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충무로 '십원집'은 요즘 점심·저녁으로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손님들의 80%가 찾는다는 인기 메뉴는 '파불고기'. 일반 돼지불고기에 파채를 얹어 연탄불에 구워내는 음식이다. 황순필 사장은 "초벌구이한 불고기를 한지에 깔고 그 위에 숙주, 고기를 차례로 얹은 다음 그 위에 파채를 다시 얹기 때문에 아삭아삭 개운한 맛이 일품"이라고 자랑했다.
↑ [조선일보]서울 충무로에 있는‘십원집’의 파불고기. 연탄불에 구운 돼지고기와 파를 한입 크기로 싼 뒤 소스에 찍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이명원 기자
신논현역 근처의 '퐁당 파불고기' 집도 네티즌들 사이에선 입소문난 고깃집. 간판을 아예 파불고기로 내세운 이 집은 분식집인 양 캐주얼한 인테리어가 재미있다. 초벌구이해서 나온 돼지고기에 파채와 톡 쏘는 맛의 소스를 끼얹은 뒤 구워먹는 맛이 고소하다. 양념한 돼지껍질을 파채에 얹어 구워먹기도 한다.
바야흐로 파의 전성시대다. 바싹 구운 치킨에 파채를 얹어 먹는 파닭에 이어 파삼겹살, 파불고기, 파오리구이, 파순대까지 파를 간판으로 내세운 음식들이 사랑받고 있다. 퓨전 레스토랑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압구정동 '젠하이드어웨이'의 베스트 메뉴는 일식삼겹살찜, 블랙빈소스 안심구이, 오향장육샐러드. 이 메뉴의 공통점은 음식 위에 일제히 파채가 수북이 올라간다는 점이다. 김지호 매니저는 "파의 독특한 향기가 육류의 누린 맛을 없애주는 데다 장식효과까지 얻을 수 있어서 파채를 올린다"고 말했다.
파채에 갖은 양념을 한 뒤 고기에 곁들인 음식도 인기다. 충북 청주의 '봉용불고기' 삼겹살은 그래서 인기다. 간장과 설탕, 고춧가루에 버무린 파채를 삼겹살과 함께 철판에서 함께 굽는다. 마니아들은 이 집의 삼겹살과 파채, 구운마늘을 '삼합'이라 부르며 상추에 싸먹는 맛이 일품이라고 극찬한다. 대전 '명랑식당'의 파개장도 식도락가들 사이 유명한 메뉴. '월간 외식경영' 김현수 대표는 "고사리, 토란, 도라지 같은 재료는 모두 생략하고 오로지 파와 고기만 넣어 시원하게 끓여내는 파개장(파육개장)은 '매운 단맛'을 내는 파의 특장을 잘 살린 음식"이라고 평했다.
요리 연구가 최승주씨는 "파채의 아삭한 질감과 향긋한 향이 닭고기, 삼겹살 같은 육류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기 때문에 인기인 것 같다"면서 "영양면에서도 찬 성질의 육류에 비타민과 칼슘이 풍부하면서도 따뜻한 성질의 파가 서로 궁합이 잘 맞으니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요리 연구가 박종숙씨는 "음식의 시각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파는 좋은 식재료"라고 말한다. "일반 양념불고기처럼 처음부터 파와 마늘을 넣고 미리 양념을 해두면 맛이 묽어지고 고기가 상할 염려가 있는데, 고기를 한번 구워낸 다음 즉석에서 파를 숭숭 썰어서 얹으면 맛도 좋고 육류의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는 데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양념에 불과했던 파가 음식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늘 새로운 맛과 식감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월간 외식경영' 김현수 대표는 "한때 콩나물을 내세운 음식들이 유행한 것처럼 요즘은 파가 눈에 많이 띄는 게 사실"이라면서 "아주 새로운 경향이라기보다는 양념으로 숨어 있던 식재료가 음식 위로 올라오면서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