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오너가 주를 이루던 와인 업계에서 여성의 활약이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활발한 문화 예술 활동을 통해 와인을 알리고 불모지던 포도밭을 개척해 전혀 다른 스타일의 와인을 만드는 등 세계 각국에서 주목받는 파워 우먼 4명을 소개한다.
1스페인 부티크 와이너리 장 레옹의 아트 레이블을 부착한 시그너처 와인.
2스페인 토착 품종을 섞어 만든 토레스 살라모스 레드 와인. 가벼운 과실 향이 특징이다
스페인 부티크 와인을 책임지는 미레이아 토레스
17세기부터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토레스는 창립 125주년 행사에 국왕이 참석할 만큼 영향력 있는 회사로 스페인 곳곳에 와이너리를 운영한다. 그중 현 오너인 미겔 토레스의 딸 미레이아 토레스Mireia Torres는 유럽의 '검은 전설'이라 불리는 마스 라 플라나와 아트 레이블로 유명한 장 레옹의 경영을 맡고 있다. 프랑스 몽펠리에 국립 대학에서 포도 재배와 양조학을 전공하며 본격적인 후계자의 길에 들어선 뒤 2010년 총괄CEO로 취임했다. 가장 돋보이는 행보는 와인 품질뿐 아니라 환경보호와 공익을 위해 수익의 대부분을 투자한다는 것. 현재 양조장 시스템 가동에 필요한 에너지는 포도 수확 시 생기는 잔여물을 태워 만든 에너지와 태양열 에너지로 충당한다. 매년 포도밭에 지속적으로 나무를 심어 올해 안으로 2008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0% 감소시키는 것이 미레이아 토레스의 '환경 프로젝트' 목표다. 칠레에 세운 라스 뮬라스 와이너리는 오로지 공정 무역으로 거래한 포도만을 사용한다. 와인 판매 수익금 일부는 학교 건축, 집짓기 캠페인을 위해 기부한다. 문의
www.torres.es
1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의 조합이 훌륭한 슈퍼 투스칸와인, 구아도 알 타소.
2섬세한 산조베세 품종의 특징이 잘 드러난 안티노리 최고급와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안티노리 세계화를 꿈꾸는 이탈리아 여자, 알비에라 안티노리1385년 조반니 디
피에로 안티노리가 와인 사업을 시작한 이후 26대에 걸쳐 와인을 만드는 와인 명가 안티노리. 현재 회장인 25대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은 전통 와인 '키안티 클라시코'가 아닌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등 국제적인 포도 품종을 사용한 실험적인 블렌딩으로 '슈퍼 투스칸'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인물이다. 975년 론칭한 티냐넬로와 2000년 시작한 솔라이아의 창립자로도 유명하다. 현재 실무를 담당하는 그의 세 딸중 가장 행보가 돋보이는 인물은 바로 장녀이자 부사장인 알비에라 안티노리Albiera Antinori. 아버지 못지않은 모험가로 알려진 그녀는 티냐넬로, 솔라이아, 체르바로, 피안 델레 비네 등 토스카나의 와이너리를 관리하는 것은 물론, 북부 피에몬테의 프루노토 와이너리에도 투자해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와인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나파 밸리의
아틀라스 피크, 명마 비즈니스로 유명한 칠레 마테 가문과 합작한 알비스도 그녀가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는 '안티노리 세계화' 프로젝트다. 토스카나에 방문객을 위한 전용 셀러 및 안티노리의 전통과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박물관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문의
www.antinori.it
1샤토 팔루메 2003. 크뤼 부르주아 등급으로 승격한 해의 와인이다
2샤토 팔루메 2010. 농익은 과일 향과 부드러운 질감이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프랑스 샤토의 성주, 마르탱 카즈뇌브
프랑스 남서부 가스코뉴의 방언으로 '나무 비둘기'를 뜻하는 팔롱브에서 유래한 샤토 팔루메. 1950년대까지만 해도
보르도 와인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던 와인 서적 < 보르도 그리고 보르도의 와인들 > 초판에서 '최고의 크뤼 부르주아 와인'이라 평가받을 만큼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와이너리였다. 제2차 세계대전과 최악의 병충해인 필록세라를 거치며 포도밭은 복구가 불가능할만큼 황폐해졌는데, 이러한 포도밭의 가능성을 알아본 인물이 현재의 오너 마르탱 카즈뇌브Martin Cazeneube다. 보르도 비즈니스 & 마케팅 스쿨에서 공부한 그녀는 한때 고향인 코트 드 블라예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하며 와인 만드는 법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후 메독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흥미를 느껴 새로운 포도밭을 알아보던 중 우연히 샤토 팔루메를 발견하게 되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한 것은 물론 포도나무 재배에 알맞은 척박한 자갈 토양 등 양조에 적합한 여러가지 조건을 확인한 뒤 1989년 마침내 샤토를 매입하기에 이른다. 현재 샤토 팔루메는 과거보다 높은 명성을 누리며 각종 와인 전문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을 블렌딩해서 만드는 레드 와인은 '귀부인의 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부드럽고 맛과 향이 복합적이다. 장기 숙성이 가능한 와인부터 합리적인 가격대의 와인까지 다양한 와인을 만든다. 예술에 관심이 많은 오너가 매년 와이너리에서 그림 전시회와 시화전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치니 방문계획이 있다면 참고할 것. 문의
www.chateaupaloumey.com
1시라 품종으로 만든 콜긴 나인 이스테이트 시라. 담배, 후추 등의 강렬한 풍미가 있다.
2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등을 블렌딩한 콜긴 나인 이스테이트 레드.
나파 밸리 와인의 여신, 앤 콜긴
1990년대, 벌크 와인이 난무하하고 저렴한 와인 판매가 횡행하던
캘리포니아 와인 시장에 컬트 와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컬트 와인이란 손에 넣기 쉽지 않은 소량의 희귀한 와인으로, 당시 미국에서는 손으로 수확해 포도 품질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한정 빈티지를 출시하는 몇몇 와인에만 붙는 영예로운 칭호였다. 당시 양조 전문가 헬렌 털리와 함께 일하며 마르카생, 브라이언트 패밀리 등의 와이너리에서 와인메이커로 활약한 앤 콜긴Anne Colgin은 컬트 와인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녀의 실력이 인정받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은 1996년 산타 헬레나에 약 1헥타르의 작은 포도밭을 구입한 해, 콜긴 와이너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2002년 출시한 와인이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을 받으며 일약 스타가 된 것. '와인의 여신' 또는 '르네상스 우먼'이라고도 불리는 앤 콜긴은 원래 뉴욕 대학에서 순수 예술을 전공했다. 현재는 전공을 살려 와이너리에서 만드는 와인의 레이블도 직접 디자인한다고. 눈에 띄는 또 다른 활동은 바로 와인 경매. 매년 구하기 힘든 좋은 빈티지의 와인이나 매그넘 사이즈 와인을 경매에 내놓는데, 이로 얻은 수익금은 모두 병원 및 예술 기관에 기부한다. 문의
www.colgincellars.com기자/에디터 : 이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