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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낭만 포차 |
글쓴이: ★…믿는 ㉠ㅓ㉧f | 날짜: 2011-10-24 |
조회: 4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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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낭만 포차밤이 길어졌다. 바람도 제법 차가워 따뜻한 국물 요리가 생각나는 요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포장마차는 어떤가. 도시 미화란 대의명분 아래 점차 사라져가고 있지만 포장마차는 여전히 퇴근길 서민들의 하루를 소리 없이 응원한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포장마차의 하루가 시작된다. 일과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역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포장마차가 후각을 자극한다. 1천원짜리 지폐 한 장이면 시장기를 채울 수 있는 주전부리부터 뜨끈한 어묵국물에 곁들이는 소주 한 잔까지, 작은 천막이 행인의 발걸음을 잡는다.
문헌으로 내려오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들은 해방 직후 청계천 부근에 두꺼운 광목으로 지붕을 올린 간이주점이 포장마차의 시작이었노라고 말씀하신다. 한 평 남짓한 크기의 마차 한쪽은 조리 공간이고 나머지 세 면에는 손님들이 둘러앉았다. 기껏해야 7~8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에 새로운 손님이 올 때마다 서로 좁혀 앉으며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내곤 하던 그 시절. 요깃거리라야 삶은 달걀에 우동이 전부였고, 참새구이나 닭발에 소주를 곁들이는 정도였지만, 낯선 사람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정겨웠다. 가난하던 그 시절, 연탄불에 구운 참새구이와 잔으로 파는 소주로 대표되는 포장마차는 서민 문화의 꽃이었다. 하지만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으로 거리를 단속하면서 잠시 주춤했고,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부터 다시 호황을 누렸다. 요즘은 도시 미화 정책으로 대로변에서는 거의 볼 수 없지만, 지금도 유동인구가 많은 골목길에서는 심심찮게 포장마차를 발견할 수 있다.
간판도 없고 전화번호도 없지만 1만~1만5천원이면 맛있는 안주에 소주 한잔 곁들일 수 있는 포장마차. 가을밤의 낭만은 덤이다.
◆ 30년 넘는 소박한 밤 문화 마포 포장마차촌
옆자리 손님이 계산을 하고 일어서자,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던 젊은 연인이 유튜브로 뮤직비디오를 재생한다. 저녁식사 후 귀갓길에 간단하게 술을 마시기 위해 포장마차에 들렀다는 두 사람. 덕분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빠져나간 공간에 나직하게 배경음악이 채워진다. 마포 염리초등학교 앞길에는 30년도 넘게 이어져온 포장마차촌이 있다. 한때는 해가 진 뒤 양쪽 도로변을 점령하며 불야성을 이뤘지만, 도로가 정비되면서 많이 사라지고 지금은 여섯 곳 정도만 남았다. 1988년부터 이 자리를 지켰다는 '마포집' 아주머니는 오랫동안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느라 고단하지만, 단골도 생겼고 멀리서 찾아오는 반가운 사람들이 있어 꼭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20년 넘는 세월, 주머니가 가볍던 20대 대학생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중년 회사원은 노년이 된 그 무수한 세월만큼 그들과 나눌 수 있는 추억도 함께 쌓인 모양이다. 우동, 잔치국수, 라면 등 식사 대용 음식을 팔고 있지만, 가끔 단골손님과 도시락을 나눠 먹을 정도라고 하니 이들의 관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금도 소박한 술 문화를 좋아하는 20대 초반 대학생부터 옛 추억을 생각하면서 찾는 70대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이 거리가 가장 붐비는 시간은 퇴근 직후인 오후 7시에서 8시까지. 가장 인기 좋은 메뉴는 꼼장어와 낙지볶음이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홍합탕과 대합탕, 순두부탕을 찾는 손님이 늘고 있다.
영업시간: 오후 5시~익일 오전 5시, 매달 넷째 주 일요일은 정기휴일
추천 메뉴: 오돌뼈, 닭똥집, 꼼장어, 순두부탕, 대합탕
가격: 안주류 1만~1만3천원, 주류 3천원, 식사류 3천원, 음료 1천원 화장실
위치: 성지공원 공용 화장실 사용
찾아가는 길: 지하철 5호선 마포역과 공덕역 사이 뒷골목 염리초등학교 앞
◆ 골목으로 숨어든 여의도 포장마차
깃이 빳빳하게 정돈된 하얀 와이셔츠 차림의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골목으로 향한다. 소주 한잔이 생각나서다. 증권거래소 앞 대로에 몰려 있다 골목으로 숨어든 여의도 포장마차는 여의도역 뒤 블록 사거리마다 한 곳씩 발견될 정도로 그 수가 대단하다. 주 고객은 주변 증권가의 '넥타이부대'와 방송국 사람들. 방송국이 이사를 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분리되면서 출근시간까지 이어지던 영업시간이 새벽 2~3시까지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새벽이 되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인다. 술손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밤샘 근무를 하는 이들이 야식으로 우동, 라면, 잔치국수를 찾기도 하는데 3천원이면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다. 미래에셋 건물 좌측에 있는 포장마차 주인아주머니는 오후 3시에 집 근처인 사당시장에서 장을 보면서 하루가 시작된다고 한다. 신선한 식재료를 직접 구입하기 위해 서두르는 것. 기본 안주로 어묵국물과 반숙 달걀프라이가 나오고, 포장마차 안주계의 쌍두마차인 오돌뼈와 꼼장어를 비롯해 담백하고 매콤한 맛의 닭똥집이 이 집의 인기 메뉴다.
