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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씨와 껍질이 과육 이상으로 몸에 좋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씨, 껍질에 대한 연구가 계속될수록 놀라운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최근 호주 아델라이드대학의 연구 결과 포도씨가 치매를 예방하는 데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6개월간 포도씨를 먹은 쥐들은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향상됐고, 치매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 속에 침착되는 것을 막아 치매 발병률이 50% 감소됐다. 이는 포도씨에 든 폴리페놀 성분이 치매 원인인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뇌내 침착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이 밖에 수박 씨는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B 등이 풍부하며, 참외 씨도 칼슘, 인과 같은 무기질이 풍부하고 배농, 소염 작용을 한다.
사과 껍질에 많이 든 퀘르세틴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이 뇌세포를 파괴하는 것을 막아주며, 트리테르페노이드란 성분은 간암, 대장암, 유방암의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귤 껍질 역시 살베스트롤이란 성분이 들어 있어 폐암, 전립선암, 유방암 등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과일 씨, 껍질은 이처럼 뛰어난 효과가 있지만 일상에서 즐겨 먹는 이들은 흔치 않다. 대부분 과육만 섭취한다. 맛이 없거나, 너무 딱딱해서 씹기 어렵거나, 농약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다.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과일 씨, 껍질을 먹는 방법은 없을까.
▶딱딱하면 갈아 먹자, 안씹고 삼키면 무소용포도씨는 씹어 먹을 수도 있지만 치아가 약한 사람에겐 너무 딱딱한 게 사실이다. 씨 크기가 작아 그냥 삼켜도 무방하지만 영양분이 흡수되지 못하고 그냥 대변으로 배출된다. 이 때는 포도를 통째로 믹서기로 갈아 포도즙을 내서 먹는 방법이 있다. 포도즙은 아래 쪽에 침전물이 남는데 씨 부스러기이므로 버리지 말고 같이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석류 역시 과육보다 씨와 껍질에 생리활성물질인 에스트로겐과 타닌, 펙틴 등 좋은 성분이 많으므로 통째로 갈아 주스로 마시는 것이 좋다.
수박씨, 참외씨는 말랑말랑한 편이지만 영양분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역시 충분히 씹어 삼키는 것이 좋다. 맛도 그리 쓰지 않다. 하지만 위장 장애가 있거나 소화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그냥 삼킬 바에야 골라내고 먹는 편이 낫다. 감귤류에 들어 있는 씨는 대체로 씹기 편하다.
▶껍질째 먹을 때는 유기농인지부터 따져라과일을 껍질째 먹을 때는 농약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몸에 좋은 성분을 취하려다 몸에 해로운 농약을 먹는다면 되려 손해다. 을지대 나영아 외식조리학과 교수는 “농약을 전혀 쓰지 않은 과일은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배, 포도 등은 종이에 과실을 싼 채 농약을 뿌리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사과는 그런 장치도 없어 유기농 제품이 아니면 껍질은 먹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또한 잇몸이 부실한 경우 사과를 껍질째 베어먹다 잇몸을 다칠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포도 껍질을 잘근잘근 씹다가 뱉거나 삼키는 사람도 많은데 껍질에 달라붙은 농약을 생각하면 바람직하지 않다. 포도 과육을 껍질에서 입으로 빨아들일 때 딸려오는 껍질 안쪽의 미끈미끈한 부분까지만 섭취해도 레스베라트롤, 철분 등 영양소가 충분하다고 나영아 교수는 조언했다.
긴 시간을 거쳐 한국에 들여 오는 망고, 자몽, 바나나는 껍질에 많은 농약이 뿌려져 있어 껍질을 깨끗이 씻더라도 먹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감이나 방울토마토도 농약에서 자유롭지 않으므로 식초나 베이킹소다를 10% 농도로 탄 물이나 소금물에 30분 이상 담궜다가 물에 행궈 농약을 어느 정도 제거한 뒤 먹어야 한다. 과일을 냉장고에 보관하기 전에 이렇게 씻어 두는 게 낫다. 귤 껍질은 금감, 방울토마토보다 훨씬 많은 농약이 뿌려지므로 굳이 먹으려면 유기농만을 택해야 한다.
▶과일 알레르기 있으면 껍질 먹지 마라복숭아, 자두, 살구, 매실, 대추 등 과육 중심에 크고 단단한 씨가 있는 핵과류는 씨가 너무 단단해 먹기도 어렵거니와 생것으로 먹지 말아야 한다. 아미그달린이란 독성 물질이 있어 배앓이 등을 할 수 있다. 아미그달린은 항암효과가 있어 약재로 쓰이고 있다.
과일에 알레르기를 보이는 사람도 껍질을 먹지 말아야 한다. 복숭아, 사과, 배, 체리, 키위 등을 먹었을 때 입, 목구멍, 혀가 간지럽고 따끔거리는 증상이 온다면 구강알레르기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 껍질에만 반응이 오는 경우 껍질을 직접 만지지 않고 깎아서 과육만 먹는다면 괜찮다.
고려대 안암병원 오희옥 영양팀장은 “우리가 쉽게 접하는 과일 대부분은 껍질과 씨 등에 폴리페놀, 라이코펜과 같은 피토케미컬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 항산화 작용, 발암 억제, 만설질병 예방 등에 효과가 뛰어나지만 농약 문제나 식습관 등 현실적으로 장벽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껍질, 씨만 가려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조용직 기자/yjc@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