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철학자는 욕구와 욕망을 구분한다. 생존에 필요한 1차적 본능적 갈구를 욕구로, 2차적 의식적 갈구를 욕망으로 부른다. 우리가 밥을 먹는 행위는 욕구일까, 욕망일까? 처지와 환경에 따라 어떤 이는 욕구를, 어떤 사람은 욕망을 충족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식당도 구분 기준이 애매하긴 하지만 욕구 충족형 식당과 욕망 충족형 식당으로 나눌 수 있다. 단순한 욕구가 아닌 오감을 만족시키는 욕망 충족형 식당은 어디 없을까?
↑ [조선닷컴]메이 다이닝 내외부 전경
↑ [조선닷컴]구운 관자와 허브 오일, 해산물과 마리네이드 샬롯
↑ [조선닷컴]한우 안심스테이크와 연어구이와 하얀콩 등
↑ [조선닷컴]티라미스케이크
휴식이 있는 감성 식탁북한산둘레길 18구간 도봉옛길이 끝나는 지점에 '무수골'이라는 동네가 나온다. '근심 걱정 없다'는 이름처럼 낮은 지붕을 서로 맞대고 텃밭을 일구며 사는 모습이 영락없는 시골 마을이다. 한가한 정적 속에 이따금 개 짖는 소리도 들려온다. 무수골 둘레길 옆, 하얀 그리스 신전을 닮은 미니멀한 건물이 불쑥 나타난다. <메이 다이닝>이다.
메이(MAY)는 5월이다. 5월은 서양에서 스테이크가 가장 맛난 시기라고 한다. 겨우내 웅크린 소가 초원에 돋아난 풀을 뜯고 차츰 몸을 움직여 근육 사이에 알맞게 지방이 분포하기 때문이다. 또한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맛난 음식을 나누기 좋은 계절. 그래서 이 집 주인장은 가족 같은 고객에게 최상의 스테이크를 대접할 양으로 '5월'을 옥호로 삼았단다. 여기에 더해 고객의 오감 만족을 위한 레스토랑을 지향한다. 널찍하고 우아한 실내에 들어서면 탁 트인 전면 창으로 도봉산이 들어온다. 입으로는 스테이크를 먹고 눈으로는 도봉산의 유려한 능선이며 소나무의 푸르름을 먹는다. 귀에 와서 부딪히는 잔잔한 선율은 어느 조미료보다 달콤하고 감미롭다.
음식을 다 먹고 식탁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식사가 끝난 것이 아니다. 이번에는 달디 단 도봉산의 공기를 코로 먹고, 온몸으로 포근한 도봉의 품에 안길 차례다. 이 집에는 레스토랑 뒷편에 19,835m2(6000평)의 예술목 정원을 조성했다. 이름하여 시크릿 가든이다.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데 고개 하나 넘으면 비경이 펼쳐진다. 주인장의 선대 때부터 가꾼 넓은 정원엔 갖가지 진귀한 소나무가 자란다. 특히 달 항아리를 닮은 수령 300년 된 예쁜 월미인송(月美人松)이 찾아온 이들은 반긴다. 소나무뿐 아니라 진달래와 철쭉, 단풍나무,
모과나무, 설경 등이 사계절 내내 정원의 표정을 다양하게 꾸며준다.
요즘에는 정원이 온통 모과 향기로 점령당했다. 주렁주렁 매달린 모과들이 가을 햇살을 받아 진한 향을 내뿜는다. 매년 모과 철이 오면 각종 이벤트를 연다. 모과 군락지에서 딴 모과는 고객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나머지 모과는 5년 정도 숙성시켜 차로 만들어 고객과 더불어 마신다. 무엇보다 늙은 모과나무에 달린 담황색 향기 주머니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가을이 꽉 찬다. 식사 후 정원의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음미하는 것이 이 집만의 최고 디저트다. 안목 있는 방송쟁이라면 탐할만한 비경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SBS '힐링캠프'를 비롯, 몇몇 방송사 프로그램이 이곳을 촬영장으로 사용했다.
