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김치는 350여 가지나 될 만큼 다양하다. 세계김치연구소 박채린 박사는 "우리 조상은 혹한기를 대비해 가을까지 농사지은 곡식과 채소류를 저장했다"며 "김치는 농경문화권에서 가혹한 추위에 생존하기 위한 방편으로 탄생한 음식"이라고 설명한다.
김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문신 이규보의 '
동국이상국집'(1241) 속 '가포육영'으로 본다. 이규보는 "(무를) 장을 곁들이면 여름철 3개월간 먹기 좋고 소금에 절여 9달 겨울을 대비한다"고 적었다. 학계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서 채소를 소금이나 장, 술지게미, 식초 등에 절여서 먹은 것으로 추정한다.
요즘은 김치 하면 배추김치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무가 배추보다 먼저 들어왔다.
조재선 경희대 명예교수는 "무는 적어도
통일신라시대, 배추는 고려시대에 각각 도입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려시대 김치는 지금과 달랐다. 일반적으로 짠지 형태의 절임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김치가 짠지 형태에서 싱거운 김치로 바뀌기 시작했다. 조 교수는 "1569년 간행된 '성소복견고'에 생강, 마늘, 파, 황각 등 향신채 재배법이 잘 설명돼 있다"며 "이들 향신료가 양념으로 이용됐을 것이고, 소금을 적게 넣은 싱거운 김치가 만들어지면서 젖산발효가 진행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배추를 김치에 적극 이용한 건 18세기 들어서였다. 이 시절 배추에 고추, 생강, 파, 마늘, 젓갈, 어육 등을 버무려 오늘날과 비슷한 김치가 완성됐다. 남미가 원산인 고추는 임진왜란 전후 들어왔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배추김치는 조선 초만 해도 '금치'였다. 윤덕노 음식문화저술가는 "요즘 마트에서 1㎏당 8000∼9000원에 살 수 있는 통배추 김치를 조선 중기에 비슷하게 담그려면 9만∼90만원은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추는 귀하고 맛있는 채소로 여겨지면서 조선시대 내내 재배 면적이 확장됐다.
송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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