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한 해 동안 정성스럽게 지은 농사로 거둬들인 곡식들이 누룩과 어우러져 전통주가 알맞게 익어가는 때다. 이번 주말, 가을의 그윽한 향을 담은 술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어떨까.
좌우지간 계절은 바뀐다. 아열대니 스콜이니 해도, 아침저녁 반소매 티셔츠가 무안한 시점은 오더라. 회식 메뉴가 치맥(치킨과 맥주)에서 삼겹살과 소주로 바뀌는 것만 봐도 그렇다. 맥주가 소주로, 계절 넘는 풍경이 사소하면서도 알딸딸하다.
음력 9월 9일을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간다는 중양절이라 부른다. 양수인 홀수가 겹쳤다고 해서 중양 또는 중구라고도 한다. 추석이 가을을 즐기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다면, 중양절은 가을을 만끽하기 좋은 시기다. 중양절의 가장 큰 놀이는 야외에서 치르는 꽃놀이와 단풍놀이다. 가을 국화를 완상하거나 객지에 사는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올라 고향과 식구 생각을 하면서 국화주 한잔을 마셨다.
국화주는 가을에 어울리는 최고의 술이다. 술잔에 국화잎을 띄우면 국화주가 되기도 하지만, 술을 빚을 때 국화를 넣어 국화주를 빚기도 했다. 국화주 제조 방법은 <동의보감>, <규합총서> 등 옛 문헌에 두루 등장한다. 청주 한 말에 국화 두 냥쭝 정도를 사용하는데, 국화를 넣어 빚기도 하고 혹여 독성이 있을까 봐 국화 송이를 주머니에 담아 술항아리 위쪽에 매달아 국화향만 술 속에 담기도 했다.
국화가 들어가는 전통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리산 자락의 경남 함양에 국화주가 있다. 이 술은 덧술 발효를 할 때 국화와 구기자, 생지황 등을 달인 물을 넣는다. 경북 안동의 정재 종택에서 전해오는 술로 송화주가 있다. 송화주에는 솔잎과 꽃잎이 들어가는데 꽃잎은 주로 국화다. 충남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계룡백일주와소곡주에도 국화가 들어간다. 신선주라 불렸던 약주 계룡백일주는 알코올 16도인데 찹쌀, 누룩, 재래종 국화꽃, 오미자, 진달래, 솔잎이 들어간다. 앉은뱅이술이라고 불리는 소곡주에도 국화나 국화 줄기가 들어간다.
중양절에 즐겼던 또 다른 술로 상락주가 있다. 상락주는 중국 하동의 상락 고을에 우물이 있는데 뽕잎이 지는 시기에 그 물을 길어다 술을 빚으면 그 술맛이 매우 좋아 붙여진 이름이다. 정약용의 시를 보면 “가을이 오면 상락주를, 잔 씻어 함께 나누겠지요”라는 구절이 나오고, 유만공이 1843년에 지은 <세시풍요>는 중양절에 “금꽃을 처음 거두어다가 둥근 떡을 구워놓고 상락주를새로 걸러 술지게미를 짜냈다. 붉은 잎 가을 동산에 아담한 모임을 이루었으니, 이 풍류가 억지로 높은 산에 오르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이 가을 높은 산에 올라 단풍과 국화를 완상하기 어렵다면, 국화주 한잔으로 마음을 달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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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현숙 | 포토그래퍼 강진주 | 도움말 허시명(술 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