영업시간: 오후 6시~익일 오전 3시
추천 메뉴: 닭똥집, 홍합탕, 달걀말이, 꼬막
가격: 모든 안주류 1만원, 주류 3천원, 식사류 3천원, 음료 1천원
화장실 위치: 임시로 만든 간이 화장실 사용
찾아가는 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5번 출구 뒷골목
◆ 이촌동 마지막 포차 한가람 포장마차
경쟁적으로 아파트를 올리던 10여 년 전, 이촌역 앞에는 포장마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한가람 포장마차 역시 그 즈음 이촌역 앞에서 포장을 치고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파트가 완공되자 주민들의 요구로 더 이상 천막을 치고 장사를 할 수 없게 됐고, 그곳에 자리하던 포장마차는 모두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사라졌다. 한가람 포장마차는 이촌동의 마지막 포장마차인 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이면 조리대가 달린 미니 트럭을 몰고 와 자동차들이 빠진 길가 주차장 자리에 터를 잡는다. 10여 개의 테이블이 놓이고 전등을 밝히면 비로소 영업 시작. 다소 외진 곳이지만 한강 이촌지구와 연결되어 있어 사람들은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면서 점찍어뒀다가 찾아오곤 한다. 한가람 포장마차 주인은 안주를 선택할 때 시간에 따라 기준이 있다고 한다. 초저녁에는 꼼장어, 오돌뼈, 닭발, 닭똥집, 제육볶음처럼 기름기 많은 것을 선택하고, 새벽녘에는 거의 조리를 하지 않아 담백하고 칼로리 걱정이 없는 주꾸미 같은 안주가 좋다고.
영업시간: 오후 6시 30분~익일 오전 3시, 매주 일요일 휴무
추천 메뉴: 꼼장어, 오돌뼈, 닭발, 주꾸미
가격: 안주류 1만~1만3천원, 주류 3천~1만원, 식사류 3천원, 음료 1천원
화장실 위치: 서빙고골프연습장 옆 공용 화장실 사용
찾아가는 길: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신동아아파트 방향으로 가다가 지하도 옆 우회도로를 따라 막다른 길로 가다 보면 나오는 동작대교 아래
◆ 칼칼한 멸치국물로 맛을 낸 연신내 손칼국수
우동, 짜장면, 핫바, 토스트 등 연신내역 주변 넘쳐나는 길거리 음식 중 유독 눈에 띄는 곳은 손칼국수집이다. 하얗게 삶은 깨끗한 행주가 그곳의 위생 상태를 말해주듯 조리 공간도 일류 레스토랑 못지않게 깔끔하다. 메뉴는 오직 하나 손칼국수로, 주문에서 상차림까지 걸리는 시간은 5분 이내.