서울에서 서울로 떠나는 정찬 여행이 집은 유럽피언 컨템포러리 레스토랑을 지향한다. 쉽게 말하자면 고급스런 정통 유럽식을 따르되 퓨전 유럽식을 접목했다는 것이다. 음식의 질과 식당의 품격은 정통 유럽식으로 높였지만, 고객의 부담과 식당의 문턱은 낮췄다는 얘기다. 이 집의 다이닝 코스는 모두 네 가지. 점심 코스 두 가지와 저녁 코스 두 가지다. 해산물과 스테이크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점심은 LUNCH A(3만7000원)와 LUNCH B(4만4000원)가 있고, 저녁은 DINNER A(5만8000원)와 DINNER B(6만9000원)다. 점심 다이닝은 아무래도 저녁보다 조금 가볍다. 메인 음식이 나오기 전에 몇 가지 전채 음식이 나온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빵과 버터. 계절이나 날짜에 따라 여러 가지 빵이 번갈아 나온다. 요즘에는 감자빵과 곡물빵이 나온다. 빵 접시가 식탁에 놓이자 갓 구운 빵 냄새와 온기가 퍼져 나간다.
빵을 먹고 나면 본격적인 전채음식이 나온다. 구운 관자와 허브 오일(A코스)은 노릇하게 구운 조개 관자에 색색의 허브 잎과 오일로 맛을 냈다. 철갑상어 알도 살짝 올렸다. 해산물과 마리네이드 샬롯(B코스)은 각종 소스와 향료에 재워둔 샬롯과 그릴에 살짝 구운 연어랑 새우의 풍미가 돋보인다.
이어 부드러운 주키니 수프로 속을 다스린다. 달콤한 호박 향이 목으로 매끄럽게 넘어간다. 때에 따라 마늘 벨루떼가 나오기도 한다. 수프를 먹고 나면 다음엔 세미 메인 음식인 연어구이와 하얀콩(A코스), 저온 조리한 도미와 감자 퓨레(B코스) 차례다. 혀에 부드럽게 감기는 감자 퓨레와 각종 소스를 묻힌 탄탄한 도미 살은 그 적은 양이 아쉬울 만큼 미련이 남는 맛이다. 계절에 따라 농어나 방어로 대체되기도 한다.
해산물 음식 뒤에 드디어 메인 음식인 스테이크가 나온다. A코스는 한우의 채끝 등심과 구운 채소가 나오고 B코스는 한우 안심스테이크와 구운 야채가 나온다.
물참나무 그릴에 구워 향과 육즙이 살아있다. 스테이크 본연의 맛을 추구하기 위해 불필요한 소스와 재료는 자제하거나 최소화했다는 주인장의 말이 실감난다. 고기를 자를 때 저항감이 없다. 촉촉함이 나이프에 묻어난다. 한 조각 잘라 입에 넣으면 한없이 부드럽다. 잘 구운 스테이크의 풍미가 코 끝에 은은하게 풍긴다. 이 집에서 스테이크용으로 쓰는 한우 고기는 조금 특별하다. 경북 안동에 지정 목장을 정해두고, 사료급여 등 원하는 육질의 스펙대로 사육한 한우를 쓴다고 한다. 빼어난 음식은 대개 조리실 이전 단계부터 철저히 준비한 것들임을 다시금 본다.
디저트로는 보드라운 티라미스케이크가 나왔다. 마무리용 차는 커피 외에 카밀러(카모마일),
재스민,
페퍼민트 등 허브 차가 있다. 어느 특급 레스토랑에 뒤지지 않을 다양한 와인을 구비한 것도 장점이다. 저녁 코스에는 점심 코스를 기본으로 오리가슴살 구이(DINNER A)나 구운 거위간과 양갈비(DINNER B)가 추가된다.
점심은 10시 30분부터 15시 30분까지, 저녁은 17시 30분부터 22시 30분까지다. 15시 30분부터 17시 30분까지는 준비시간으로 쉰다. 한적한 시골처럼 시간이 느린 이곳도 분명 서울이다. 가끔 마음에 맞는 이와 품격 있는 식사라도 하려고 서울 근교의 고급 식당을 찾아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나 비용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이 집이라면 연인이나 가족, 혹은 친구들과 편안하게 식사하기에 좋다. 식사를 하는 동안 여유와 품격과 풍류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레스토랑이다. 여기선 누구 눈치 볼 것도, 까다로운 격식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마지막 가을이 가기 전에 바람처럼 떠나보자. 서울에서 서울로…
<메이 다이닝> 주소: 서울시 도봉구 도봉1동 470-3 전화: 02-955-7722
기고= 글 이정훈, 사진 변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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