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의 성지, 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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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멀어도 마음만은'이라는 스페인 영화가 있었다. 1960년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 상영을 크게 성공했고 주인공 마리솔은 그 당시 한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소녀 마리솔은 깜찍하게 노래를 잘 불렀고 성인이 된 후 아역 때의 이미지와 다른 영화(파리야화)에 출연해 실망도 주었지만 12살 때의 마리솔은 정말 귀여웠다.
↑ [조선닷컴]'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영화 포스터
↑ [조선닷컴]마르게리따
↑ [조선닷컴](좌)빠뽈레, (우)감베리크레마
↑ [조선닷컴]라자냐
↑ [조선닷컴]지아니스나폴리 외관
영화에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스페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마리솔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비행기 사고로 죽는다. 아버지가 부호인 할아버지에게 결혼을 승낙 받기 위해 이탈리아로 가다가 불의의 사고를 겪는다. 유복자로 스페인에서 자라난 마리솔이 할아버지를 만나러 이탈리아에 건너가 부자이면서 완고한 할아버지와 마음을 터가는 과정이 영화의 줄거리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탈리아 나폴리 키워드의 피자가 뜨고 있다. 나폴리 지역이 피자의 성지라고 하지만 실제로 나폴리를 다녀온 사람들은 나폴리 피자가 너무 짜서 한국사람 입맛에는 안 맞는다고 전한다. 그래도 한국 사람에게 나폴리는 피자와 파스타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떠오르는 것 같다. 그런데 나폴리 피자에는 다음과 같은 지침이 있다고 한다.
크기, 화덕 등 나폴리 피자 8지침
이탈리아 농무부에서는 나폴리 피자를 보호하고 다른 패스트푸드피자와 차별화하기 위하여 지침을 마련하였다. 지침에는 피자의 크기, 화덕의 종류, 토마토와 밀가루의 종류 등 8개항을 규정하였다. 이 지침을 따르는 음식점에게 정부에서 보증서를 발급한다.
이 지침에 맞추려면 우선 촉감이 쫄깃하고 부드러우며 쉽게 접을 수 있어야 한다. 전기화덕은 금지되며, 장작화덕에서 구워야 한다. 화덕의 온도는 485℃이고 형태는 둥근 모양이어야 한다.
크러스트 반죽은 반드시 손으로 해야 하며, 크러스트 두께는 2cm 이하로 만들어야 한다. 또 피자의 가운데는 두께가 0.3cm를 넘어서는 안 된다. 토핑은 토마토소스와 치즈만 사용한다.
이탈리아 농무부에서는 나폴리 피자의 종류도 마리나라, 마르게리타, 엑스트라 마르게리타 3가지로 제한한다. 마리나라는 마늘과
오레가노를 사용한 피자이다. 마르게리타는
아펜니노산맥 남쪽에서 생산하는 모차렐라치즈와 토마토소스를 사용하고 바질 잎으로 토핑 한다. 엑스트라 마르게리타는 물소 젖을 원유로 하여 만드는 남부 캄파니아산(産) 모차렐라치즈와 토마토소스, 바질 잎을 재료로 한다.
한국인 기호에 맞춘 나폴리 피자 전문점
그런 트렌드에 맞춰 필자는 나폴리 피자를 표방하는 피자 전문점을 한 번 찾아갔다. 나폴리 피자 전문점 <지아니스나폴리> 가로수길점. 대부분 고객이 젊은 층이었다. 중년남자 두 명이서 피자를 먹으려니 어째 좀 어색했다. 화덕이 보였다. 나폴리피자는 꼭 장작에서 구워야 한다는 지침이 생각났다. 식전 빵 '빠뽈레'가 나왔다. 인도 난(Naan)과 거의 비슷한 맛이다. 쫄깃쫄깃하고 구수했다. 흔한 마늘빵보다는 분명 달랐다.