이곳 역시 30년 넘은 포장마차 거리다. 안주와 술을 팔던 예전에는 주변 상가와 메뉴가 겹쳐 부침이 많았다고 한다. 손칼국수집 주인아주머니는 주변 상가와의 갈등을 없애기 위해 1년 동안 문을 닫고 메뉴를 고민하다가 손칼국수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그렇게 메뉴를 변경한지 벌써 20년. 숙성시킨 반죽을 밀대로 밀어 즉석에서 면발을 만들고, 주문이 들어오면 국수를 삶아 멸치를 우려 만든 시원한 국물을 부은 다음 청양고추와 파, 김가루, 다대기를 얹어 낸다. 칼칼한 맛이 일품인 손칼국수에는 소주 한잔도 빠질 수 없다. 국물이 시원해 술을 마신 뒤에도 속이 편하고 고픈 배를 채울 수 있어 그야말로 일석이조. 술자리 후 집에 들어가면서 먹는 해장 음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영업시간: 오후 8시~익일 오전 6시
가격: 칼국수 4천원, 소주 3천원
화장실 위치: 지하철역 내 화장실 사용
찾아가는 길: 지하철 3·6호선 연신내역 6번 출구 앞 배스킨라빈스 맞은편
◆ 포장마차의 마지막 낙원 창동 포장마차촌
창동역 주변은 포장마차 천국이다. 주변에 아파트와 빌라가 많아 유동인구가 많은데다가 인근 노원역과 수유역에 비해 유흥업소가 적은 것도 이곳 포장마차촌의 형성 배경이 되었다. 창동역 1번 출구 앞은 고가 밑으로 주전부리를 판매하는 곳이 많고, 2번 출구 앞에는 대형 포장마차가 10군데 정도 자리 잡고 있다. 그 대형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면 10여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테이블 사이 간격이 넓어 포장마차라기보다 실내 주점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계산대 옆에는 대형 TV도 있고 플라스틱이 아닌 알루미늄으로 싸인 그럴싸한 테이블도 있다. 경기가 안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남자들만의 공간이던 이곳에 유모차를 끌고 와 우동을 먹고 가는 주부들이 등장하는 등 고객층이 넓어져 문화는 더욱 다양해졌다. 왼편 길 끝에 자리한 '끝집' 포장마차의 인기 메뉴는 숯불삼치구이다. 한편에서 숯불을 지펴 초벌구이를 해주고 구멍 뚫린 테이블 위에 화로를 놓아 은근히 익혀가면서 먹을 수 있다. 창동의 포장마차들은 쉬는 날이 없다. 가끔 단속이 심하거나 시위가 있는 날에는 문을 닫기도 하지만, 거리별로 나누어 격주로 일요일마다 쉬기 때문에 이 거리가 잠드는 밤은 없는 셈이다.
영업시간: 오후 6시~익일 오전 7시
추천 메뉴: 숯불삼치구이, 닭똥집숯불구이, 꼼장어숯불구이, 막창소금구이
가격: 안주류 1만~1만5천원, 주류 3천~1만원, 식사류 3천원, 음료 1천원
화장실 위치: 포장마차촌 좌측 공용 화장실 사용
찾아가는 길: 지하철 1·4호선 창동역 2번 출구 앞
◆ '불 맛'이 살아 있는 신당동 양념곱창구이
퇴근길 직장인부터 동대문 새벽시장을 찾는 상인, 그리고 외국인 여행객까지 이 곱창 골목은 초저녁부터 사람들로 붐빈다. 게다가 요즘에는 신당창작아케이드와 신당지하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주변에 볼거리도 많아 관광 코스로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신당동 곱창구이는 냉동 재료가 아닌 생막창을 쓰는데, 누린내가 나지 않도록 밀가루로 씻은 뒤 후춧가루와 생강으로 밑양념을 해둔다. 주문을 하면 석쇠를 걸친 연탄불 위에서 곱창을 굽다가 떡과 양파를 넣고 양념장을 올려 초벌구이를 해준다. 여기에 팽이버섯과 깻잎을 얹어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올려 기호대로 구워 먹는데, 소주 한잔도 빠질 수가 없다. 특히 연탄불에 구워 불 맛이 살아 있는데다가 기름기가 빠져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새벽까지 포장마차를 채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래된 단골이다. 60세를 훌쩍 넘긴 주인아주머니를 '엄마'라 부르는 40대 초반 아저씨들. 10대 때부터 드나들었고 멀리 이사한 후에도 '엄마'의 손맛이 그리워 자주 찾는다는 단골손님과 주인아주머니가 늦은 밤 나누는 대화가 모자지간처럼 다정하다. 25년 전 거리로 나와 새벽 장사를 하며 이곳에서 아이 셋을 대학까지 가르치고 집도 마련했다는 나주집 아주머니는 이제 65세를 바라보는 나이라 새벽까지 일하는 것이 조금 버겁다고 한다. 하지만 멀리서 찾아와주는 단골손님들 덕분에 쉽게 그만둘 수도 없다고. 보증금 1백만원에 15만원짜리 월셋집에서 시작해 내 집을 마련한 아주머니도, 1인분에 2천5백원 하던 시절부터 1만원 하는 지금까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불 맛이 살아 있는 양념곱창구이도 모두 이 거리의 주인이다.
영업시간: 오후 7시~익일 오전 4시, 일요일 격주 휴무
가격: 양념곱창구이 1만원, 주류 3천원
화장실 위치: 중앙시장 내 공용 화장실 사용
찾아가는 길: 지하철 2·6호선 신당역 11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다가 성동공업고등학교에서 우회전한 길에서 중앙시장 고개 언덕마루까지
기획: 전수희 기자 | 진행: 이미선(프리랜서) | 사진: 김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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