. 돼지고기는 잡냄새를 없애고 육질을 좋게 하기 위해
포트와인에 숙성, 요리한 후 사각 틀에 넣고 굳혀 만들었습니다. 머릿고기의 다채로운 식감과 돼지고기의 고소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느껴지죠. 여기에 마치 스테이크를 먹듯 겨자 소스를 곁들이면 한층 새로운 돼지고기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