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불황에는 사실 '명품 먹거리'라는 칼럼 제목조차 부담스럽다. 직장인들이 백반 5,000원이 버거운 세상인데 거위간이니, 스테이크니, 50십년 된 불고기가 다 철 없는 소리로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반드시 챙겨야 하는 끼니가 있으니, 바로 아침밥이다.
■ 콘티넨탈 Vs 아메리칸'콘티넨탈(continental)' 즉, 대륙성 아침밥이라 하면 주로 유럽식 스타일을 말한다. '빵+커피+버터와 잼'으로 비교적 단출하게 완성되는 유럽식 아침밥의 수준은 일단 빵에서 판가름난다.
빵의 종류가 무엇인가, 페스츄리인가 담백한 밀빵인가, 건강빵인가. 밀가루의 산지는 어디인가, 유기농인가 무표백인가. 당일 새벽에 구운 것인가 아닌가 하는 신선함의 문제를 따지게 된다.
빵 다음으로는 커피가 잣대에 오른다. 원두는 어디서 가져 온 것인지, 추출 방식은 어떠한지, 커피는 어떤 굵기로 갈아 어느 정도의 압력을 가했는지 점점 세밀한 기준이 적용된다.
버터와 잼 역시 중요하다. 버터는 포장을 뜯는 순간부터 산화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특히 민감한 문제. 특히 가염인지 무염인지, 수분을 많이 제거한 정제 버터인지 등 버터의 종류에 따라 버터를 바른 빵 맛이 천차만별 달라진다.
잼은 단연코 홈 메이드가 인기. 농작물을 오래 다뤄 본 농장에서, 혹은 농장 직속의 베이커리에서 손으로 과일을 썰고, 믿음직한 당을 넣고, 불 위에 오래 끓여서 만든 잼이 최고로 대우받는다. 매실 한 길로 오래 걸어온 브랜드가 만든 매실잼 등은 그래서 외국인에게 환영받는 선물이 된다.
그러면 아메리칸 스타일의 아침밥은 무엇이 다를까? 일단 양이 늘어난다. 따뜻한 달걀 요리가 추가된다. 달걀 요리는 달걀말이처럼 부쳐내는 오믈렛이나 노른자를 살린 프라이, 혹은 달걀을 휘휘 풀어서 익혀내는 스크램블 등이 있다.
오믈렛을 만들 때에는 버섯, 양파, 파슬리, 토마토, 치즈나 햄 등을 다져 넣으면 맛이 더 풍성해진다. 미국식 아침 식사에는 이렇게 따뜻한 계란에 소시지나 햄, 베이컨 등이 곁들여진다.
■ 콘지 Vs 일본식'콘지(congee)'는 중국식 죽을 말한다. 중국 어디서든, 중국령인 홍콩에서, 중국 문화가 집결된 부산 초량동이나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만날 수 있는 아침 메뉴다. 이른 아침 하얗게 쑨 죽을 그냥 먹어도 속이 쫙 풀리지만, 여러 가지 고명을 올릴 수도 있다.
짠지처럼 절인 채소를 다져 올리거나, 송송 썬 쪽파, 꼬들꼬들한 중국식 무 절임, 다져서 볶은 고기 등은 내 입맛에 딱 맞는 간을 위한 토핑이 된다. 여기에 푹 담가 먹는 빵이 있다.
기다란 도넛처럼 튀긴 빵을 한 입 크기로 조각 내어 죽에 푹 적셔 먹는다. '커빙'이라 불리는 담백한 구운 빵도 곁들이면 은은하다. 숙취로 고생하는 아침, 흰죽으로 속을 풀어 본 사람은 그 고마움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말이 필요치 않은 따스함에 땀이 삐질삐질 나오면서 속은 달아오르고,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으면서 평안한 상태가 된다.
일본식 아침 식사는 죽이나 쌀밥 한 그릇, 구운 생선 한 토막, 조미 김과 절임 채소 약간, 계란말이 두 조각 정도로 완성된다. 네 칸 정도로 나눈 칠기 도시락에 담겨 나오거나, 대나무 등을 엮어 만든 작은 소반에 단풍잎, 댓잎 등이 깔려 나오니 보기만 해도 기분이 새롭다.
담백한 찬을 벗삼아 밥이든 죽이든 천천히 먹다 보면 가슴 속으로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느낌을 갖게 된다.
■ 햅쌀로 지은 아침 밥오래 전 일이지만, 남편이 군 생활을 했던 곳이라 강원도 양구군은 아직도 내게 특별하다. 지금은 길도 잘 닦이고, 이래저래 다녀오기 수월해진 청정지역. '두타연'이라는 청정 계곡은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광이며 공기를 자랑한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는 '양구 쌀'을 먹는다. 세상 좋아진 덕에 인터넷으로 4 킬로씩 주문할 수 있다.
청정지역 햅쌀로 지은 밥에 된장국, 나물 무침 한 가지, 젓갈 한 가지, 김 구이, 김치가 전부다. 단백질이 달리는 날은 두부를 부치거나 계란 요리를 하나 더한다. 압력솥을 불에 올리고, 밥 익는 동안 나머지 찬을 준비하면 된다. 특히 된장국은 아침이니까 진하지 않게 끓여 훌훌 마실 수 있게 한다.
전날, 집까지 들고 온 업무를 완성하느라 세 시간 밖에 잠을 못 잤어도, 회식으로 과음을 하였어도, 부부끼리 티격태격하다 잠들었어도 따끈한 된장국에 밥 한 술 먹으면서 술술 풀리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용기를 내야 할 내 주변 모든 이들이 아침밥의 마법으로 불쑥 힘이 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친 김에 내가 주로 먹는 아침 밥 레시피를 살짝 공개한다.
포인트는 조리가 간단하고 영양은 많아야 한다는 점.
■ 들깨즙1. 쌀은 여러 번 씻어 秊衫걋?받아 둔다.
2. 들깨와 쌀을 블랜더에 넣고 곱게 간다.
3. 냄비에 1의 쌀뜨물이나 정수한 물을 담고 끓이다가 2를 넣고 다시 끓인다.
4. 소금 간을 해서 먹는다.
5. 두부를 큼직한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녹말 가루 묻혀 튀기고, 준비된 들깨즙에 넣어 먹어도 좋다.
■ 두부 오븐 구이1. 두부는 깨끗이 물기를 닦고 4등분 한다.
2. 오븐용 접시에 1의 두부, 대충 썬 가지, 브로콜리, 낱알 옥수수 등을 담는다.
3. 2에 소금을 약간 뿌리고 참기름을 살짝 둘러 200도로 달군 오븐에서 10~15분간 익힌다.
■ 마찜1. 마는 껍질을 벗기고 강판에 갈아 둔다.
2. 제철 버섯을 곱게 썰어 1과 섞고, 사기 볼에 담아 끓는 물에서 중탕으로 익힌다.
3. 소금간을 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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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ㆍ음식 에세이 <밥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