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야스 지로 감독의 마지막 작품 '꽁치의 맛'
오스야스 지로 감독은
구로자와 아키라와 비견할만한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이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국제적이고 스타일리쉬하다면 오스야스 지로는 서민과 중산층의 잔잔한 삶을 일본인 특유의 정서로 연출했다. 오스야스 지로의 마지막 작품은 1962년 작 '꽁치의 맛(秋刀魚の味)'이다.
영화 꽁치의 맛은 어리고 소중한 딸이 결혼해 품에서 떠나 보내야 하는 홀아버지의 쓸쓸한 심정을 다룬 영화다. 라멘집에서 태평양 전쟁 때의 부하와 우연히 만나는 장면도 나온다. 일본 해군가를 부르는 그들의 모습은 한국 사람으로서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원천적으로 '꽁치의 맛'은 따뜻한 정서를 지닌 고전영화다. 더욱이 딸 바보 소리를 많이 듣는 필자는 깊은 공감을 느끼는 부분이 곳곳에 있었다.
↑ [조선닷컴]영화 '꽁치의 맛' 포스터
↑ [조선닷컴]
↑ [조선닷컴]
↑ [조선닷컴]
꽁치의 맛에서 꽁치의 의미는 가을이다. 아버지의 쓸쓸한 마음을 가을로 상징했다. 이 영화는 오스 감독의 유작으로 유머러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낙엽 진 가을날처럼 묘하게 처연하다. 꽁치는 일본어로 추도어(秋刀魚) 혹은 청갈치라고 부른다. 이름에 가을(秋)이 들어갔듯이 꽁치는 가을철에 제 맛을 내는 생선이다. 5~6월이 성어기지만 제 맛은 서리가 내리는 가을철에 든다. 아마 살 속 지방 함량이 가을에 높아져서 더 맛있는 것 같다.
가을 꽁치가 맛있다고 하지만…
고등어와 갈치도 흔했지만 우리 집 식탁에서 상시적으로 먹었던 것은 꽁치였다. 그 당시 갈치는 그다지 비싼 생선이 아니었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생선은 거의 연탄불에 구웠다. 꽁치를 연탄불로 구우면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어머니는 항상 온 집안에 기분 좋은 비린내를 풍기며 꽁치를 구웠었다. 석쇠에 연탄불로 잘 구운 꽁치는 서민적인 생선이었지만 산해진미가 안 부러웠다.
꽁치 살은 젓가락으로 떼어내면 길게 잘라진다. 밥과 함께 곁들여 먹으면 으레 공기 밥을 추가하기 일쑤였다. 필자는 음식을 급하게 먹는 편이지만 꽁치구이를 먹을 때는 가시를 아주 조심스럽게 발라 먹는다. 물론 간혹 꽁치가 너무 맛있어서 뼈째 우적우적 씹어서 먹은 적도 있다.
주로 꽁치구이에는 맑은 콩나물국이 잘 맞는다. 필자네 집에서는 서울 사람답게 소고기를 넣고 끓여 먹었다. 어려서부터 매운 맛을 좋아해 국물에 고춧가루를 뿌려서 먹으면 꽁치 맛이 배가되곤 했다. 단백질이 풍부한 꽁치를 많이 먹어서인지 나이가 들어서도 비교적 잔병 없이 지낸다. 오죽하면 가족같이 지냈던 가정부 아주머니에게도 명절 세배를 하며 콩나물국과 꽁치구이를 많이 해달라고 부탁 했을까. 그런데 요즘 들어 꽁치구이 먹기가 퍽 힘들어졌다. 고등어자반을 판매하는 식당은 흔하지만 꽁치구이는 이상하게 판매하는 식당이 별로 없는 편이다.
필자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꽁치구이 백반은 이렇다.
첫째, 국내에서 잡은 냉장 꽁치를 사용한다.
둘째, 국물은 가급적 재래된장을 사용하거나 조선간장을 사용한
맑은 장국을 곁들인다.
셋째, 열원은 무조건 연탄을 사용해 윤기가 흐르게 굽는다.
넷째, 이왕이면 쌀도 좋은 것을 사용해 밥을 짓는다.
조금 아쉽지만 즐기기엔 부족함 없는 꽁치 맛그러나 아직까지 필자의 레이더에는 이런 꽁치구이를 판매하는 식당이 포착된 적이 없다. 아마 지금은 없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꽁치는 수입산 일색이고 된장도 주로 밀 함유량이 높은 식당용 공장 된장이다. 맑은 장국도 조선간장을 사용하지 않아 깊은 맛이 부족할뿐더러 연탄 일하는 직원을 구하기도 힘들다. 그러니 연탄으로 굽는 생선구이 집을 점점 찾아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맛있는 꽁치 자체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이제는 옛날에 먹던 꽁치구이가 추억의 먹을거리로 남을 것 같다.
가을의 끝에서 꽁치구이가 먹고 싶어 찾아간 곳은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포이마루>였다. 수입산 꽁치지만 5500원에 큼직한 꽁치 두 마리를 제공한다. 연탄이 아닌 그릴로 생선을 굽는 것은 아쉽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손님의 욕심이다. 너무 짜지도 않고 간이 잘 맞는다. 설익거나 태우지도 않았다. 딱 먹기 좋은 상태로 구웠다. 예전에 먹었던 그 꽁치구이는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꽁치 두 마리를 싹싹 발라서 해치웠다.
달걀부침, 미역무침 등 밑반찬도 비교적 깔끔한 편이다. 이곳은 가끔 숭늉과 함께 눌은밥을 제공한다. 구수한 눌은밥은 입맛을 개운하게 해줄 뿐 아니라 입 속 꽁치 비린내도 잡아준다. 점심시간에는 주변의 사무실 직원이나 주부들이 많은 편이다. 삼겹살 등 고기 메뉴도 있지만 저녁에도 밥 손님이 많다고 한다.
내년에는 강원도 주문진 꽁치축제를 한 번 가볼 생각이다. 가을꽁치가 아니라 어떤 맛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혹시 예전에 먹었던 그 꽁치 맛과 비교적 근사치의 꽁치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혹시 독자 분들 중에 맛있는 꽁치구이 식당을 알고 있으면 꼭 추천해줬으면 좋겠다.
<포이마루>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391-7 (02)577-2201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blog.naver.com/tabula9548)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외식업 컨설팅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외식콘셉트 기획자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맛집'은 대부분 사전 취재 없이 일상적인 형식으로 콘텐츠를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