파스타로 '감베리크레마'(1만5900원)를 주문했다. 이 레스토랑의 대표 파스타라고 한다. 크림소스에 모차렐라가 들어간 파스타로 입맛에 잘 맞았다. 적당히 매콤한 맛이 있어 우리 같은 중년남자도 좋아할만한 맛이었다. 크림은 진했지만 느끼한 맛이 없었다. 통새우의 선도가 좋았지만 양은 많지 않았다.
파스타에 대한 한국 남자의 불만은 가격에 비해 양과 질이 좀 빈약하다는 점이다. 이 레스토랑은 나폴리 콘셉트를 채용했지만 한국사람 입맛을 정확히 잡아냈다. 나폴리 오리지널 음식을 그대로 도입하면 우리 입맛에는 거의 안 맞는다. 10년 전, 이탈리아 현지에서 장기간 요리를 배운 사람이 경기도 모 지역에서 오리지널 파스타 전문점을 하다가 금방 문을 닫았다. 현지화에 실패한 것이다.
피자는 마르게리따 디 부필라(2만900원)를 주문했다. 마르게리따 피자는 나폴리의 3대 피자로 마르게리따 왕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식재료는 초록색 바질, 흰색
모짜렐라 치즈, 빨간색 토마토를 사용하는데 이태리 국기 색깔과 일치한다. 지극히 이탈리아적인 피자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좀 밋밋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석한 일행이 파스타 감베리크레마가 맛이 강해 그럴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지만 이 피자 역시 느끼한 맛은 거의 없다. 이 레스토랑은 그런 밸런스를 잘 맞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촉촉한 치즈 맛과 쫄깃한 도우가 잘 조화를 이룬다. 오리저널 이탈리아 나폴리 피자는 느끼하면서 아주 짜다. 나폴리 피자 콘셉트를 도입했지만 한국사람 기호에 맞게 적용했다.
이탈리아에서는 1인당 한 판을 다 먹는다지만 이 담백한 피자도 우리는 몇 조각이 전부다. 혹 빈대떡 같았으면 대여섯 장정도 너끈히 먹을 수 있겠지만 역시 중년남자 입맛에 피자는 몇 점 정도가 한계다.
중년남자의 입맛에는 역시 '라자냐'
라자냐를 하나 추가로 주문했다. 라자냐 클라시코(1만9000원). 외래어 표기법상 '라사냐'가 정확한 표현이지만 라자냐가 느낌이 난다. 자장면이 아닌 짜장면으로 표기해야 그 느낌이 나듯이. 종업원이 라자냐는 좀 시간이 걸린다며 양해를 구했다.
라자냐 식재료의 핵심은 치즈다. 나폴리 라자냐는 모차렐라를 많이 쓰고 이탈리아 남부지방에서 특히 많이 사용한다. 영화 '대부'나 미국 드라마 '소프라노스'에서 라자냐를 맛있게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라자냐하면 마피아가 연상된다. 대부의 거의 첫 장면에서도 마이클(알 파치노)이 라자냐를 언급한다.
소프라노스에서도 시시 때때로 라자냐 이야기가 나온다. 주로 냉동 라자냐지만. 나폴리는 유독 마피아가 많은 지역이다. 이태리 마피아의 2대 지역은 나폴리(카모라)와 시칠리아(코사 노스트라)다. 영화 대부의 주인공 코르네오 가문은 시칠리아가 고향이다.
오븐에 구워서 나오는 라자냐는 아주 먹을 만했다. 역시 치즈 맛이 진했지만 느끼하지는 않았다. 토마토의 시큼한 맛과 고기의 양도 넉넉해서 입안을 풍요롭게 해줬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라자냐를 왜 그렇게 많이 먹는지 감이 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라쟈나는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사실이다.
<지아니스나폴리>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41-6 (02)3416-0316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blog.naver.com/tabula9548)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외식업 컨설팅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외식콘셉트 기획자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맛집'은 대부분 사전 취재 없이 일상적인 음식점 방문으로 콘텐츠를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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