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람들이라고 만날 아뮈즈 부쉬(Amuse Boucheㆍ전채요리)로 시작해 디저트로 끝나는 코스 요리만 먹는 건 아닐 테다. 우리가 날마다 한정식을 먹지 않는 것처럼 일본 사람들도 허구한 날 스시와 사시미만 먹지는 않는다. ‘집밥’은 따로 있다. 그리움으로 혀 끝을 옥죄는 것은 바로 그 집밥의 맛이다.
각국의 ‘가정식’을 테마로 하는 레스토랑들이 늘고 있다. 격식 차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fine dining restaurant)과 달리 집에서 편안하게 먹는 음식들을 푸짐하게 한 상 차려놓는 곳들이다. 불황기의 휴가철, 외국 여행의 추억과 향수를 달랠 수 있는 가정식 요리를 먹어보는 건 어떨까. 소박한, 그러나 정성스런 밥상이 고급 레스토랑이 부담스러운 미식가들을 유혹한다.
미국 남부 가정식 ‘샤이 바나’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의 ‘샤이 바나(Shy Bana)’는 국내에는 드물게 미국 남부의 케이준 스타일을 주메뉴로 하는 가정식 레스토랑이다. 본래 일본식 수제 햄버거 스테이크 식당이었던 이곳은 7년간 미국 뉴욕에서 유학을 했던 송제혁(38) 사장이 매콤새콤한 케이준 스타일이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2007년 9월 미국 남부 가정식 식당으로 재오픈했다. 케이준이란 제국주의 시대 영국인들에 의해 캐나다에서 미국 루이지애나주로 강제 이주당한 프랑스인들이 만들어 먹기 시작한 음식으로, 마늘 양파 칠리 후추 겨자 샐러리 등을 섞어 만든 매운 맛이 나는 양념을 넣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어머니들이 감기에 걸린 자녀들을 위해 진한 치킨 수프 위에 페스트리를 얹어 오븐에 굽는 정통 미국 가정식 치킨 팟 파이(1만 2,800원), 쌀밥 위에 미트볼을 얹은 매콤한 루이지애나식 전통 스튜 ‘미트볼 검보’(9,500원), 여러 가지 야채와 다진 쇠고기를 오븐에 구워 그 위에 토마토소스와 양파링을 얹는 ‘미트로프’(1만 9,800원), 아메리칸 치즈를 녹여 생크림과 섞은 후 삶은 마카로니와 버무린 ‘마카로니 앤 치즈’(5,000원) 등이 인기 메뉴다. 부가세 10% 별도. 가게가 좁아 무작정 갔다가는 기다리기 십상이니 예약은 필수. (02)536-4281
프랑스 남부 가정식 ‘아 따블르 비스’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아 따블르 비스(A Table Bis)’는 삼청동의 유명한 프렌치 레스토랑 ‘아 따블르’가 비스트로 스타일로 새로 오픈한 프랑스 남부 가정식 식당. 국내에 보편화한 프렌치 파인 다이닝이 복잡한 메뉴와 비싼 가격으로 접근이 어렵다면, 이곳은 프랑스의 푸근한 서민음식과 가정식을 세련된 스타일로 다듬은 곳이다.
프랑스의 시골요리를 주로 하는 이 집의 대표적인 메뉴는 부이야베스(2만 5,000원). 프랑스 항구도시 마르세이유의 명물 요리인 부이야베스는 감자와 콩, 토마토, 새우, 홍합, 샤프란 등 20여 가지 재료를 무쇠냄비에 넣고 끓인 국물 요리로 만드는 데 이틀 정도 걸린다. 달착지근하면서 매콤한 국물 맛이 언뜻 카레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프랑스인들 아주 좋아하는 요리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이곳에만 있는 메뉴인 카술레(cassoulet)는 프랑스인들의 소울푸드 같은 음식으로, 프랑스산 콩과 오리 꽁피(오리 기름을 이용해 15시간 익혀낸 프랑스 페리고 지방의 스튜 형식 요리)에 직접 절인 돼지고기 ‘프티 살레(petit-sale)’ 등을 넣은 랑그독 지역의 요리. 소꼬리와 사태, 갈비 등을 여러 야채와 함께 뭉근히 끓여낸 맑은 국물 요리 ‘포 토 푸(pot-au-feu)’와 니스식 샐러드, 부르고뉴식 달팽이요리, 프로방스식의 홍합 그라티네, 리옹식 양파 수프 등 다양한 프랑스의 지방 요리들을 갖추고 있다. 주차 불가, 일요일 휴무. (02)736-1049
일본 가정식 ‘오헤야’
올해 5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가로수길에 오픈한 오헤야는 일본식 조림 요리를 주로 하는 가정식 레스토랑. 도쿄에서 3년간 일러스트를 공부한 홍성연(30) 사장이 일본 가정식 요리 중 한국 젊은이들의 감각에 맞는 메뉴들을 골라 재구성했다.
일본 요리는 양이 적다는 것이 고정관념이지만 집밥이 넉넉한 건 일본도 마찬가지다. 점심 메뉴는 샐러드 밥상(8,000원)과 카쿠니 밥상(1만 2,000원)뿐이지만, 둘 다 푸짐하다. 카쿠니 밥상은 돼지 삼겹살과 곤약, 무 등을 일본 간장 쇼유에 푹 졸여 만든 장조림 비슷한 일본 가정식 요리로, 장어구이가 올라간 쌀밥과 게와 홍합이 들어간 미소시루, 명란, 게살 샐러드, 연두부, 계란찜 같은 오토시(반찬)가 곁들여진다. 샐러드 밥상은 오니기리(주먹밥)와 미소시루, 오토시로 구성된다.
‘착한’ 가격에 푸짐한 양, 맛이 일품이지만, 20상 한정 판매라 먹으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예약도 받지 않는다. 엄밀한 선착순. ‘제값’ 받는 가정식 요리들은 저녁에 제공된다. 2만원대. 부가세 별도. 070-7613-6610
이탈리아 로마 가정식 ‘톰볼라’
이탈리아 로마에서 10년간 유학하며 성악을 공부했던 김주환(59) 사장이 2003년 문을 연 서래마을의 톰볼라는 맛있는 로마 가정식을 내놓는 곳으로 유명하다. 삐그덕거리는 마루에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이 이탈리아의 어느 가정집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탈리아 음식이 워낙 보편화해서 메뉴 자체로는 새로울 것이 없다. 토마토와 물소젖 치즈로 만든 카프레제 샐러드, 달콤한 멜론 위에 짭짤한 돼지고기 햄을 얹은 프로슈토와 멜론, 다양한 파스타와 피자, 라자냐, 스테이크 등 익숙한 메뉴들이 준비돼 있다. 다만 가정식답게 가장 기본적인 재료로 간단하게 요리하는 게 포인트.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수준과 스타일을 보여주는 ‘가늠자’ 봉골라 파스타를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의 한국식 봉골레가 올리브오일 소스가 흥건히 적셔진 소스 범벅인 것과 달리, 이곳 봉골레는 면에만 마늘올리브오일 소스가 살짝 배있는 정도다. 하지만 바다를 베어 문 듯한 청신하고 향긋한 맛은 오래도록 혀 끝에 남는다. 파스타 1만 7,000~1만 9,500원, 피자 1만 3,500~2만 3,000원. (02)593-4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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